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1년 살이하면서 차귀도에서 배낚시를 한 번 했었다. 관광객을 상대로 한 배낚시로 가격은 만원 안팎이다. 10분 정도 배를 타고 나가서 '손맛' 위주로 낚시를 하는데 정말이지 손맛은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문제는 잡은 고기 대부분이 크기가 작은 '용치놀래기'라서 회로 먹거나 매운탕으로 먹기에는 부족했다. 그래서 잡은 물고기는 다 방생을 해주었다. (바늘에 매달린 물고기가 너무 불쌍했어요^^;)
그렇게 한 번, 배낚시를 하고 나니 뭔가 아쉬웠다. 물고기의 천국 제주까지 왔는데 뭔가 묵직한 물고기 한 마리는 제대로 낚고 싶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는가? 마음으로 빌었는지 그 기회가 나에게도 찾아왔다. 아들 유치원 친구 아버님(J아버님)이 선상낚시를 한 번씩 가서 오징어나 돔을 잡아온다고 했다. 내가 낚시에 관심이 있고 한 번은 선상낚시를 하고 싶다고 하니, 날 좋은 날 연락을 한 번 준다고 했다. 그리고 10일 정도 후, 제주도 떠나기 2주 전에 드디어 J아버님이 연락을 주셨다.
"00이 아버님, 내일 시간 되세요?"
"네. 당연히 됩니다."
"내일 6시 50분까지 하효항으로 오시면 됩니다."
"뭐 준비할 거는 없나요?"
"신분증 챙기고, 옷 따뜻하게 입고 오세요. 장비는 제가 챙겨갈게요!"
"아! 감사합니다."
이어 일정표와 가격, 그리고 준비물이 상세하게 적혀있는 안내문구를 보내주신다. 아침 7시에 출항하여 저녁 5시에 들어오는 10시간 코스로 가격은 10만 원이다. 이번 선상낚시의 목표어종은 '갑오징어'라고 한다. 설렌 마음으로 아침 일찍 일어나, 내복에 옷을 두 겹이나 껴입고 하효항에 도착했다.(J아버님이 픽업도 해 주시고, 점심 먹을 김밥도 사서 항구에 갔다.)
이 깜깜한 어둠 속에 환한 불을 밝히고 있는 배를 보니 마음이 설레었다. 자리 추첨도 잘 되어 배 맨 뒤쪽에 자리를 잡았다. J아버님은 배에 타시자마자 엄청 바쁘시다. 집에서 채비를 보통 다 해오는데 어제는 아내에게 미안해서 채비를 못 했단다. 그래서 열심히 낚싯줄을 이어시고 끊고 달고 하신다. 에기(물고기모양으로 수십 개의 바늘이 달린 부분)에 꽁치 조각을 달아 철사로 열심히 감고 계신다. 내가 제일 부러워하는 사람, 낚싯줄을 자유롭게 다루는 분이시다. 속으로 얼마나 감탄을 했는지 모른다.
도와주고 싶어도 난 초보라 아무것도 못 도와준다. 그저 옆에서 열심히 보고 대단하다고 감탄만 할 뿐이다. 날이 밝아 오니 난 낚시할 생각보다 경치 보는데 시선이 더 뺏겼다. 서귀포 앞바다에서 바라보는 제주가 비경이다. 배값 10만 원 중에 이미 5만 원 이상은 풍경 보는 값으로 쳐도 무방할 정도로 아름답다. 무엇보다 지금껏 섶섬, 문섬 앞모습만 봤다면 오늘은 마음껏 이 섬들의 뒤태를 감상한다. 요 뒤태들이 얼마나 신기하던지 보고 또 본다.
아침
점심
저녁 . 섶섬 뒷태
드디어 대망의 '갑오징어' 낚시가 시작되었다. '베이트릴'이라고 하는데 태어나서 처음 해 보는 릴모양의 낚싯대다. 수심도 숫자로 확인이 되고 J아버님이 사용법도 친절하게 알려주신다. 줄이 안 엉키게 왼쪽 엄지로 살짝 줄 내려가는 부분에 닿게 하란다. 그 느낌이 뭐라고 한없이 줄이 바닷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수심이 94미터네요!"
"네?"
"바닥에 정확히 추가 닿였느지 확인해 보세요!"
정말이지 딱 94라는 숫자가 보이니 줄이 딱 멈춘다. 바닥을 찍었다. 서귀포 앞바다가 그렇게나 깊은지 처음 알았다. 그리고, 갑오징어를 잡기 위해 바닥까지 줄을 내려야 하는지도 처음 알았다. 그러면 이제 갑오징어를 어떻게 잡는다는 것인가? 설명은 해 주신다.
"바닥에 추가 닿은 거 느껴지나요?"
"네."
"그럼, 바닥을 확인하고 릴을 살짝 들고 다시 바닥 찍고 그렇게 반복하다가 뭔가 묵직하면 릴을 잡아당기면 돼요."
"네. 고맙습니다."
설명은 언제나 쉽다. 그리고 실전은 언제나 어렵다. 실전은 몸으로 감으로 익혀야 한다. 아무리 무게감을 느끼려고 해도 추 무게인지 갑오징어 무게인지 감이 안 온다. 당겨도 잘 모르겠다. 그렇게 20여분 동안 계속 릴을 당겼다 내려놓았다 한다.
"삐삐"
배에서 갑자기 소리가 난다.
"다른 장소로 옮기는 신호예요. 어서 감아요!"
오징어가 많이 안 잡혀 다른 장소로 간다고 한다. 릴을 감는데 뭔가 걸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뭐 걸린 것 같은데요."
한 30미터 가까이 감았는데 J아버님이 말하신다.
"시간이 없어서 제가 감을게요."
그렇게 J아버님이 감아올린 낚시 끝에 귀여운 갑오징어 한 마리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어! 어디 걸린 거 아니었어? 그 느낌이 갑오징어 낚은 느낌이라고?'
"서 보세요. 첫 기념사진 찍어야지요."
그렇게 J아버님이 갑오징어를 든 내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주신다.
잡았는데 잡지 않은 느낌, 첫 갑오징어는 내 공이 70, J아버님 공이 30으로 합작하여 잡게 되었다.
배가 이번에는 제법 멀리 나간다. 파도가 갑자기 높아진다. 배가 출렁출렁거리면서 내 속도 울렁인다. 멀리 나온 이곳도 허탕이다. 배낚시가 이렇게 포인트를 찾기 위해 자주 옮기는지 처음 알았다. 다시 연안으로 가는데 속이 막 부대낀다. 배를 오래 타신 아버님은 이 정도는 장판 수준이라고 하는데 나한테는 아니다. 속이 안 좋다. 올리고 싶다. 그런데 뭔가 민폐라는 생각이 들어 꾸역꾸역 참아본다. 안 되겠다. 아침에 먹었던 꿀한라봉차가 꾸억꾸억 목 가까이 올라왔다. SOS를 날린다.
"J아버님, 제가 멀미가 나서 그러는데 화장실 가서 하면 되나요?"
"아니요, 여기서요."
(손으로 배 뒤쪽 바다를 가리킨다.)
그래, 장소를 확인하니 안심이 된다. 바로 배 뒤쪽으로 달려가 답답함을 해소한다.
"꾸억!"
"꾸억!"
"꾸억!"
살아야 했다. 그 해소가 멀미였다. 정말이지 '배를 항구에다 절 내려주세요'란 소리가 거의 나올 뻔했다. 낚시고 뭐고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멀미를 하고 났더니 답답함이 신기하게도 사라졌다.
"배는 적응하는 수밖에 없어요!"
"아! 네!"
"속이 좀 안 좋아도 뭐 좀 드세요."
J아버님이 그렇게 말씀하시자마자, 선장님께서 어묵탕을 주시는데 처음에는 먹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J아버님의 말을 믿고 국물을 한 모금 마셔본다. 멀미는 멀미고, 국물은 국물이었다. 어묵탕 국물이 어찌나 맛있는지 하하하. 올리고 다시 먹고를 반복한다.
내가 잘 못 잡으니 낚시를 잘하는 분께서 오셔서 설명을 해주신다.
"여기, 릴 끝이 보이죠? 내려갔다 평평해지고 그러죠?"
"네!"
"이게 파도 너울 때문에 그런 거예요."
"네!"
"이게 반복되다가 뭔가 불규칙하다는 게 있으면 한 번 당겨보세요."
"아! 네. 고맙습니다."
어묵탕의 힘과 전문가님의 코치로 이제 제대로 낚시를 해 보려 한다. 한 마리도 못 잡은 J아버님도 "이제 밑밥을 제대로 뿌렸으니 고기가 잘 잡힐 거예요."라며 농담을 하신다. 그 말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밑밥의 힘이었을까 코치의 힘이었을까 정말이지 내가 무슨 감으로 잡았는지 모르겠지만 연속으로 갑오징어 한 마리와 한치 한 마리를 잡았다. 다들 오늘 처음 하시는 분 맞냐면서 물어보신다. 하하하. (속으로 엄청 기뻤다.)
포인트를 여러 번 옮긴다. 옮길 때마다 나는 실패다. 저 멀리 제주 풍경 보는 것 만으로 가슴이 벅차다. 배 위에서 먹는 뜨뜻한 라면 국물은 마지막 한 국물까지 맛있다. 김밥과 라면의 조합이 환성적이었다.
역시 J아버님은 고수였다. 난 초반에 몇 마리 잡은 게 다였지만 J아버님은 후반이 강하시다. "히트!" 하시면서 전동릴 소리가 징징징 거린다. "잡았어요?"라고 내가 물으니 "네!" 하신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삐삐"소리와 함께 버저비터를 날린다. 릴끝에 갑오징어가 매달려 있었다.
장장 10시간을 출렁이는 배 위에 있었다. 난 4마리인가 5마리를 잡았는데 J아버님이 몇 마리 더 주신다. 고맙다. 물속에서 날개를 움직이는 갑오징어가 너무 귀엽다. 먹고 싶은 욕심보다 키우면서 보고 싶은 욕심이 더 크다. 하얀 비닐봉지에 담긴 녀석들 검은 먹물을 찍찍 뿜고는 조용하다. 잡는 건 좋았는데 녀석들 죽은 모습을 보니 또 마음이 아프다.
(아귀 녀석도 나의 에기를 물었다.)
"배에서 내리면 길이 울렁거릴 거예요."
"전 괜찮은 데요."
J아버님이 그러시는데 신기하게도 배에 내리자마자 난 멀쩡했다. 하지만,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나니, 거실이 배가 된다. 바닥이 오르락내리락하며 식탁이 오르락내리락한다. 잠을 자고 글을 쓰는 지금도 바닥이 울렁인다.
이번 배낚시 하면서 여러 가지를 느꼈다. 먼저, 제대로 된 갑오징어를 내 손으로 낚았다는데 제일 뿌듯함을 느낀다. 그리고, 나 때문에 이런 기회를 주시고, 줄 이어주고 풀어주고 채비를 해 주신 J아버님에게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 끝으로, 바다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힘들지를 알게 됐고(멀미의 고통이 다시 떠오른다), 땅의 소중함을 제대로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