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마지막 주 금요일, 평일인데도 우도 가는 배 3층 의자엔 사람이 꽉 찼다. 연인들, 가족들, 어르신들,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여행 가는 설렘에 연신 웃음과 대화가 끊이지 않는다. 배 위에 가만히 앉아 있으니 바닷바람이 제법 차다. 얼른 가방 속 바람막이를 꺼내 입으니 한결 낫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배가 출발하더니 새우깡 냄새를 맡았는지 갈매기들이 끼룩끼룩 배 뒤편으로 날아다니기 시작한다. 그러다 갑자기 놀람과 아쉬움이 가득한 사람들의 소리가 연이어 크게 들린다.
"와~~~~ 우~~~"
"아이~~~~~~~"
새우깡을 공중에서 먹는 갈매기. by도도쌤
뭔 소린가 하고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봤더니, 갈매기 한 마리가 팔랑거리는 태극기 옆으로 유유히 바람을 타고 배를 따라오고 있다. 그 자체도 신기한데 조금 있으니 더 대단한 풍경이 펼쳐진다. 누군가가 던지는 새우깡 하나를 갈매기가 공중에서 부리를 벌려 탁 낚아챈다. '와~'하는 사람들의 환호 소리가 일제히 들린다. 몇 분 동안 공중에서 새우깡을 낚아채서 얌얌얌 먹는 갈매기 보는 재미에 사람들이 푹 빠졌다. 우도가 바로 옆에 보이는데도 우도는 아무도 안 본다. 이 사람들 우도 보러 온 사람들 맞는가 싶다. 하하하
"나 하나도 못 먹였어!"
"아! 더 하고 싶은데!"
배가 도착하고 갈매기들이 다 가고 나니, 아쉬운 소리가 내 귓가까지 들린다. 바람을 타며 공중에서 새우깡을 낚아채는 갈매기들아 이 새우깡이 너희들의 주식이 아니고 간식이기를 제발 바란다.
#2. 정신없고 어수선한 '하우목동 포구' 입구
15분 만에 금방 우도에 도착했다. 대략 200~30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배에서 내렸으니 포구 입구가 사람들로 북적북적하다. 올레길 패스에 1-1코스 우도 출발 도장을 찍으니 기분이 좋다. 그러나, 그 기분도 잠시 나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장면이 곳곳에서 보인다.
우선, 가게 앞에 진열된 전기자동차가 많아도 너무 많다. 전기 자동차 가게가 하나면 말도 안 하겠는데 그 가게들이 포구 입구에 줄지어 6개는 넘는다. 수십대가 넘는 전기자동차를 보니 마치 전기자동차를 보러 우도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할 정도다.
너무 어수선했던 포구 입구. by도도쌤
더구나, 여기 우도 외곽 도로에는 버스까지 다닌다. 그 큰 버스들이 도로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씽씽씽 무서운 속도로 다니는데 걸어 다니기가 무섭다. 순간, 우도길이 전기자동차, 전기오토바이, 전기자전거 등 온갖 빠르게 움직이는 것들 위한 장소이지 걸어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조금 불편하고 낯선 장소로 느껴졌다.
#3. 가장 행복했고 아름다웠던 순간, '홍조단괴 해빈'
조금 걸으니 전기 자동차들이 빨리 가 버리고 조용해진다. 그리곤 옥빛으로 물든 조그만 해수욕장을 만난다. 음, 색깔 예쁘네, 정도로 걸어가고 있는데 표지판에 적힌 글을 친구가 읽더니 외친다.
"어! 여기 천연기념물이네!"
"뭐? 진짜?"
바닷가에 내려간 친구 녀석이 모래가 아니라고 한다.
홍조단괴 해빈. by도도쌤
"야! 여기 모래 아니다!"
'어?'
홍조단괴 해변은 천연기년물이다. by도도쌤
확실히 모래가 아니다. 그래서 여기가 천연기념물이다. 짧게 쉽게 정리하자면, '홍조류 포자가 모래 위에 붙어 자라게 되고, 그 작은 알갱이가 자라면서 계속 구르다 보니 공 모양으로 되는 거란다.' 하얗게 되는 이 홍조류 공들이 모여 이루어진 곳이 바로 '홍조단괴 해빈'이었던 거다. 모래가 아닌 홍조류로 이루어진 해안은 세계적으로 드물어서 여기가 천연기념물이 되었다고 한다.
홍조단괴. by도도쌤
내려가서 실제 맞는지 확인해보니 정말 모래가 아니다. 하얀 공 모양 같은 것들이 내 손 위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그제야 신기하다 신기하다, 라는 생각이 물 밀려든다. 이런 역사적 가치가 있는 곳에 내가 서 있고, 그 홍조류들을 직접 만지고 있으니 감격스럽다. 오래오래 이곳이 잘 보존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홍조단괴와 쪽빛 바다가 주는 환상의 매력에 멍하니 한동안 바다만 보게 되었다.
산호해수욕장과 성산. by도도쌤
조금 더 걸으니 넓은 해수욕장이 나온다. 이름하여 '산호해수욕장'이다. 역시 홍조단괴로 이루어진 곳이며 바닷빛이 애매랄드 빛이다. 완전 파라다이스 세상이다. 날이 더워져 수영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마음 같아서는 물속에 풍덩 점프하고 싶다.맥주 한잔도 찐하게 생각난다.
#4. 우도 마을길 걷기와 훈데르트바서 파크에서 김밥 먹기
정신없던 도로에서 벗어나 우도 마을길로 들어서니 갑자기 조용하고 평온하다. 길은 조금 돌아가는 길이지만 마을길이 주는 편안함이 마음에 든다. 돌담 위에 팔랑거리는 올레길 리본이 반갑다고 손짓한다. 저 멀리 보이는 우도봉과 돌담이 주는 아늑함에 발걸음이 가볍다. 소들도 풀밭에서 자유롭게 한가롭게 풀을 먹고 있는데 그 모습에 괜한 미소가 지어진다.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소. by도도쌤
천진항을 지나 우도봉 아래에 새로 생긴 훈데르트바서 파크가 나온다. 제법 걸었더니 배가 고프다. 돌 벤치 위에 앉아서 성산항 근처에서 산 '착한 마녀 김밥'을 꺼내 먹는데 자극적이지도 않은 건강한 맛에 맛있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착한마녀김밥. 참치김밥이 맛있었다. by도도쌤
"어! 이거 내가 좋아하는 맛이네!" 그러면서 친구 녀석 한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김밥을 우적우적 씹으며 먹는다. 여기 우도 오면 식당 찾기가 어려울 것 같아 사온 김밥인데 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아내도 나도 친구 내외 모두 여유롭게 보리차 한잔 하며 김밥 먹는 이 시간이 참 행복하다. 김밥을 먹고 친구 아내가 요즘 푹 빠진 '연세우유 초코빵'을 좀 주는데 그 맛이 후식으로는 또 기가 막힌다.
#5. 두 번째 아름다움을 가져다준, 우도봉과 우도등대
우도봉 입구를 보는 순간, 여기 와 봤던 기억이 바로 떠오른다. 아내랑 우도봉을 걸었던 10년 전 추억이 스멀스멀 되살아난다. 올레길은 우도봉 쪽으로 이어지지가 않아 순간 갈림길에서 고민을 한다.
우도봉 올라가는 초입. by도도쌤
"올레길 쪽으로 가? 아니면 우도봉 쪽으로 올라가?"
"우도봉 올라가자. 경치가 좋았던 생각이 난다."
옛 추억이 이럴 때 도움이 된다. 한걸음 한걸음 올라가는 발걸음은 무겁지만 조금씩 오르면서 바라보는 높은 곳에서의 풍경이 참 아름답다. 특히나 저 바다 멀리 보이는 성산 실루엣이 오늘따라 예술이다. 시야가 좋지 않아 자세하게는 안 보이지만 그 나름대로의 묘한 성산 느낌이 물씬 전해져 온다. 살랑거리는 억새 뒤에 당당하게 서 있는 성산이 그렇게나 멋있다.헉헉 대며 오르는데내 뒤에 따라오는 가족의 대화가 참 웃기고 정겹다.
"좀 밀어줘."
(엄마의 말에 아이가 민다.)
"오! 좋아 좋아 오! 좋아 좋아. 나 방귀 뀌어도 돼?"
(엄마가 말하는데 다 들려 한참을 웃었다.실제 방귀 뀌었는지는 소리가 안 들려 모르겠다. 하하하)
우도봉에서 바라본 억새와 성산. by도도쌤
우도봉을 오르고 내려와 더 이상은 오르막이 없을 줄 알았는데 아니다. 우도 등대까지 올레길이 이어진다. 세계의 다양하고 아름다운 미니 등대를 보며 정상에 오르니 등과 이마에 살짝 맺힌다. 그것도 잠시 정상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혀주는데 그 기분이 뭐라고 참 행복하다. 귤을 까먹고 잠시 쉬면서 아래를 바라보는 이 기분이 마냥 좋다.
우도 등대에서. by도도쌤
#6. 배 타는 시각 3시에 맞추어 2배 속도로 걸어가다
4시에 배를 타면 아이들 유치원 하원 시간이 너무 지체된다. 지금이 1시 30분이니 3시까지 '하우목동 포구'로 가려면 1시간 30분밖에 남지 않았다. 여유가 없다. 발걸음이 빨라진다.
하고수동 해수욕장 by도도쌤
확실히 여유가 없고 발걸음이 빨라지니 주위 풍경이 잘 들어오지가 않는다. '하고수동 해수욕장' 중간 스탬프에서 도장을 찍는데 오늘 미션 완료한 것처럼 기분이 좋다. 그렇게 미루던 우도 올레코스를 거의 마감한 느낌이 든다. 여기 '하고수동 해수욕장'은 생각보다 그렇게 예쁘지 않아서, 주위에 너무 카페와 사람들이 많아서 살짝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우리가 여유가 없어서 그렇게 보이지 않았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도 돌담길 by도도쌤
'하고수동 해수욕장'에서 '하우목동 포구'까지는 발걸음이 3배로 빨라진다. 중간 돌담길을 걷는데 너무 예뻤는데 너무 빠른 속도로 걸은 기억밖에 없다. 여기 길은 다음에 여유롭게 한번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4시간을 넘게 걸었더니 다리가 엄청 아프다. 배에 타자마자 경치 구경할 힘이 하나도 없어 1층 방으로 바로 들어갔다. 사람들 아무도 안 누워있는데 아내와 나 신경도 안 쓰고 바로 드러누웠다.
'어! 여기 찜질방이다!'
여기 바닥이 철철 끓는다. 뜨겁지만 정말 좋다. 지친 다리와 허리와 온몸이 뜨거운 바닥에 누워있으니 4시간 걸었던 피로가 천천히 풀린다. 비록 배 엔진 소리가 무척이나 컸지만 우리의 피로를 이길 수는 없었다. 성산항에 도착하기까지 15분이 꿀맛 같았다.
배. by도도쌤
짧지만 긴 우도 여행이 마무리되었다. 아내가 그런다.
"여기 우도 막 특별한 줄 모르겠다. 그냥 제주도 어느 지역 같다."
그 말에 공감이 간다. 우도 막 특별한 줄 모르겠다. 대신, 내 마음속엔 '홍조단괴'의 아름다움이 남아있고, 저 멀리 성산의 실루엣이 남아있다. 다음엔 아이들과 온다면 전기자동차를 빌려 우도 한 바퀴를 돌고, 훈데르트바서도 구경을 해야겠다. 올레꾼의 시각이 아니라 전기자동차를 탄 빠른 여행객의 시선으로 우도를 그때는 바라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