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도쌤 Sep 06. 2024

오랜만에 '버럭이 나'를 만났다.

책아 어디 있노?

"아! 진짜.. 샬롯의 거미줄 책 어딨노?"

책 반납일인데 책이 한 권 안 보였다. 오늘까지 도서관에 갖다 줘야 하는데 없었다.  빌린 책 17권 중에 16권은 다 찾았는데 '샬롯의 거미줄' 한 권은 찾아도 찾아도 나오지 않았다.


슬슬 열이 나기 시작했다. 애초에 계획은 학교에서 일찍 조퇴해서 차가 막히기 전에 미리 책을 여유 있게 반납하는 거였는데.... 10분이 지나고 20분이나 았는데도 책이 없었다. 퇴근길인데... 차가 많아질 건데... 마음이 타들어갔다.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버럭이 나'였다.


씩씩거리며 거실 책장을 이 잡듯 샅샅이 뒤다. 내 방 책장 곳곳을 다 훑어봤다. 혹시나 하는 김에 딸 방, 안방까지 싹 다 살펴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한숨만 푹푹 쉬며 영어 알파벳 C를 연속해서 발사하고 있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아내에게 전화 걸었다.


"샬롯의 거미줄 책 못 봤어. 20분 넘게 찾아도 안 보이네."

"그거, 아침에 책상 밑에 있던데."

"다 찾아봐도 없네. 휴~~~"


아내와의 통화 후, 책상 밑을 살피고, 모든 방과 책장을 한번 더 살펴보아도 결국 을 찾을 수 없었다. 30분 가까이 책 찾기에 열중했더니 스스로 파김치가 되어버렸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서 멍하니 있는데 "드르륵"하며 문자 하나가 왔다.


'딸이 들고 갔나?'


다 본 책을 딸이 학교에 들고 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못했다. 아내의 문자를 보니 왠지 그럴 가능성이 커 보였다.


화난 감정을 삭이기 위해 딸이 집에 오기까지 30분을 여유 있게 쉬기로 했다. 좋아하는 스타크래프트 게임 영상을 봤다. 갑자기 앤돌핀이 돌기 시작했다. 내친김에 냉장고에 있는 토마토를 꺼내 씻어서 우지직 씹어 먹었다. 책을 못 찾아서 쌓였던 화가 맛있는 토마토에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삐삐 삐삐 삑"


갑자기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리며 아들이 들어왔다.


"아들, 혹시 샬롯의 거미줄 책 학교에 들고 갔어?"


혹시나 아들이 들고 갔나 싶어 물어보니, 아들이 두 눈을 크게 부릅뜨며 주섬주섬 샬롯의 거미줄 책을 꺼내기 시작했다.


"아빠, 이거 누나가 피아노학원에서 들고 가라고 넣어줬어!"


사정을 들어보니, 학교에 '샬롯의 거미줄' 책을 들고 간 딸이 오늘 반납일이라는 것을 알고, 먼저 집에 가는 아들 가방에 책을 넣어준 것이었다. 책을 보자 헛웃음이 나기 시작했고,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혼자 씩씩거리며 없는 책을 끝까지 찾겠다는 '버럭이 나'가 계속 생각났다. 어긋난 계획에 스스로 무너져 버려 짜증만 내는 '짜증이 나'도 계속 생각났다. 어쩌면 별일 아닌데 마감일이라는 시간이 주는 압박감에 스스로 허둥지둥 어쩔 줄 몰라 툴툴거린 못난 내 모습이 계속 떠올랐다.


그래도 정말 다행인 건, 내가 스스로 화가 났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고, 그 화를 삭이기 위해서 소파에 앉아서 기다릴 줄 아는 지혜를 택했다는 거다. 특히, 그때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맛있는 것을 먹었던 게 탁월한 선택이었다.


늘 침착과 평화를 원하는 나이지만 뭔가를 빠른 시간 안에 찾아야 할 때 스트레스를 자주 받고 버럭이 나가 된다. 그럴 땐 오늘의 교훈을 삼아 이렇게 하자.


우선 기다리자, 그리고 좋아하는 걸 하자. 그리고 맛있는 걸 먹자. 그러면 화도 사라지고 그 상황 쉽게 해결된다. 그런 생활의 팁을 오늘 반납책을 찾으며 투덜거리며 알게 됐다.










매거진의 이전글 봄 소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