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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쌤 Nov 18. 2021

40대 내 인생 '마음 종합검진'책과 다섯 가지 처방

정재찬,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을 읽고

 도서관이라는 곳에 참 오랜만에 다. ‘우와! 이거 완전 신세계다.’ 아이들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책들이 어마 무시하게 많다. 넓은 독서대를 갖춘 1인용 책상은 가히 환상적이다. 둘째 아이 책 찾으러 이곳저곳 구경하다 독후감 포스터가 눈에 쏙 들어온다. “아내, 이 책 있는지 한 번 알아봐 줄래?” 그냥 던진 말에 잠시 후 노란색 책 하나를 내게 건네준다. ‘오! 노란색 귀엽다.’ 근데 제법 두껍다. 부모, 공부, 마음 등 내가 좋아하는 주제가 많다. 왠지 이 노란 병아리 책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느낌이 좋다. 어서 읽고 싶어 <밥벌이> 몇  읽었는데 쉬운 것 같으면서도 왠지 어렵다. 더 읽고 싶은데 아들내미 슬슬 놀러 가자고 보챈다. 어쩔 수 없이 책을 덮고 놀이터로 향한다.


 이렇게 내게 다가온 책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이 조그만 책 속에  인생이 다 들어 있음에 깜짝 놀랐다. 별생각 없이 매일 하는 밥벌이에 소중함이 생겼고, 살아계시지만 한 번도 씻겨 드리지 못한 어머니 발이 떠올랐고, 나랑 평생 같이 살겠다고 결혼한 와이프의 짠한 속마음이 보였다. 마치 40대 내 인생 ’ 마음 종합검진‘을 하는 것 같았다. 내 마음을 검진해주는 이 책. 여기가 아프니 이럴 땐 이렇게 하는 게 어떻겠냐는 메시지를 시에서 작가의 툭툭 던지는 말투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깨달았지 못했을 내 인생 ’ 마음 종합검진‘  다섯 가지 처방을 지금부터 이야기하고자 한다.


 ’ 귀하는 너무 잘하려는 마음을 조금은 버려야 해요.’라는 첫 번째 처방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작가님이 바로 옆에서 내게 말해주는 것처럼 이 말을 고 세상에나 마음이 너무 편안해졌다. 올해 초등학교 1학년 담임교사인 나. 늘 아이들 마음 하나하나 신경 써야 하고, 수업은 철두철미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그 조급한 마음이 항상 내 옆에 거머리처럼 꼭 달라붙어 있는 걸 발견한 것이다. 내 피를 야금야금 빨아먹고 있었던 눈에도 보이지 않던 그 시커먼 거머리를 비로소 떼어 놓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누구나 못 할 수도 있으니 조급한 마음은 내려놓고, 다그치지 말고 다독이라는 지혜를 작가님이 주신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교실 속 아이들그동안 얼마나 많이 다그쳤는지 그 거머리를 발견하고 떼고 나니, 아이들을 다그친 게 아니라 나 자신을 그동안 심하게 다그친 걸 알게 되었다. 아이들과 나를 다독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나의 행동과 말에 너무 깊은 반성이 들었다. 누구나 못 할 수도 있으니 다그치지 말고 다독이라는 처방을 가슴속 깊이 새기고 살 것이다.


 '귀하는 인생은 가까이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니 멀리 보세요.'라는 두 번째 처방도 매우 마음에 들었다. 순간 증기가 머리끝까지 올라와 뒷목까지 잡게 만드는 1학년 아이들의 말과 행동은 단연코 비극의 끝판왕이다. 책을 통해 그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는 지혜를 배운 탓에 롱샷으로 피사체를 두고 망원경으로 멀리서 보려고 순간순간 사투를 벌다. 아이의 말과 행동도 인생의 한 과정이고 멀리서 보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번쩍 든다. 그렇게 아이들과의 감정 소모를 아끼고 자신을 다독이려고 애쓴다. 사실, 가까이서만 보면 점심시간 우리 반 아이들 떠드는 모습 신경이 바짝 쓰인다. 밥이 잘 안 넘어간다. 입에서 잔소리가 나오려다 '멀리서 보자.', '멀리서 보자.'라고 두 번 나 자신에게 말하고 잔소리를 참고 다른 반을 슬쩍 쳐다본다. 그런데 옆 반 아이들도 우리 반 아이들처럼 똑같이 떠들고 있다. 옆 테이블 쪽으로 약간만 멀리 봤을 뿐인데 내 마음이 놓인다. 굳이 우리 아이들에게 심하게 잔소리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너무 가까이 보고 모든 걸 판단했던 내 마음이 편해졌다. 내 마음과 아이 마음이 다치고 있는데 아이 하나하나에 내 마음 하나하나에 너무 일희일비하여 다그치지 말라 슬기로운 처방을 해 주신다. 고맙고 또 고맙다. 그런 내 마음을 진단해주고 처방해 주니 점심시간 밥 먹는 내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귀하는  교실은 사람을 살리고, 나누는 곳이니 진정한 교실에 대해 생각해 보세요.'라는 세 번째 교실 처방도 해 주신다. 10년 넘게 수업만 잘하고 아이들이 다치지 않고 잘 지내기만 하면 되는 게 교실인 줄 알았다. 교실 전체를 보지 못하고, 참다운 교실 모습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하지 않았던 나 자신이 바보 같았다. 다행히도 책을 읽고 나니 우리 반 교실 전체가 보이기 시작한다. 2학기 첫날, 새 책에 네임펜으로 이름을 적어야 하는데 전학생 한 명이 네임펜을 못 빌리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아는 아이가 없으니 빌리기가 너무 벅차다. 눈치만 계속 보던 옆에 있던 여자아이가 먼저 말을 걸며 툭 네임펜을 빌려준다. '됐다', '이거다'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마음과 마음이 이어진 순간이다. 작가님이 말한 바로 그 교실 '나누는 교실'이 실제로 눈앞에서 일어났다. 내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주 자연스럽게 말이다. 아름다운 나눔이 있는 이런 마음이 있는 곳이 진짜 교실이었다. 그런 큰 그림이 있는 교실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진정한 교육은 삶에서 이루어진다고 하니 수업 준비에 너무 큰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음을 알았다. 수업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아이들 하나를 관찰하기 시작해 보려고 한다. 스스로 배움이 일어나고 있는지, 스스로 나누고 있는지, 사람을 살리고 있는 교실이 되어 가고 있는지 말이다. 아침 독서시간 자세히 보니 아이 하나하나 좋아하는 걸 스스로 발견하고 실천하고 나눔을 실천하는 우리 반 아이들이다. 굳이 나의 신경질적인 잔소리는 필요가 없다. 교실에서 나만 빼고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스스로 즐기는 아마추어들이다. 교실은 나눠어야 하고 사람을 살리는 곳이다. 잊지 말자! 그게 아마추어 정신이다.


 ‘귀하는 본인을 고마워하고 미안해하는 아내가 있어서 참 다행이에요.’라는 네 번째 소중한 처방을 해 주신다. 우리 부부 결혼한 지 7년 동안 다섯, 여섯 살 연년생을 키우면서 지금까지 많이 힘들었다. 다행히 애들이 조금 커서 요즘은 나름의 자유 동굴 속에서 기쁨을 찾고 있지만 말이다. 그래도 힘이 드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퇴근이 늦는 아내, 퇴근이 빠른 나. 어린이집 하원, 저녁 식사, 샤워는 오롯이 나의 몫이다. 일이 많아 늦는 아내를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만 마음으로 이해가 가지 않아 퇴근해서 집으로 들어오는 아내 얼굴도 반갑게 안 쳐다본 내가 너무 미웠다. 늘 먼저 토라지고 말도 안 하는 나 자신이 미웠다. 서로의 힘듦만 얘기하는 아내와 나. 이 어두운 분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대화는 하지만 진정한 대화가 아니다. 잘잘못을 따지고 시비를 가리기 위한 대화는 도움이 전혀 안 오로지 화해를 위한 대화를 하라고 한다. 그렇게 또 하나 배우니 치사한 내 모습이 보인다. 가슴으로 아내를 이해하지 못한 국 맛도 모르는 국자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적어도 국자의 신세는 면해야 하지 않겠는가. 다행히 아내가 먼저 미안하다며 고맙다며 말을 한다. 그 아내가 너무 고맙다. ‘정순아보고자퍼서죽껏디시펄‘ 이렇게 적지는 못할망정. 파리는 업어주고 자기는 안 업어준다고 칭얼댈지언정, 아내는 나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나의 어린 왕자다. 제주도 밤하늘보며 축가에서 불렀는 노래를 아내에게 불러줄 날이 곧 오기를 바라고 있다. 먼저,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말해주는 아내 덕분에 내 마음이 넓어진다.


  ’ 귀하는 큰 은혜 부모에게 받았으니 그 사랑을 자식에게 베풀어라.’라고 나의 인생 마지막 처방을 해 주고 있다. 부모 편을 보며 마음이 먹먹했다. 돌아가시기 전에 작가님이 아버님에게 존경합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울컥했다. 사실,  아버님에게 존경한다는 말도 한 번 못 하고 아버지가 그냥 바다 나라로 가버렸다. 아버지랑 소주 한잔 하며 마음속에 있는 진짜 대화도 한 번 못 했다. 발톱 깎아주는 것은커녕 발도 한 번 씻겨 드리지 못한 못난 아들내미다. 그래서 남아있는 엄마한테 발을 씻겨 드리려니 아직은 많이 부끄럽다. 짠해야 진짜 부탁이기 전에 올해가 가기 전에 꼭 한 번 엄마 발 한번 씻겨드려야겠다. 한편, 진짜 아프니까 오십이 아니고 난 사십이다. 허리, 무릎, 콜레스테롤까지 갈수록 하나씩 증상이 추가되어 종합병원이 따로 없다. 이 아픈 몸을 이끌고 아이들 놀아주는 게 보통이 아니다. 책을 읽기 전엔 그냥 '내 자식이니까 힘들어도 하자!'라는 수동적인 마음이었는데 책을 읽고 나니 육아하는 것이 부모님께 받은 그 은혜를 아이들에게 주는 숭고한 의미의 베풂과 사랑인 걸 알게 된 것이다. 어린이집에서 하원 시키고 집에 와서 밥해주고 씻겨주고 놀아주고 재워주는 게 이젠 그렇게 지치지가 않는다. 부모님한테 받은 은혜를 아이들에게 오롯이 다시 사랑으로 주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다. 그런 큰 그림을 미리 그려주신 작가님이 고맙다. 받은 은혜를 모르고 살았는데 받은 은혜가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남자들이란 꼭 뒤늦게 깨닫는 존재라더니 나보고 하는 말 같다. 이제야 하하하 웃을 수 있으니 다행이다. 그 큰 은혜를 자식에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주는 게 나의 역할, 부모 역할인 것을 제야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의 인생 ’ 마음 종합검진‘ 책이다. 최소 몇십만 원 하는 종합검진보다 이 시대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만 육천의 ’ 마음 종합검진‘을 강력히 권하고 싶다. 에드 영의 <일곱 마리 눈먼 생쥐> 그림책을 읽어 보았는가? 내 모습이 딱 코끼리를 귀만 만져보고 부채라고 생각하고, 다리만 만져보고 기둥이라고 생각하는 눈먼 생쥐와 같았다. 금은 전체 코끼리 모습이 보이고 나의 전체 인생 한눈 다. 눈먼 생쥐는 이제 안녕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유한준의 말을 가슴에 새기게 되었다.


 이 책을 읽기 전의 나와 읽고 난 후의 나는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졌다. 나무를 보지 않고 숲을 보는 지혜가 생겼다. 거지 소녀가 아버지 생일이라고 동전을 내미는 당당함이 생겼다. 친구 가방이 열렸다며 몰래 따뜻한 붕어빵을 넣어주는 따뜻함이 생겼다. 그래서 지금 달라진 나에 감사하고 이 책에 더 감사한다. '마음 종합검진'이 필요하신 분이라면 당장 사서 읽어 보기 바란다. 정말 고맙다! 노란 병아리 책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아!




2021.11.18일 목요일.

오늘은 대입 수능 치는 날이다. 그리고 하필이면  제21회 부산시민 독후감 공모 수상자 발표가 있는 날이기도 하다. 독후감을 어른이 되어서 처음 써 봤다. 책을 읽고 쓰고 다듬는 데 걸린 시간이 족히 1주일은 걸린 것 같다.


그렇게 공을 들여 독후감을 써냈으니 결과가 너무 궁금다. 발표 며칠 전부터 메일을 수시로 확인다. 문자도 수시로 보는데 광고 문자 하나도 안 온다. 결전의 발표날, 수상자 파일을 열었는데 내 이름이 없다. 힘이 쭉 빠진다. 사람들 앞에서 태연한 척했지만, 물에 흠뻑 젖은 종이처럼 축 쳐져서 아무 의욕이 없다. 그동안 글쓰기가 아무 의미가 없어진 것처럼 느껴진다.


'아직 부족하구나! 그것도 아주 많이! 너무 기대가 컸구나!'


 대신 글을 쓰면서 아내도 생각하고, 부모님도 생각하고, 내 수업도 생각하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 대해 깊이 반성하면서 더 성숙한 내가 되었다. 그걸로 충분히 만족한다. 다음에 또 도전하면 다. 독후감 공모 후유증은 오늘로 끝내자! 그런 마음으로 부끄럽지만 낙방한 내 글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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