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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쌤 Apr 23. 2022

머체왓 숲길, 머체왓 식당

제주살이 1년

블로그 이웃 '밍밍트리'님의 글이 컸다. 어, 이런 숲길도 있네, 하며 조만간 가 보리라 마음먹었다. 그런데 숲길 이름 가물가물하다. 아내에게 '뭐차엣' 아니 '머추앗' 숲길 좋다고 가자 했다  안 돼 엄청 핀잔을 들었다. 하하하하.


아무튼 그렇게 헷갈렸던 숲길 이름, 오늘 3시간 걸었더니 이름 하나는 완벽하게 외웠다. 뭐차엣도 아니고 머추앗도 아니고 '머체왓'이다. '왓'은 이미 '밭'이라는 것 알고 있었고 그럼 '머체'가 뭐지 궁금했다. 안내판을 보니 '돌'이란다. 그럼 합치면 '돌밭'이라는 뜻고 한 마디로 돌밭을 걷는 거다. 하하하. 그런데 진짜 여기 돌이 많다. 아내 걷다가 돌에 몇 번이나 걸려 크게 넘어질 뻔했다. 스틱이 있으신 분은 꼭 챙기시길 바란다.


머체왓숲길 말고 다른 숲길도 2가지나 있다. by도도썀

오전 10시 30분, 이른 시각인데도 불구하고 차들로 주차장이 꽉 차있다. 겨우 출입구 귀퉁이에 차를 대고 '머체왓' 숲길을 정복하러 간다. 입구에 들어섰는데 아저씨 아줌마들이 "고사리 캐러 가자!"라고 한다. 여기 고사리가 유명한가, 싶다.  입구 초입, 안내 리본이 선명하게 눈에 잘 안 보여 갈팡질팡 하다 우 노란색 리본을 찾았다.

머체왓 숲길 초입 by도도쌤


머체왓 숲길은 제주도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숲길인데  '관중 군락지'라고 하여 고사리 같은 양치식물이 많다. 고사리 모양 같은 게 올라와 있어 한 번 캐보고 싶지만 시 몰라 그냥 시장 가서 돈 주고 사 먹어야겠다심했다.

고사리가 맞긴 맞나요? by도도쌤

가다가 특이하게 생긴 나무가 눈길을 끈다. 제밤낭 밤나무고 하는데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한다. 아내와 나 둘이서 소원을 간절하게 빌었다. 얼른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여기 분명 밍밍트리님이 좋다고 추천한 곳인데 지금까진 너무 평범했다. 실 너무 평범해 사진도 몇 컷 안 찍었다. 속으로 '이거 뭐지, 이거 뭐지' 망을 제법 했다. 그렇게 전망대에서 그냥 내려가는데 초록 풀밭이 쫙 펼쳐지며 파란 하늘과 삼나무들이 일렬로 줄 서 있는 게 아니겠는가? 순간 속이 뻥 뚫다. 속으로 '그럼 그렇지. 그럼 그렇지'하며 기분이 업다.

푸른 플밭과 줄지은 삼나무가 절경이다 by도도쌤

이곳부터 줄줄이 머체왓 숲길의 아름다움이 펼쳐진다. 편백향이 솔솔 풍기는 편백나무 숲길을 지나 하늘 높이 솟은 삼나무 숲길이 가는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말이 임신 중이니 조용히 지나가라는 표지판을 보고는 발소리도 조심조심 걷는다. 그런데  안 보이고 사람도 아무도 없고 우리 밖에 없다. 사람이 없는 이유를 '고사리'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출발할 때 그래 많던 아저씨 아줌마들은 그런데 다 어디 있는 거지?"

"다들 고사리 따러 갔나 봐!"

"한 명도 없다. 맞제?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그렇다. 우리 말고 이 숲길을 걷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출발할 때 그렇게 아줌마 아저씨들 많았는데 말이다. 여기 숲길 걷는 거보다 고사리 캐는 목적이 더 클 수 있다는 상상에 아내와 나 걸으면서 한참을 웃었다.

편백나무 숲길과 삼나무 숲길 by도도쌤

웃다가 보니 관중(고사리) 군락지 쇼가 펼쳐진다. 세상에나 초록 연두 관중 식물과 빼곡히 하늘로 솟은 삼나무들의 조합이 환상적이다. 이건 뭐 영화의 한 장면 속으로 풍덩 빠져 든 기분이다. 머체왓 숲길의 최고 아름다운 순간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관종군락지 최고로 아름다웠다 by도도쌤

갈랫길이 헷갈려 들어선 이곳,  편백나무 빼곡하 편백향이 코를 찌를 정도로 향기롭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나무에 매달린 노란 안내 리본은 안 보이고 빨간 리본만 나무에 둘러져 있다. 그 빨간 리본을 따라갔는데  숲 안 나오고 가도 가도 똑같은 풍경이다. 게다가 휴대폰도 안 터진다.

"계속 가다가 실종되는 거 아니야. 고사리 따다가 실종될 수 있는 현수막도 아까 봤는데. 우리 실종되면 우리 아들딸 하원은 누가 하나?"

아내 두려움에 두리번두리번거리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이 말만 반복하다 다시 갈래길로 돌아 나왔다.

길 잃은 곳 by도도쌤

가던 길을 되돌아 나오니 그제야 안내 노란 리본이 나온다. 그리고 그제야 환하게 웃으며 아이들 하원 시킬 수 있겠다 그러는 아내다.  사리 캐시는 분들 길 잃을 수 있으니 진짜 조심하세요.


입구에서 화장실을 갔는데도 아침에 커피를 마신 탓인지 아내 화장실이 가고 싶다. 그런데 여기 화장실이 없다.  발길을 서둘러 입구 안내센터로 내려온다. 아무튼 머체왓 숲길 오시는 분들은 반드시 입구에서 화장실을 꼭 다녀오기 바란다. (화장실 중간에 하나 꼭 만들어 주세요!!)


머체왓 식당 후기

3시간 정도 걸었더니 허기가 진다. 멀리 가기도 그렇고 여기 입구에 있는 '머체왓 식당'에 불백 하나랑 비빔밥 하나를 먹으러 들어갔다. 가격이 세다. 비빔밥은 만원, 불백은 만 이천 원이다. 게다가 불백은 2인분을 시켜야 한다고 적혀 있어 그냥 비빔밥 두 그릇을 먹기로 한다. 그런데 문하려고 하는 찰나, 아내와 내 눈에 배달하러 가는 보글보글 끓 불백이 보였. 아주 먹음직스러 보였다. 아내와 나 순간 눈빛 교환으로 바로 불백 2개로 마음을 바꿨다. 하하하하하.


머체왓 식당 반찬들 by도도쌤


반찬 나왔다. 예쁜 꽃 접시에 나온 반찬들, 아내 이것저것 맛보더니 맛있다며 먹어 보란다. 집에선 하기 힘든 초록 나물을 먹었는데 엄마 맛이다. 아내랑 나 불백이 나오기도 전에 거의 다 먹어버렸다. 하하하하.


그리고 곧이어 나온 오늘의 주인공 불백. 보글보글 끓는 달콤한 돼지 불백 향이 코를 자극한다. 상추 위에 고기 두 점과 파를 올려 먹었는데 황홀하다. 메뉴 바꾼 건 신의 한 수였다. 전혀 기대 없이 온 식당인데 속으로 몇 번이나 심봤다 다. 아내도 한 입 싸 먹더니 눈이 똥그래졌다. 광치기 해변에서 먹은 '고등어 쌈밥'과 신상공원 근처인 '돼지구이연구소' 맛에 버금가는 최고의 맛이다. 상추 리필에 초록 나물 리필에 불백 고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5점 만점에 4.9점이다. 가격 빼곤 할 말이 없다.

돼지불백. 말이 필요 없다. by도도썀

이제 맛있게 먹고 가려고 하는데 원래 먹으려고 했던 비빔밥이 보인다. 꽃과 함께 차려진 비빔밥이 그냥 예술작품이다. 다음에는 꼭 비빔밥 먹으러 온다고 주인아주머니랑 약속까지 하고 나왔다. 하하하하하.

머체왓 식당 비빔밥 by도도쌤

예쁜 숲길도 걷고, 맛있는 밥도 먹으니 세상 부러울 게 없는 하루다. 집에 가려고 하니 아줌마들 손에 봉지가 뭐로 가득 차 있다. '고사리'다. 안 봐도 안다. 여기 숲길 걸을 겸 고사리를 따는 거 확실하다. 조만간 생고사리 무침을 아내에게 해 달라고 해야겠다.


머체왓 숲길, 돌밭 숲길. 3시간 정도 마음 비우며 걷기 아주 좋은 곳이다. 걷고 배가 고프면 여기 식당에서 먹어도 참 좋을 것 같다.


도전하고 도와주는 쌤, 도도쌤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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