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을 다른 나라에서, 다른 언어로 공부한다는 것

프랑스 사투리와 물음표 투성이었던 첫 수업

by 라엘

대학교 오리엔테이션 때까지만 해도 ‘음, 그렇군’ 하고 담담했는데, 막상 첫 수업 날이 되니 심장이 두근거렸다. 할 수만 있다면 아무도 모르는 작은 동굴에 숨고 싶다고나 할까.


프랑스어로 듣는 심리학 수업은 어려울 것이라 예상했지만 내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사투리. 수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프랑스도 지역마다 발음이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프랑스에서 듣는 첫 번째 심리학 수업은 CM이었는데 교수님은 마르세유 출신이셨다.


CM 수업 시작 전 모습


* 프랑스 대학 수업은 보통 CM(Cours Magistral), TD(Travaux Dirigés), TP(Travaux Pratiques)로 나뉜다. CM은 같은 학년 학생이 모두 모여 듣는 대규모 강의, TD는 20~30명 정도의 소규모 수업, TP는 실습수업을 말한다.


내가 알고 있던 단어의 발음과 교수님의 발음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고 교재도 없이 교수님 말씀으로만 이루어지는 수업이라 강의 내내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백만 개쯤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예를 들면 bien 은 '좋게, 잘'이라는 뜻의 부사인데, 보통 '비앙'으로 발음하지만 프랑스 남부에서는 '비엔'과 가깝게 발음하고 ㄴ 소리가 강하게 들린다.


첫 수업 때는 정말 멍하게 듣고만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집에 오자마자 유튜브로 프랑스 지역의 발음을 정말 많이 찾아보고 계속 들었다. 며칠 동안 계속 보다 보니 조금씩 다양한 프랑스 발음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TD 수업은 20-30명 정도의 소규모 수업으로 주로 논문을 읽고 토론하거나 교수님이 질문을 하시면 질문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첫 학기에는 TD 수업 준비를 철저히 해가도 손발이 덜덜 떨렸고, 무서움이 앞섰다. 게다가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 친구들의 의견에 공감하지 못하거나 이해가 잘 안 되는 순간이 생각보다 많았다.


교수님마다 달랐지만 특히 TD 수업은 학생들의 발언이 자유로웠는데 학생들이 교수님의 말씀이 끝나기 전에 손을 들거나 말을 끊기도 하고 때로는 반대의 의견도 제시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가 자유롭게 느껴지면서도 처음에는 한국과 너무 다른 분위기에 조금 충격이었던 것 같다.


수업을 거듭할수록, ‘틀려도 괜찮다’는 마음과 함께, 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하고 다른 시각을 배우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쓸데없는 오기가 생긴 것도 같았다. 나만 외국인인데 틀릴 수도 있고 더 물어볼 수도 있지 같은 뻔뻔한 마음가짐 말이다.


하지만 처음에는 수업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수업이 끝나면 책을 잔뜩 빌려 집에서 읽고, 모르는 단어를 찾아보고, 또 정리하는 일을 반복했지만 여전히 쉽지 않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프랑스에서 정말 ‘어쩌지…’ 싶은 순간마다 꼭 천사 같은 사람들이 나타났다.
학교에서 이름 알파벳 순서로 TD수업 반을 나눴는데, 옆자리에 앉은 친구와 수업 전 짧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 이후 그 친구는 내가 어려워하는 과목들의 노트를 매번 메일로 보내주었다. 메일을 보낼 때는 항상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고민하지 말고 언제든지 물어봐'라는 문구를 꼭 넣었고, 수업 시간에 만날 때마다 항상 응원의 말들을 멈추지 않았다. 그 마음이 너무 고맙고, 덕분에 조금씩 버틸 수 있었다.


첫 학기는 정말 힘들었던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오랜만에 다시 시작한 대학교 공부였지만, 전공도 새롭고, 다른 나라에서 다른 언어로, 또 완전히 르노 시스템으로 배우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나에게 맞는 공부 방법을 찾으려고 무척 노력했던 것 같다. 하지만 적응과 좌절이 번갈아 오는 상황 속에서, 금방 답을 찾지는 못했다. 수업을 듣고 돌아오면 몸과 머리가 지쳐서 그대로 잠들고, 밤이 되면 다시 공부를 시작하는 날들의 반복이었다.


매일 밤 수업을 복습했던 시간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왜 모르지?’, ‘왜 안 되지?’라는 생각이 커졌고, 그만큼 마음도 무거워졌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티던 중, 갑자기 코로나가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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