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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쌤 Aug 02. 2022

태풍 다음 날, 제주 해안 길 걷기의 매력

태풍이 지나간 다음 날, 제주 비가 오고 그쳤다를 반복한다. 비가 퍼부울 땐 마치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쏟아진다. 시원한 빗줄기 소리에 속이 다 시원할 정도니 말이다. 비가 그치니 몸이 근질근질하다. 얼른 올레길 채비를 마치고 조카랑 아내랑 201번 버스에 몸을 싣는다.


버스 정류장 '소노캄'에서 내렸다. 내리자마자 선풍기 바람 100배만큼의 강풍이 반갑다고 몰아친다. 역시 제주는 집 밖으로 나와야 제주스럽다. 시원한 태풍 바람에 몸과 마음이 상쾌해진다. "크아앙 크아앙" 끊임없는 굉음이 어디선가 들린다. 내 키보다 훨씬 더 높은 하얀 파도들이 떼 지어 몰려온다. 그 소리가 천지를 울린다.

집채만 한 파도가 세상을 삼킬 듯 하다. by도도쌤


태풍이 지나간 다음 날 바다 풍경에 넋을 잃고 쳐다본다. 가다가 멈추고 쳐다보고 사진 찍고 '우와' 소리를 몇 번이나 반복한다. 모든 걸 삼킬 듯한 파도가 강풍에 실려 내 얼굴까지 닿는다. 파도 샤워다. 짠내 가득한 바다 냄새가 온몸을 훑고 지나간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바다 풍경에 감동한 아내와 나 동시에 한 마디씩 던진다.


"사진이 이 풍경을 못 담는다. 아무리 찍어도 담지를 못 한다."


백퍼 공감이다.


방파제와 길을 삼킨 파도 by도도쌤


파도가 무섭다. 파도가 방파제를 삼키고 길까지 삼켰다. 태풍이 조금만 더 심했다면 마을까지 삼키겠다. 자연의 무서움을 피부로 느낀다. 등대가 하나 보인다. 파란 하늘이 구름 사이로 보인다. 하얀 등대랑 파란 구름과 파도가 그림이다. 그 그림이 마음에 들었는지 조카 녀석이 그림 속으로 성큼성큼 들어간다. 사진을 찍는다. '이야!' 감탄밖에 안 나온다. 뽑아서 액자로 하나 만들어야겠다. 나도 살짝 들어가 본다. 풍경이 너무 예쁘니 내가 묻힌다. 아! 다행이다. '이야!' 아내 덕에 멋진 사진 하나 건졌다. '고마워 아내!'


하얀 등대와 나 by도도쌤

소노캄에서 표선해수욕장까지 5킬로 거리다. 1시간 정도면 걸으면 되겠지 했는데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조카 녀석 결국은 "아빠~~~~~~아빠~~~ 살려줘~~~"하며 부산에 있는 아빠를 소리치며 찾는다. 5학년 아이한테 예뻤던 길이 가도 가도 끝없는 바다 해변 지옥길이 되어버렸다. 나이가 들었나? 내 눈엔 노란 '황근'도 정말 정말 예뻐 보이고, 집채만 한 파도가 까만 바위를 강타할 때 퍼지는 하얀 포말은 한없이 멋있기만 한데 말이다.

노란 황근(무궁화꽃), 멸종위기야생식물 by도도쌤

드디어 최종 목적지 '당케 올레 국수'집에 도착했다. 10시 50분에 시작한 올레길, 도착하니 1시 20분이다. 2시간 30분을 걸은 셈이다. 아이 입장에선 힘들 만도 하겠다. 1달 제주 살이 할 조카, 이렇게 매일 걸으면 제대로 다이어트하고 가겠다 싶다.


힘든 걸음 뒤에 음식이라 맛이 없을 수가 없다. 보말 칼국수 국물이 찐하고 구수하다. 뜨거운데 사정없이 들이킨다. 이열치열이라고 땀이 뻘뻘 흐른다. 열심히 걷고 먹은 보말 칼국수 한 그릇에 역시 이 맛에 걷는 거야 하고 감탄을 한다.

올레당케국수 집에서 세 번째 보말칼국수, 12000냥. 비싸긴 비싸다. by도도쌤


태풍이 지나간 다음 날, 바다 길 걷기. 가 파도가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한 날이다. 짠내 가득한 바다향과 미칠 듯이 밀어닥치는 파도소리, 그리고 모자를 벗기게 만드는 강한 바람. 자연의 섬뜩함 앞에서 내 자신은 한없이 작고 연약했다. 그 장엄함 속에서 뚜벅뚜벅 걸은 내 자신이 대단했고 조카 녀석이 더 대단했다.


자연과 함께 걸은 조카 이 길이 마냥 힘들기만 했을까? 아님 말로는 안 했지만 내가 느낀 자연의 위대함을 똑같이 느꼈을까? 자연을 배우는 게 수학 문제 하나 푸는 것보다 훨씬 더 소중한 걸 배웠던 하루가 되었길 바란다. 스로 이 먼 길을 걸어냈다는 성취감으로 내면이 더 단단한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

태풍이 지나간 다음 날, 제주 바다 by도도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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