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지해수욕장'과 '한담 해안산책로'가 있는 올레길 15코스. 제주 살이 하면서 여길 다시 간다고 하니 그 설레는 감정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때는 10여 년 전, 임용고시 합격 후 제주도에 놀러 왔을 때, 곽지의 푸른 바다에 홀려 바로 차를 멈추고 해변에서 미친 듯이 놀았던 적이 있다. 그 이후로 곽지는 나의 가장 아끼는 여름휴가 장소가 되었고, 학교 지인들도 초대해 즐겁게 놀았고, 초등학생 동창들이랑 심지어 아내랑도 같이 갔던 곳이다. 그런 곽지가 있는 15코스를 간다고 하니 생각만 해도 무척 설레었다.
22년 10월 말의 제주 곽지해수욕장 풍경. by도도쌤
곽지를 생각하니 아내랑 둘이 같이 여기 왔을 때가 생각난다. 숙소가 바로 곽지 해수욕장 근처여서 아침을 먹고 곽지 해변길을 쭉 따라 걸은 적이 있다. 걸으면서 예쁜 바다도 보고 모래도 보면서 우리의 미래를 이야기했었다. 아내랑 내가 걸었던 길이 그 당시엔 사람도 없는 한적한 길이었는데 지금은 그 유명한 '한담 해안산책로'로 탈바꿈했단다. 그때도 해안길이 참 예뻤는데 지금은 얼마나 예쁘게 바뀌었을지 궁금했었다.
2022년 10월 25일 화요일. 올레길 15코스 시작인 '한림항 도선 대합실' 앞에 도착을 했다. 가을인데도 불구하고 날씨가 무슨 겨울 날씨다. 두꺼운 운동복 바지에 긴팔과 기모 후드 재킷을 입었는데도 얼굴에 와닿는 바닷바람이 무슨 칼바람이다. 아내는 패딩 잠바를 입고 장갑까지 꼈을 정도다. 걸으면 걸을수록 바닷바람이 차다.
인어출몰지역에 인어가 없다. 공중전화도 참 오랜만이다. 전화는 되는지 모르겠다. by도도쌤
'인어 출몰지역'이라는 곳을 지나가는데 바다를 뚫어져라 쳐다봐도 인어는 안 보인다. 귀덕 근처에서 만난 '영등할망'이 바람의 신이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된다.
귀덕에서 만난 영등할망 동상. by도도쌤
2시간을 걸었더니 다리도 아프고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출발하기 전에 검색해 놓았던 식당을 아내도 좋다며 가자고 한다. 식당 근처로 가는데 곽지해수욕장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높은 건물도 보이고 식당이 많이 생겼으며 백사장까지 더 넓어진 느낌이다. 드디어 오늘의 밥집 도착. 식당 앞에 멍멍이 한 마리가 있는데 무서웠지만 용기 내어 들어간다. 가게 이름은 '임순이네 밥집'이다.
따뜻한 몸국과 고사리해장국이 일품이었던 '임순이네 밥집' by도도쌤
가게 안에 손님이 북적북적하다. 손님들 표정을 보니 하나같이 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밥을 먹고 있다. 이 집 대표 메뉴인 고사리 해장국과 몸국을 하나 시켰다.
'몸국'
중문에 이사 온 친구가 먹어봤다는데 괜찮았다고 꼭 한 번은 먹어보라고 추천한 음식이다. 제주 전통 음식이라 한 번은 먹고 싶었는데 올레길 걸으면서 몸국 가게만 숫하게 봤었다.
'어떤 맛일까?'
'저번에 먹은 각재기국과 비슷한 맛일까?'
걱정 반 기대 반이다. 몸국 소개가 가게 벽에 붙어 있어 읽어보니, 제주 지역에서 잔칫날에 먹었던 음식으로 돼지고기 삶은 육수에 불린 모자반을 넣어 만든 국이라고 한다. 몸 보양 음식이라 몸국인 줄 알았는데 아니다. 모자반을 제주어로 몸이라 하니, 몸국의 정체는 바로 모자반 국이었던 거다.
몸국 소개글을 읽고 나니 드디어 몸국이 나왔다.
짜잔!
몸국. by도도쌤
드디어 그렇게 궁금했던 '몸국'을 먹어 본다. 음... 미역줄기 무침 맛이 쫙 입안에 퍼진다. 국물은 죽같이 걸쭉한 게 담백하면서도 식감을 자극한다. 모자반에다 돼지고기도 많아 든든한 맛이다. 이런 맛을 제주도에서는 '베지근하다'라고 한단다. 몸국 먹으면서 제주 문화와 제주말까지 알게 되었다.
차가운 바닷바람에 몸이 얼었는데 뜨뜻한 몸국을 먹으니 몸과 마음이 따뜻해진다. 몸국, 나한테는 모자반 국이 아니라 몸을 위한 몸보신 국, '몸국'이다. 한 그릇 뚝딱 해치웠는데 또 와서 먹고 싶은 맛이다. 뭔가 몸이 추울 때 뜨끈한 돼지국밥이 생각나듯 이 몸국 또한 생각이 날 것 같다.
몸국을 먹고 따스한 햇살 아래 한담해안산책로를 걷다. by도도쌤
몸국 한 그릇에 기운이 솟는다. 찬바람도 별로 차갑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곽지의 푸른 바다와 하얀 모래가 쫙 펼쳐져 있는데 제주가 눈에 더 잘 들어온다. 새로 만들었다는 '한담 해안산책로'로 길이 예전보다 훨씬 예쁘다.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해안로를 산책하는데 나 보다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몸국에 제대로 몸보신 한 날, 곽지해수욕장과 한담 해안 산책로가 꽃길처럼 아름답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