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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쌤 Sep 18. 2021

일상 탈출: 장어구이와 문어 라면

"행님, 제가 봐 은 데 있는데 그 집으로 이번엔 가죠?"

"어디?"

"장어 집요. 자전거 타고 가는데 포차식 자리도 있고, 손님들도 제법 있고, 무엇보다 냄새가 죽여주더라고요!"

"난 좋지! 장어 안 먹어 본 지 진짜 오랜만이네."

"그럼, 장어 콜!"

"오키!"


혼자 사는 동생 D. 아이들과 꼼짝없이 집에 있어야 하는 나와 달리 D는 저녁에 시간이 많다. 그 자유로운 시간에 최근에 산 전동자전거로 동네란 동네를 다 돌아다니며 맛난 곳을 탐방한다고 한다. 이번에 봐놓은 장어집이 최근 탐방 장소라며 한사코 그 집을 추천다.


우리 아내 D와, 나와 같이 육아 최전선에 있는 Y와 회식하는 걸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금요일 저녁 조금 이른 시간에 들른 장어집. 손님이 한 팀 밖에 없다. 생각보다 썰렁하다. 민물장어가 좋냐며 바닷장어가 좋나며 옥신각신하다 결국은 먹기 쉬운 바닷장어로 선택을 했다. 기본 반찬과 숯이 들어오고 이어 접시에 막 잡아 썰은 바닷장어가 보인다.

"행님, 저거 보이소? 움직이는 보여요?"

"우우우, 무서워. "

접시에 놓인 꼬리와 얼굴, 몸통들이 전기가 찌릿찌릿 온몸을 관통하듯 꿈틀꿈틀 거린다. 숯불에 올리니 하얀 살이 노릇노릇 익어가고, 짙은 검초록 등 껍질은 먹기 좋게 살짝 그을려진다.

 

"자, 익은 것 같은데 한 번 양념장 안 바르고 그냥 한 번 먹어볼까요?"

그렇게 막 구운 따뜻한 장어를 입안에 넣어 본다. 살이 사르르 녹는다. 양념장이 없어서 그런지 살짝 비린 맛이 나지만 두툼한 살맛이 고소하다. 그리고 이어 양념장을 바르고 조금 구워 먹어본다. 양념장과 함께한 장어 맛이 기가 막히다.

"자, 한 잔 하자!"

"짠!"

막내 I가 늦게 와 조인을 했다. 장어 1kg를 더 시키고 장어탕으로 마무리를 하였다. 코로나의 일상에서 맛있는 장어를 먹으며 일상을 탈출하는 우리. 저녁도 마음 놓고 못 먹는 이 상황에 이게 뭐라고 그 일상적인 저녁이 전혀 일상 같지 않은 꿈같았다.




과자 두어 개와 음료수 몇 개를 사서 동생 D집에 왔다. 일명 태평양 아지트다. 올 때마다 방값 타령이다.

"행님, 이번엔 방값은 주셔야 됩니다."

"어. 그래!"

올해 들어 두어 번 왔는데 이젠 내 집처럼 편하다. 들어오자마자 화장실을 가고, 양말 벗고 요가 메트에 벌렁 드러눕는다. 우리 집에 없는 티브이 리모컨도 눌러본다.

'아! 이런 느낌이구나!' 리모컨 누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근데 별 재미있는 게 없다. 30분 정도는 각자 폰도 하며 장어 먹은 배를 꺼준다. 혈압이 높게 나와서 제로 칼로리 1.5L 사이다를 마시는 I, 나머진 오징어칩에 각자 고른 맥주로 가볍게 목을 축였다.

"행님, 이제 문어라면 드셔야죠?"

"그래! 출출한데 딱이네."

사실, 3월에 동생집에 와서 라면이 먹고 싶어 냉동실을 뒤지다 이미 완숙한 문어를 넣어 끓어 먹은 적이 있다.

"완숙한 문어 라면에 넣어봤자 아무 맛 안 납니데이. 다음에 제가 문어 잡아 냉동해 놓을 테니 그 문어라면 꼭 한 번 해 줄게에."

동생 D가 몇 번이나 이 말을 내게 하곤 했었다. 동생이 몇 달 전에 문어 출조를 다녀와서 잡은 돌문어 몇 마리를 냉동실에 얼려 놓았고 언제든지 행님 시간 되는 날에 오라고 했다. 그리고 그 '문어라면' 먹는 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자! 다 됐습니다. 한 번 먹어보시죠."

"우와~비주얼 끝내준다."

"행님, 문어라면 국물이 죽여줍니다. 국물 많이 드세요."

국물을 한번 먼저 먹어 본다. 그냥 라면보다 확실히 국물이 시원하다. 문어를 한 번 씹어본다. 생각보다 질기다.

"야! 이거 턱 나가는 거 아니가?'

"행님, 계속 씹어보세요. 쫀득쫀득하니 문어맛이 날 겁니다."

진짜다! 질긴 살이 계속 씹으니 연해지고 특유의 문어맛이 입 안에 가득 고인다. 라면과 국물이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한다. 두 그릇을 순식간에 비우고 시원한 문어 라면 국물로 끝냈다.




집으로 가는 엘리베이터 안. 다들 기분이 좋다. 오래간만에 게임도 하고 장어에 문어라면까지 임무 완수를 했다. 동생 D가 작년에 다이어트에 성공했다가 최근에 실패해 다시 원상 복귀한 동생 I에게 장난을 친다.

"뚱뚱한 사람이 제로 칼로리 같은 거 찾는다니까! 그러면서 1.5리터 사이다 원샷하고 말이야!"

"하하하하 행님! 아닙니다."

"제로 칼로리 사이다 다 먹는 것보다 맥주 한 잔 하는 게 훨씬 낫겠다."

그렇게 또 술 먹고 싶은 동생을 놀린다. 동생 I가 술을 안 먹은 바람에 형님들 차도 태워줬다. 택시 타고 집으로 가는 내내 '뚱뚱한... 제로 칼로리...'가 생각나 혼자서 키득키득 웃었다.


모처럼 만에 일상을 탈출했다. 일탈이다. 아주 소박한 일탈이다. 그 일탈 속에 장어란 행복이 있었고 문어라면이라는 의리와 우정이 있었다. 물론 제로 칼로리 1.5리터 사이다라는 빼기 힘든 다이어트도 있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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