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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쌤 Jun 30. 2022

숲 속  향기 가득한 베릿내오름

'베릿내 오름'

이름이 어렵다. 그 어려운 이름만큼이나 시작도 만만치 않다. 아래에서 보면 아득히 보이는 끝도 없는 계단만 보이는 곳이다. '이 힘든 걸 뭐하러 가? 뭐 별거 있겠어?'란 생각이 들어 지레짐작으로 포기한 곳이다. 게다가 위치도 별로 좋지 않다. 주위에 주상절리, 색달해수욕장, 천제연폭포 등 볼게 너무 많아 솔직히 여긴 다소 하찮게 여겨졌었다.


그래도 살다 보면, 약간의 미안함이 남아 있다면, 우연은 인연이 되고 인연은 필연이 되는 모양이다. 대포 주상절리로 가려다 길을 잘못 들어 마주친 곳이 하필이면 '베릿내 오름'이다. 올레 8코스에서 유일하게 안 가 본 '베릿내 오름'을 다시 우연히 마주한 것이다. 베릿내 오름까지 온 이상, 아내랑 나 진정한 8코스 완주를 위해 용기 내어 끝도 없어 보이는 계단을 올라가 보기로 한다.

베릿내 오름 입구, 계단이 끝이 없다. by도도쌤

이 이어진 계단만 오르면 그 끝에 정상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건 착각이었다. 그 끝은 다시 조그만 계단들로 이어져 숲길로 이어진다. '어 여기 뭐지? 이 신선한 숲 향기는 뭐지?' 생각지도 못한 풀 향기가  머리를 상쾌하게 한다. 아내도 연신 풀향기 좋다며 킁킁 소리를 낸다. 아카시아꽃 같은 달달한 향기가 은은하게 콧속을 강타하는데 그 향이 머리와 마음까지 다 달달하게 만든다.

베릿내 오름 올라가는 길과 정상 by도도쌤

정상에 도착하니 소나무 두 그루가 떡 하니 서서 여기까지 올라온다고 수고 많았다며 인사한다. 왼쪽으론 중문 시가지 풍경이 보이고, 오른쪽으론 저 멀리 해안이 보인다. 지미봉 정상과 군산오름 정상에서 너무 멋진 풍경을 봐서 여기 탁 트인 풍경이 좋긴 하지만 성에 안 찬다. '그래도 드디어 베릿내 오름 여기에 와 봤다!' 하며 하산을 하는데, '헉' 이거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이 눈앞에 펼쳐진다.

초록 나뭇잎 터널 by도도쌤

'초록 나뭇잎 터널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라고 인사라도 하듯, 초록 세상으로 들어가는 비밀 통로가 눈앞에 쫙 펼쳐져 있다. 초록 나뭇잎에 눈은 상쾌해지고 발걸음은 경쾌해진다. 폰을 들어 이 풍경을 영상으로 담아보는데 실제 눈에 보이는 것보다 초록색이 더 짙어 신비롭기 짝이 없다.


내리막 계단 끝으로 왼쪽으로 숲길이 쭉 이어지는데 걷기도 편하고 숲향 기도 좋고 발이 저절로 움직인다. 천제연 골짜기 둘레를 따라 길이 이어지는데 평지길에 산책하기에 딱이다. 어마 무시하게 깊은 골 아래로 물도 보이고 저 멀리 바다도 보인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 마음이 편안해지고 세상이 다 초록빛으로 아름답게 보인다.


베릿내 오름 전체 풍경 by도도쌤


베릿내 오름 정상가는 길이 여기 둘레길과 이어진다. 계단 밑으로 저 멀리 바다가 보이는데 아득한 바다로 들어가는 바다세상 입구 같다. 천제연의 깊은 골짜기 사이로 은하수처럼 물이 흐른다고 해서 '별이 내린 내(천)'라고 부르던 것이 '베릿내'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별이 떨어진 천을 바라보며 아내랑 둘이서 조용히 걸었던 것이다.



우연히 만난 '베릿내 오름'. 미안함과 찝찝함이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었는데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진정한 올레길 8코스를 완성했다. 올레꾼이 아니면 잘 모르는 '베릿내 오름'. 색달해수욕장의 시원한 파도소리와 주상절리의 웅장함은 없지만 숲 향기와 고요함이 가득했던 . 잔잔한 숲 속 향기와 고요함 마주하고 싶다면 '베릿내 오름'을 꼭 한 번 오르기 바란다.

베릿내 오름, 내려가는 길 by도도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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