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결국 입원을 했다. 그날 오후, 아기 때부터 진료해주시던 소아과 선생님도 뵙고, 치과도 재방문했지만 딸아이 열과 이 아픈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다행히 소아과에서 처방해준 약을 먹으니 열은 나지 않고 있을 만했다. 문제는 밤에 일어났다. 열이 38.7까지 올라간 거다. 조만간 39를 찍을 폼이었다. 장모님의 "아 그래 나둬선 안 된다!'는 말 한마디에 바로 다음날 아동병원으로 딸을 데리고 갔다.
"남편, 딸이랑 먼저 병원 갈 테니 아들이랑 집에 있어요." 하며 일어나자마자 딸을 데리고 달려가는 와이프다.
누나랑 엄마가 눈앞에서 사라지니 아들도 가고 싶단다. "누나, 누나, 누나, 엄마! 엄마! 엄마!" 한다.
어쩔 수 없이 아들 옷 입히고 나도 병원으로 향한다. 일요일인데 병원에 아이들이 많다. 여자 배구 동메달 결정전이 한참 진행되고 있다. 게임 스코어를 보니 2대 0이다. 어렵겠다 싶다. 그래도 투지를 잃지 않고 블로킹 옆으로 때리는 김연경 선수의 노련미가 보인다. 그 사이 우리 딸 소변검사도 하고, 피검사도 하고, 엑스레이도 찍었다. 배구를 계속 보고 싶지만 링거 맞으러 6층으로 올라가는 딸과 와이프다. 아들도 얼른 가자고 한다. 배구는 안녕~ 김연경 선수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올라가니 6층에서 한 아이와 엄마 아빠가 먼저 기다리고 있다.
"이거 하나도 안 아프니까 우리 딸 할 수 있을 거야!"
"아니야.. 아파..."
주사를 맞는다는 소리에 다섯 살 정도의 아이가 흑흑흑 울기 시작한다. 가기 싫어하는 아이를 안고 가는 아버지와 엄마의 뒷모습에 내가 다 그렇다. 링거실에 들어간 그 아이 대성통곡을 한다. "아파 아파~엄마 엄마~~~ 앙~앙~~~" 6층이 떠나갈 것 같다.
이어 들어간 우리 딸 "엄마 엄마 "소리를 지르며 울더니 이내 그친다. 다 키웠다 싶다. 잠시 후 왼쪽 팔에 붕대가 감겨 있고 링거줄이 기다랗게 연결되어 있다. 1시간가량 링거실에서 링거를 맞는 딸이다. 아들과 나 대기실에서 하염없이 기다린다. 아들도 심심한지 안 읽던 책을 들고 온다. 책을 세권 정도 읽어주니 심심한가 밖에 나가자고 그런다. 시장에 가서 친구 따라 요리조리 원을 도는 전어 떼도 구경하고, 누나 갖다 줄 자갈치 하나, 자기 먹을 꿀과배기 하나도 골랐다. 다시 온 병원 2층에서 와이프와 딸을 만났다. 진료를 받고 나온 우리 와이프 표정이 별로 안 좋다.
"피에 염증 수치가 높게 나와입원을 하라고 하네요."
'결국 입원인가 싶다.'
우리 식구 입원실로 올라가는 길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온다.
"와이프, 애들 물놀이는 꽝이네! 리조트 대신 입원실이네! 하하하하!"
여름휴가라고 아이들 물놀이시켜주려고 고민 고민해서 잡은 리조트. 근처도 못 가고 병원 입원실로 향했다. 하루 얼마냐고 물어보니 17만 원이란다. 리조트 대신 병원 1인실에서 이틀을 보내게 되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1인실이 남아있다는 거다. 딸내미 매트리스 위에 누어서 한 숨 푹 잔다. 그 모습이 짠하다. 와이프 집에 가서 2박 할 생활물품을 케리어로 부랴부랴 싸가지고 온다. 이틀을 여기서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 답답하다. 대신 아이들은 좋다. 조금 전에 사 온 과자도 먹고 집에 없는 티브이도 마음껏 본다.
"오에! 내가 좋아하는 로블럭스 게임 나온다!"
"누나 이거 보고 내가 좋아하는 거 보자!"
"어 그래!"
합이 잘 맞는다. 다행히 열도 떨어지고 과자도 잘 먹는 딸이다. 저녁은 어른 한 명 추가(5000원)해서 병원밥을 먹었다. 국은 왜 그렇게 싱겁고, 김치는 왜 그렇게 신지. 오리고기만 먹을만하다. 내일 아침에도 시켜주까란 와이프 말에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집밥이 최고란 걸 다시 한번 느꼈다.
매트리스 하나 달랑 있고 조그만 입원실에서 네 식구 다 같이 자긴 힘들어 보인다. 안 가려는 아들내미를 겨우 겨우 꼬셔서 집으로 왔다. 샤워를 시키고 책을 읽어주니 잘 태세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와 누나를 찾는다.
"아빠~누나 보고 싶어요~엄마 보고 싶어요~ 6층 집 가요~6층 집 가요~"
"아들. 아침에 누나, 엄마 보러 가자~ 지금은 자자!"
"누나 보고 싶어요~~~ 엄마 보고 싶어요~~~"
내가 계속 자는 척을 하니 속상하면 콩순이가 혼자 무대에서 고백하며 노래 부르듯 아들도 콩순이가 된다. 창작 노래 아니 뮤지컬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것 같다.
"내 마음은 누나가 보고 싶다고요... 아빠가 싫어요... 엄마 누나 너무 보고 싶어요!!! 누나랑 싸우지도 않을 거예요... 얼른 아침이 되어 누나 볼 거예요..... 누나..... 엄마...... 보고 싶어요.........."
그렇게 아들 뮤지컬 속의 배우가 되더니 갑자기 우당탕탕 뛰어서 내게 달려온다.
"아빠! 아빠! 저 누나한테 편지 쓰고 싶어요! 종이 어디 있어요?"
"아빠 지금 잠이 와서 잘 모르겠는데...."
어디론가 사라지는 아들이다. 뭐 찢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 아들 찢은 종이 한 장과 색연필 하나를 가져온다.
"아빠 제가 지금 말하는 거 여기 적어요."
"어?"
"이거 누나한테 내일 아침에 갖다 줄 거예요. 이거 편지예요."
"그래... 불러줘요....."
그렇게 누나에게 보내는 편지를 한 줄 한 줄 받아 적었다. 다 쓴 편지를 어리론가 들고 간다. 찍 소리가 들린다. 어디 가방에 넣고 오는 아들이다.
"아빠 내일 아침에 누나 보러 가요! 편지도 줘야 해요!"
"그래! 아들 잘 자고!"
그러더니 이내 잠이 드는 아들이다.
자는 아들을 두고 편지를 어디다 뒀을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누나 어린이집 가방 안에 있다. 적어주면서 내용은 알았지만 다시 읽어보니 마음이 짠하다. 누나를 보고 싶은 동생의 마음을 어떻게 이렇게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싶다.
잘 살고 내일 다시 만나자! 또 만나! 누나 다 나아! 나 이제 슬퍼! 그래서 이제 안녕! 누나 말 이제 잘 듣을게! 누나 보고 싶을 거야! 이제 누나랑 같이 만나자! -000-
아들 편지 때문인지 우리 딸 병원에서 잘 먹고 잘 자고 약도 잘 먹고 해서 이틀 밤 자고 퇴원을 했다. 퇴원할 때 의사 선생님이 치주염일수도 있으니 꼭 치과 방문하라고 그런다. 우리 딸, 와이프 정말 2박 3일동안 고생이 많았다.
금요일 그날 왜 내가 괜히 차가운 쭈쭈바를 먹자고 해가지고.... 괜히 왜 내가 목욕하자고 해 가지고.... 그 뜨거운 물속에 있어가지고.... 딸이 아픈 이유가 모두 내 탓 같았다.
집에 온 딸 다행히도 소리 내며 소파에서 방방 뛰고 논다.
"아빠! 노트북 틀어 달라고요!" 고래고래 고함까지 지른다.
방금 만든 블록 자기 꺼라고 동생이랑 큰 목소리로 싸움도 한다.
"내가 만든 거야 이거!"
"나도 하고 싶다고!"
"00이 싫어!"
"나도 누나 싫어!"
어디서 많이 보고 듣던 이 모습, 이 소리... 이게 그렇게 행복한 일인지 미처 몰랐다. 딸아이 아프고 나서야 일상이 이렇게 소중한 일인지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