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중국 아니에요. 한국이에요. 중국집 아니에요."
아빠 육아일기
눈을 뜨니 햇살이 주방 창으로 눈부시게 내리쬔다. 딸 아들은 방에서 자고 있고, 친구는 소파에 누워 자고 있다. 조용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다. 어제와 다른 길을 걷는다.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으니 시야가 탁 트인다. '찌르르르 찌르르르'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사뿐사뿐 사뿐사뿐' 발걸음으로 해변으로 향한다.
멀리 형제섬이 보인다. 아저씨 한 분이 운동을 하고 계신다. 제주도에선 따로 그림을 살 필요가 없다. 이 순간이 그림이다. 제방을 따라 나도 걷는다. 그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 이 순간을 마음에 담아본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하늘과 구름과 바다를 바라다본다. 이 순간 살아있음에 감사한다. 어느 날 이 순간이 불쑥 찾아오면 흐뭇하게 미소 짓겠지.
어제와 조금 떨어진 장소다. 제주도 해안은 거뭇거뭇한 게 뭔가 이색적이다. 돌을 주인공으로 해서 올려다본 모습이 또 그림이다. 구멍 난 현무암 돌 무리와 파도, 산방산의 오묘한 정기가 나의 눈과 마음을 매료시킨다. 어찌 그냥 갈 수 있겠는가? 찰칵!
걷고 있으니 올레길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를 보니 와이프와 함께 신혼시절 올레길을 걸을 때가 떠오른다. 여긴 제주올레 10코스 길인가 보다. 꼭 와이프랑 두 손 잡고 아침 산책해야겠다.
오늘 일정은 단순하다. 곽지 해수욕장에 가서 해변에 발 담그고 놀기다. 그리곤 점심 먹고 공항 가기가 다다. 그렇게 제주를 떠난다니 허하다. 며칠 더 머무르다 가고 싶다.
차를 타고 도착한 곽지 해수욕장. 첫 발령 때 선생님들과 함께 의샤의샤해서 여기 곽지에 와 아이처럼 물장구도 치고 마음껏 놀았었다. 초등 친구들과도 오고 개인적으로 자주 온 내가 제일 사랑하는 장소다. 그 사랑하는 장소에 내 새끼들을 데리고 온 것만 해도 감동 그 자체다.
아이들은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래성만 신나게 쌓는다. 웅덩이를 만들어 내가 안에 아기 게 몇 마리를 잡아준다. 에메랄드 맑은 제주도 바닷물이 눈앞에 보이는데 물 안에도 못 들어간다. 그림의 떡이 따로 없다. 발만 담갔으니 그걸로 만족한다. 사진도 빼먹을 수가 없다.
발을 씻고 차에 탄다. 좀 놀았더니 배가 고프다.
"오늘 점심은 뭐 먹을까?" 내가 아이들에게 물어본다.
"짜장면요."
"이틀 연속은 아빠가 싫은데."
"난 싫어! 난 짜장면이 좋단 말이야."
우리 딸 며칠째 짜장면에 목숨 걸었다. 어째 어릴 적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차 타고 지나가다 돈가스 가게가 보인다.
"돈가스 먹으러 가자. 맛있겠다."
"싫어, 짜장면이 좋단 말이야."
조용히 있던 아들내미 돈가스 가게가 지나고 나니 그제야 돈가스 사달라고 아우성이다.
"돈가스 돈가스." 야단 법석이다.
애들한테 괜히 물어봤나 싶다. 머리가 아프기 시작한다.
우리 딸 그 와중에 계속 '짜장면.. 짜장면.. 짜장면' 노래를 한다. 나도 모르게 불쑥 딸에게 이런다.
"딸 이제 중국집은 그만 가자."
내가 그러자 우리 딸 답이 가관이다.
"여기 중국 아니에요. 한국이에요. 중국집 아니에요."
순간 일이 초 얼음이 되었다. 그리곤 '하하하하하하' 한참을 웃었다.
"아빠, 중국집 여기 아니에요. 한국 집이라고요."
혼잣말로 연신 투덜투덜 거리는 우리 딸이다.
'우리 딸 중국집이 짜장면 가게라는 걸 언제쯤 알까?'
결국은 친구 Y가 제주도 한 번씩 올 때마다 자주 들른 정식 식당에 가기로 한다. 맛이 괜찮다고 그런다. 그런데 네비가 배가 고파 정신이 혼미했는지 꼬불꼬불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길로 안내한다. 우리 아들내미 쿨쿨 잔다. 아들내미를 깨워서 도착한 식당. 정식이 푸짐하다. 밥에 미역국 각종 집 빈찬들. 제주도 와서 제일 밥답게 먹은 밥이었다.
"야! 진짜 맛있다."
"아빠! 미역국 더 주세요."
"전 밥 더 주세요."
며칠 굶은 것처럼 밥을 먹는 아들내미, 딸내미다. 3인분을 시켰는데 밥도 더 달라하고 미역국도 두 번이나 더 달라고 했다. 친구가 살며시 내게 이런다.
"야 내가 이렇게 눈칫밥 먹긴 처음이다. 다음에 너희 어디 식당 가면 애들 1인분씩 꼭 시키라고 와이프한테 얘기해주라."
"어! 그래야겠다!"
배가 부르다. 카시트를 먼저 반납하고 차도 반납하고 공항에 왔다. 국제공항 맞다. 사람이 무지 많다. 마스크 위를 한 번 더 꽉 누른다. 아이들 마스크도 코 위로 꽉 올려준다.
2박 3일 제주도 여행이 비행기 이륙과 함께 끝이 났다. 답답한 코로나 시절에 큰맘 먹고 간 시간이었다. 친구 덕분에 멋진 제주도 경치도 보고, 아들 딸과도 좋은 추억을 만들었다. 친구야 고맙다! 여행이란 걸 꿈도 못 꿨는데 그 꿈을 이루게 해 줘서 말이다. 제주도야 안녕~언제 한 번 다시 만나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