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도쌤 Jun 05. 2021

그림책에 푹 빠지다.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 일어난 에피소드 모음

"치킨으로 마스크를 만드는 건가?"

"배고플 때 먹을 수 있는 거 아니야? 그러면 엄청 맛있겠다."

"아이스크림 마스크도 있겠네. 그럼."

"난 치킨 엄청 먹고 싶어."

"난 치킨 껍데기가 좋아."

 아침에 읽어줄 책 표지를 보고는 벌써 이야기꽃이 한창이다. 표지 하나만 봤을 뿐인데 우리 아이들 벌써 치킨과 치킨 껍질까지 먹고 있는 중이다.

"표지를 보고 떠오르는 질문이 있으면 발표해 볼까요?"

"왜 치킨이 속상해 보일까요?"

"왜 치킨은 시험을 못 쳤을까요?"

 질문만 만들었을 뿐인데 벌써 내용 파악이 다 되었다.

"그럼 이제 책을 읽어 볼까요?"

"네~~~~~~~~~~~~~~"

책을 읽으려니 한 아이가 불쑥 말한다.

"선생님, 근데 책 표지에 있는 '그래도 난 내가 좋아!' 이 부분도 읽어야죠." 

자세히 보니 책 상단 테이프 모양 위에 글자가 적혀있다. 아이들의 눈썰미는 대단하다. 나를 앞선다.

"아 맞네요. 그럼 이 부분도 같이 읽어봅시다."

사실, 이 문구가 이 책의 주제라 아이들에게 슬쩍 어본다.

"여러분, 난 내가 좋은 사람 손 한번 들어볼까요?"

거의 다 다.

"그럼, 혹시 난 내가 싫은 사람 있나요?"

혹시나 하고 물은 질문에 세 명의 학생이 손을 든다. 앗차 싶지만 심스럽게 물어본다.

"지은이는 왜 자신이 싫을까?"

"엄마가 제 말 안 들어주고, 화내요. 그럼 제가 상처를 입어요."

"그럼 상진이?"

"엄마가 날 혼내고 동생이 때려요."

"지수는 왜 자신이 싫을까?"

"언니가 계속 양보를 안 해 줘요."

"우리 친구들이 솔직히 이야기해줘서 너무 고마워요. 이 책이 여러분에게 도움이 많이 됐으면 좋겠네요.""

 자신이 싫다는 아이들. 그 애들에게 난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애들아 너희들의 마음을 알려줘서 너무 고마워.




“아빠, 책 읽어 주세요.”

“그래.”

내 옆으로 파고들어 안기는 아들의 품이 참 따뜻하고 앙증맞다.

"아빠, 제 것도 읽어줘야 해요. 동생 다 읽고 나서요."

어느새 우리 딸도 내 옆에 누었다.

 잠은 오고 글자도 잘 안 보이지만 뭐랄까 세상 다 가진 기분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자기 전 책 읽기는 아이들의 자장가가 되었다. 오늘 아들이 들고 온 책은 <소 키우는 코키나와>. 수를 셀 줄 몰라 옥수수를 못 받은 아이들에게 몇 개를  더 줘야 할지 모르는 코키나와의 걱정에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아들, 닭이 몇 마리 있어?"

"하나둘셋넷다섯. 다섯 개요."

"나무 위로 두 마리가 갔네. 마당엔 몇 마리가 남았어?"

"하나 둘 셋. 세 개요."

 ‘타이밍이 기가 막힌다.’ 지금 우리 1학년 아이들에게 덧셈과 뺄셈을 하는 데 딱 맞다. 잠은 오지만 아들에게 감사한다. 이렇게 좋은 타이밍에 이렇게 좋은  책을 골라줘서.




 학교에서 집에서 우리 아이들의 책사랑은 뜨겁다. 하지만 어릴 적 난 책을 읽은 기억이 없다. 부모님도 안 읽어 주셨을 뿐만 아니라 공교롭게도 책이 읽는 건지 전혀 몰랐다. 우리 엄마 말을 빌리자면 난 새벽부터 나가 뭘 하고 노는지 초저녁이 다 돼야 들어왔다고 한다. 책은 뒷전이고 종일 개구리 잡고, 동네 딱지란 딱지는 다 따오고, 매미란 매미는 다 잡아 오고, 나 찾으러 다니느라 동네 뒷산을 이 잡듯 다 뒤진 게 하루 이틀이 아니란다.

 내가 생각해도 어릴 땐 논 기억밖에 없다. 진돌, 다방구, 자치기, 짜봉(말뚝박기), 들콩(구슬놀이), 고무 따먹기, 콜라, 오징어 육백. 지금 하라고 해도 이 놀이로 하루 종일 재미있게 놀 수 있다. 그렇게 노는 게 좋았는데 책은 무슨 책. 책과는 철벽 담을 쌓은 게 바로 어릴 적 나였다.


 “야 책 왜 읽어? 재미도 하나 없는데. 차라리 나가서 농구나 하는 게 훨씬 재밌지.”

 그랬다. 고등학교 점심시간에 제일 이해 안 가는 아이가 바로 책 읽는 친구였다. 그 친구는 그 황금 같은 시간에 책을 열심히 읽었고 나는 열심히 농구를 하였다. 내가 읽은 거라곤 수능 시험 문제집에 있는 국어 지문, 영어 지문, 교과서 내용, 그리고 고작해야 신문 사설이 다였다. 책과 담을 쌓은 나는 결국 수능에서 와장창 미끄러져 원하던 대학은 꿈도 꿀 수가 없었다.

     

 ‘책 보다 경험이야. 책은 그 사람 경험이지 내 경험이 아니잖아. 내가 보고 느끼고 한 게 아니잖아. 그러니 내 삶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아. 내 경험 속에 실수와 성공이 훨씬 중요하지.’ 그랬다. 난 나의 경험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이런 생각으로 고등학교 3학년까지 19년이라는 세월을 책과는 아예 별개로 살았다.

 

 하지만 알 수 없는 게 인생이지 않는가? 책 읽기가 바로 그랬다. 대학교 수능을 마친 그해 겨울. 나에게 엄청난 자유시간이 덩그러니 주어졌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합기도도 다니고 바쁘게 살았만 마음은 항상 허했다. 고등학교 3년이라는 틀 속에 꽉꽉 짜여 살았던 나에게 오롯이 주어진 하루는 생각보다 너무 길었고 지루했다. 이 하루를 어떻게 알차게 사는진 학교에선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친구를 기다린다고 동보서적에서 기웃 거리가가 사  <전태일 평전>에서 처음 책의 재미를 느꼈다. 1997년 1월 11일 토요일 일기장에 또렷이 적혀있다.

<전태일 평전>을 지금 막, 이 순간에 다 읽었다. 땀에 젖은 손 때문에 책 표지가 얼룩이 졌다. 평소 손에는 땀이 거의 안 나는데 이렇게 저절로 땀이 나온 것을 보고 나 자신도 놀랐다. 전태일 그를 지금부터 내 죽을 때까지 사랑할 것이다. 한 권의 책이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이 실로 몸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1997년 2월 11일 화요일 일기장엔 나의 두 번째 책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혜린에 관한 일기도 적혀있다.

“전혜린,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늘부터 그녀는 나의 스승이 되었다. 나의 잃어버린 삶을 찾게 해 주었다. 의식하는 삶만이 삶이라고. 정신의 깨어있음이 의미 있는 삶이라고. 그녀는 새로운 나의 정신이 되었다.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시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가 되었다.


”취하게 하라. 언제나 너희는 취해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은 거기에 있다. 그것이 유일의 문제이다.

너희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너희를 지상으로 누르고 있는

시간이라는 끔찍한 짐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너희는 여지없이 취해야 한다.

그러나 무얼 가지고 취하는가?

술로 또는 시로, 또는 당신의 미덕으로,

그건 좋을 대로 하시오.

그러나 하여간 취하여야 한다.

-샤를르 보들레드-    

 

 그해 겨울 전태일, 전혜린 두 스승을 책을 통해 알게 되었고 나의 삶에도 책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요즘은 조금씩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면서 책에 대한 나의 생각도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나의 실제 경험이 당연 제일 중요하다. 어느 누구의 경험과도 바꿀 수가 없다. 하지만, 또 다른 나라는 삶을 살아가는 그분들에게서 삶의 지혜를 더한다. 혼자인 나의 경험보단 여럿인 나의 경험의 합이 더 지혜로운 삶으로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실천하는 것은 마치 내가 그들의 합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과 같다. 만화영화<나루토>를 본 적이 있는가? 없으면 꼭 보기 바란다. 초보 닌자의 성장이야기이다. 재미있다. 커다란 폭포를 앞에 두고 긴 나무 위로 수십명의 분신 나루토들이 수련을 한다. 분신들이 하나가 되었을 땐  분신 수만큼 나루토도 강력해진다. 강력한 힘 즉, 강력한 지혜가 있는 곳이 바로 책 속이다. 나 혼자만의 깨우침으론 부족하다. 나의 분신들과 함께 책과 함께 세상을 나아가야 한다.' -Dokyung




 올해 우리 1학년 아이들 책 읽어주느라 다시 책사랑에  빠졌다. 개인적으로 읽는 어른 책뿐만 아니라 동화책까지 읽고 있다. 동화책이라고 얕잡아 보면 큰 코 다친다. 페이지 수는 적지만 마음속 울림이 웬만한 책 보다 크다. 책  안 읽는 어른들이 보면 책 재미 붙이기에 정말 좋은 책들이다. 우리 반 아이들 덕분에 내가 더 큰 지혜를 얻는다. 하루하루 작지만 큰 소우주들의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부단히 힘쓴다. 정말 힘들지만 지나고 나니 또 다 추억이다. 애들 덕분에 이렇게 좋은 책들도 많이 알게 되었고 생각도 깊어졌다. 고맙다 애들아. 정말.



 아래 책들은 우리 반 아이들에게 읽어준 책들이다. 1학년 또래의 아이가 있으면 읽어주면 좋을 책들다. 주로  가지 방법으로 좋은 책들과 접하고 있.

 첫째,  이웃 블로그님들과 1학년 밴드 선생님들이 추천해주신 책들. 주로 학교 생활 이야기감이 많이 간다.

위 책은 절판이 되고, 아래 책으로 리뉴얼되었다.

 

 둘째,  학교에서 1학년 특색활동으로 매주 한 편씩 책놀이를 통해 읽어준 책들이다. 책도 읽어주고 여유롭게 활동도 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너무 .


셋째,  도서 선생님이 애들이 좋아하는 책을 추천해준다. 책이 너널너덜하고 테이프가 붙어져 있으면 애들이 많이 본 책이고 검증된 거라는 팁도 준다. 대부분 몰입도가 엄청난 책들다.


 넷째, 기존 교실에 있던 책, 우리 반 아이들이 직접 읽어 달라고 하는 책, 집에서 읽어주는 책들이다.


 3개월 정도 1학년 아이들에게 책을 주었다. 내년 2월까지 꾸준히 책을 읽어 주는 게 표다. 수업은 그럼 언제 하는가? 유익하고 재미있고 아이들과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책들을 미리 읽어 놓는 게 중요하다. 빡빡한 교육과정 속에 관련된 주제가 나오면 책과 빨리 매치시키는 센스가 필요하다. 책이 좋고 질문이 좋으면 수업은 교과서보다 훨씬 몰입도도 좋고 아이들도 집중해서 수업에 참여한다. 아이들의 생각이 열리고 스스로 반성할 수 있으며 운이 좋으면 아이들의 삶에 젖어들 수도 있다.


"선생님, 어제 읽은 가시 나오는 그 책 있잖아요. 엄마가 검색해서 주문해 놓았어요."

"아, 그래. 재미있었던 모양이네.

"네."


 교하자마자 내게 와서 자랑하듯 말하는 아이를 미소 지으며 바라봤. 뿌듯해하며 자기 자리로 가는 그 아이의 발걸음이 아주 가볍. 아이의 삶에 다가간 모양이다. 덩달아 내 마음에도 환한 해님이 춘다.

 

 그렇게 우린 서로서로 닮아가고 있다

 책을 통해서 말이다.

 내가 그렇게 싫어했던 책을 통해서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