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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쌤 Aug 29. 2021

"에에에에에 키즈파크다! 빨리빨리!"(제주 여행 첫날)

아빠 육아 일기

무사히 도착한 제주도 공항. 출국 심사를 마치고 나오니 친구 Y가 저 멀리서 보인다. "잘 왔나? 안 힘들었나?"며 내 캐리어를 끌어주는 녀석이다. 공항 문을 나오자마자 비릿한 바다 냄새가 난다. 엄청난 인파의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한다.


제주도 오게 된 이유는 이렇다.  친구 Y가 한 날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여자 친구랑 헤어진 일 듣고 있느라 따로 안주도 필요 없었다. 모처럼 만나는 친구와의 대화가 이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야! 다음 주 뭐하는데?"

"나 다음 주 휴가 내서 제주도 간다. 45일로."

"뭐? 니 혼자?"

"어! 숙소 예약도 다 해 놓고, 차 렌트도 다 해 놨다."

"가서 뭐 할 건데?"

"그냥 사람 없는 오름 좀 걷고 숙소에서 좀 쉴라고!"

친구 Y가 마냥 부러웠다. 혼자서 여행 스케줄을 잡고 혼자서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자유가 있긴 있는 거구나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싶어 친구 Y를 슬쩍 떠 봤다.

"야! 나도 가면 안 되나? 니 한 이틀 혼자서 놀고, 그다음에 조인해서 같이 놀자!"

"어! 나야 좋지! 안 그래도 저번에 혼자 갔는데 좀 심심하더라고! 근데 아들은?"

"어? 아들? 맞네. 음.. 데리고 가면 되지.. 요즘 애들 말 잘 듣는다."

"밤에 울지만 않으면 괜찮다. 나도."

"어 우리 아들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잔다."


그렇게 그 한순간에 친구 따라 강남을 가게 되었다.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일사천리로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다. 코로나 때문에 비행기 값이 이렇게 싸서 놀라기도 했다. 다음 날 아침 괜히 비행기 예약을 했나 싶기도 하고, 코로나 때문에 공항 가는 것도 무지 걱정이 되었다. 친구 Y의 배려로 숙소도 우리만 이용할 수 있는 회사용 타운하우스에 머무르기로 했다. 장도 친구가 다 보고 애들 데리고 떠나기만 하면 됐다. 인생은 그렇게 한 순간의 선택 것이다. 제주도에 아이들 둘 데리고 올 지 누가 알았겠는가?




친구 Y 렌터카에 탔다. 미리 카시트도 준비해 놓았다. 카시트가 달라 아이들 안전벨트 하느라 좀 애를 먹었다. 와이프 집에 놔두고 이렇게 친구랑 아이들 둘 데리고 여행하는 건 처음이다. 생각보다 마음이 편하다. 잘해 낼 수 있을 것 같다. 듬직한 친구도 옆에 있고 말이다.

'제주도야 내가 왔도다!!!'


평소 그렇게 구경하고 싶었던 타운하우스라는 곳에 짐을 풀었다. 최근에 지은 2층짜리 집이다. 아이들이 계단으로 다다다다 올라가서 숨는다.

"아빠! 우리 어디 있게요? 찾아봐요."

"우리 아들 딸 어디 있지?"

"안 보이는데.. 못 찾겠는데..."

"아빠! 저 요기 있지요. 전 여기 있지요~~~" 

문 뒤에서 갑자기 어나오며 싱글벙글 웃는 아들 딸이다. 순간 1층으로 다다다다 다시 뛰어 내려간다. 쌓인 이불을 보고 점프를 하기 시작한다.

"우와! 여기 엄청 재미있네. 우리 점프 놀이하까? "

"그래! 좋아!"

점프 놀이를 하며 순식간에 방이 이불과 베개로 엉망이 되었다. 대패삼겹살과 미역국 김치가 저녁 메뉴였다. 순식간에 한 그릇을 다 비웠다.

"엄마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건데." 아들내미가 그런다. '맞다! 와이프도 같이 왔으면 참 좋았을 것 같다!' 일이 있어서 못 왔지만 다음에 꼭 같이 데려오고 싶다.


아이들 재우고 모처럼 친구와 같이 소주 한 잔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근 연예 이야기와 결혼 이야기가 이어지고 보고 싶은 친구들과 영상통화도 하고 오랜만에 회포를 푸니 속이 다 시원했다. 내일 뭐할까에 대한 계획은 하나도 세우지 못하고 잠이 들어 버렸다.





다음 날 아침, 새벽에 눈이 떠졌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혼자 책을 읽고 혼자 산책을 했다. 오롯이 나만을 위한 제주도 힐링 시간이었다. 짧은 1시간 30분이었지만 머리에서 지울 수 없는 강력하고 소중한 나만의 여행이었다. 혼자만의 여행 그렇게 좋아하고 즐겼는데 그걸 다시 할 수 있게 되어 너무너무 감사했다. 그 기록을 블로그에 남겼다. 사계리 공식 인스타에서 내 블로그 글을 보고 사진과 영상을 캡처하고 싶다고 연락까지 왔다. 너무 기쁜 순간이었다.




아이들과 처음 간 장소는 '알뜨르 비행장'.

일본 식민지 때 전쟁을 위해 일본이 여기에 조그만 비행기 격납고를 여러 개 만들었다. 아이들 데리고 뭐 좀 알려주려고 왔는데 아이들은 아무런 감흥이 없다. 밭에 뿌려놓은 하늘색 총알 모양의 비료제가 뭐냐고만 묻는다. 안 되겠다 싶다. 수학여행식 여은 접는다. 애들 물어보고 가고 싶은 곳을 가기로 정한다.

"우리 딸 제주도에서 뭐 하고 싶어."

"아빠! 민선이 제주도에서 말 탔데. 나도 말 타고 싶어."

"그래! 좋다. 가자."

급하게 검색을  산방산 근처에 말 타는 곳이 있다. 가다가 슬쩍  아들한테도 말 타고 싶은지 물어본다.

"아들도 말 탈래?"

"아니, 난 무서워!"

"그럼 누나 탈 동안 뭐 하고 있을 건데?"

"나는 무서워서 풀숲에서 숨어 볼 거예요. 난 말 무서워."


우리 아들내미 멍멍이가 근처와도 내 손 꽉 잡고 내 뒤로 서는데 그 멍멍이보다 몇 배나 더 큰 말을... 못 타는 게 당연하다. 풀숲에 숨어서 본다는 말에 하하하하 웃음이 나왔다.

"우리 딸 안 무서워?"

"어."

당당하게 대답하면서 말에 타는 딸이다. 예전에 말먹이 주다 손이 물려 피가 나 파상풍 주사까지 맞은 나다. 나도 아들처럼 말이 무섭다. 말 타는 딸이 대견했다. 나도 아들처럼 멀찌감치 떨어져 사진만 찍었다.

말타기 전 코코넛 사달라고 울며 떼쓰던 딸내미, 한 입 빨더니  "맛없어!" 하고 바로 내게 준 코코넛, 그 코코넛을 먹으며 누나 말 타는 모습을 보는 아들내미다.

'아들아! 얼른 커서 너도 말 타자! 풀숲에 숨지만 말고..'




산방산 근처 해안을 한 바퀴 둘러보는데 소나기가 쏟아진다. 자연이 만든 찐 노랑빛 검정 바위 밑에 몸을 잠시 맡겨 비를 피한다. 우리 아들내미 갯강구 한 마리가 자기 발 쪽으로 다가오니 얼른 내 뒤로 피한다. 멍게와 소라를 팔러 나온 할머니 그걸 보고 이러신다.


"바다에 사는 것들은 해로운 게 하나도 없어. 괜찮아!"


 바퀴벌레처럼 생긴 게 해로운 녀석인 줄 알았는데 그 말을 들어서인지 몰라도 괜히 친근해 보인다. 역시 세상은 듣기 나름이고 보기 나름임을 다시 느낀다. 어느새 비가 그치고 해가 쨍쨍 내리쬔다. 아들내미 딸내미 배고프다고 난리다.

"아들 딸, 뭐 먹고 싶어?"

"짜장면요"

'제주도 와서 짜장면....'

며칠 전 이*가에서 먹은 게 너무 맛있었나 보다. 여기 와서도 짜장면을 다시 찾는다. 그렇게 찾은 근처 짜장면집. 친구 짬뽕 한 개, 나 짜장면 한 개, 아들 딸 둘이 합쳐 짜장면 1개를 시켜 먹었다. 짜장면을 원래 그릇이 아니라 조그만 앞접시에 담아 아들내미에게 나눠 주니 이런다.


"아빠, 나 많은 게 좋단 말이야. 아빠처럼 그대로(큰 그릇으로) 먹을래에에에!"


내가 먹던 짜장면 그릇을 통째로 아들에게 주고 난 아들 주려던 그 앞접시에 담긴 짜장면을 호로록 먹는다. 딸한테 구걸하고, 아들한테 구걸하고, 짬뽕 먹는 친구한테도 구걸해서 배를 채운다. 온전한 짜장면 그릇이 그렇게 부러울 줄이야. 대신 공짜밥을 가득 전기밥솥에서 퍼와 짬뽕밥으로 한 그릇 말아먹는다. 속이 시원하다. 아들내미 내 짜장면 통째로 들고 가더니 그래도 거의 다 먹었다. 우리 딸은 말할 것도 없다. 입 주위 짜장이 가득 묻었다. 지나가던 주인아줌마 우리 딸 먹고 있는 걸 흐뭇한 표정으로 서서 한 참을 바라보신다. 여섯 살 아이가 이렇게 잘 먹는 건 처음 인가 보다.


배도 부르겠다 이젠 이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즐겁게 노는 일만 남았다. 박물관을 급 검색해 본다. 테디베어 박물관, 자동차 박물관... 박물관 종류가 참 많다. 어딜 갈지 몰라 고민하고 있는데 이정표에 '뽀로로.... 테마파크'가 나온다.

"애들아! 너희 뽀로로 테마 파크 가서 놀래?" 하고 물어본다.

"에에에에에 키즈파크다! 빨리빨리!" 난리 난리다.

가격을 알아보니 인터넷 구입은 2만 8천 원이다. 와이프한테 어른 1장 아이 2장을 부탁한다. 곧이어 와이프가 연락이 왔다.


"이거 인터넷으로 사면 1시간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다고 하네요. 어떻게 할까요?"


전화하는 사이 테마파크 입구에 벌써 도착했다. 아이들은 얼른 들어가자고 보챈다. 할 수 없이 와이프에게 다시 전활 걸어 취소하라고 했다. 그런데 입구에 갔더니 현장 구입 가격이 4만 원이나 한다. 가격차이에 고민이 많이 된다.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소나기가 한 바탕 세차게 내린다.


"쏴아아 아아 쏴아아 아아 쏴아아 아아" 


순식간에 야외 놀이터가 중지된다. 빗발이 더 세차기 내리더니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와이프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인터넷 티켓을 부탁한다. 괜히 와이프한테도 미안하다. 취소했다 다시 하게 하고... 그 돈이 뭐라고... 결국은 1시간 기다리기도 한다. 비 때문에 출입구에서 하염없이 기다린다. 아들내미 세찬 비 속으로 나갔다 들어오다를 반복하더니 머리가 비로 흠뻑 젖었다. 비가 그칠 즘 우리도 드디어 팔에 티켓을 두르고 입구를 통과했다. 입구 통과 하기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달려가는 아이들. 뽀로로와 타요 세상에 너무 즐거워하는 아이들, 그 아이 둘 데리고 혼자 따라다니느라 애를 좀 먹었다. 그래도 즐겁게 노는 딸내미 아들내미를 보니 마음이 뿌듯했다. 제주도 와서 제주도 만의 여행을 하고 싶지만 아이들이 우선이다. 잘 한 선택이다. 아이들이 즐겁게 놀면 그게 최고다. 이곳에서 무려 3시간을 쉬지 않고 놀았다. 인터넷 가격 대비 최강 효율이다. 아이들 뒷따라 다니며 사진도 많이 찍었다.

더 있고 싶다는 아들 딸을 겨우 겨우 달래서 출구로 나간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겠다는 친구가 반갑게 마중을 나왔다.

"오름 잘 갔다 왔나?"

"근처 오름에 갔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그냥 포기하고 돌아왔다."

"어??? 그동안 뭐 했는데?"

"차 안에서 폰으로 보고 싶은 영화 봤지."

"괜찮나? 여기까지 와서 아들 때문에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미안하다."

"아니다. 진짜 잘 쉬었다."

친구의 잘 쉬었다가 잘 쉬었다로 들리지 않았다. 괜히 아이들 데리고 내가 따라와서 혼자만의 제주도 휴가를 망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미안한 마음에 친구가 먹고 싶은 걸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친구가 갈치정식이 먹고 싶다고 한다. 6시가 살짝 넘었다. 아차 싶다. 4단계, 6시 이후 저녁 식사는 2인까지만 가능하다. 근처 들린 갈치 정식집에 친구 혼자 내려 살짝 물어본다. 즐겁게 웃으면서 되돌아와서는 괜찮다고 한다. 아이들이랑 다 같이 내려 출입구에 들어서는데 주인아주머니께서 깜짝 놀라신다.


"어~~ 남자분이시네... 안 돼요... 전 가족 분들이 오시는 줄 알고.... 괜찮다고 했는데...."


어른 둘에 아이들 둘이라고 친구가 말했던 것 같다. 주인분은 내 친구가 남자니 아빠고, 나머지 어른은 부인이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가족이니까 아이들은 괜찮다고 생각한 거고, 당연히 여자 부인이 들어올 줄 생각했는데, 남자인 내가 아이 둘 데리고 들어가니 주인아주머니께서 아주 난감한 표정을 지으신 거다. 어쩔 수 없이 포장을 하기로 집에 가서 먹기로 결정한다. 포장하는 동안 아들 딸내미 그새를 못 참고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 한다. 아들 딸 커다란 초콜릿 콘을 사더니 잠깐 친구랑 말하는 사이에 손에 해치워버렸다. 놀이터에서 엄청 놀았는지 차 타자 마자 잔다. 입 주위엔 초콜릿 발자국이 곳곳에 찍혀 있다.




집에 도착한 우리 딸 얼마나 신나게 놀았던지 옷 입은 그대로 이불 위로 쓰러진다. 뜨겁고 따뜻할 때 바로 호호 불며 맛있게 먹어야 제맛인 갈치 정식을 집에 와서 먹으니 조금 별로다. 친구에게 괜히 더 미안하다. 아들내미 반찬으로 나온 멸치에 밥 몇 숙갈 먹더니 누나 옆으로 가더니 바로 눕는다.


아이들이 자니 세상 조용하다. 나도 아이들 따라다니느라 피곤했나 보다. 새벽같이 일어나 산책하고 온 것도 한몫한다. 나이 사십이 넘어가니 너무 피곤이 빨리 찾아오는 게 문제다. 역시 세월에 이길 장사 없다. 친구 녀석도 피곤한가 보다. 어젠 그렇게 즐겁게 이야기했는데 티브이 잠시 보고 이야기 잠시 하고 그대로 잠이 들어 버렸다. 제주도의 여행 첫날이 이렇게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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