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살아남기
나는 리옹으로 프랑스어 어학연수를 갔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나라에 커다란 케리어들을 잔뜩 들고 그렇게 떠났다.
어학연수를 갔을 때,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와 함께 갔다.
내 계획을 들은 친구가 같이 가자고 해서 같이 가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목표는 달랐다. 나는 어학연수 후 프랑스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길 원했고, 친구는 워킹홀리데이를 목적으로 프랑스에 왔기 때문이었다.
프랑스어 수업 반도 다르고, 기숙사 방도 달라서 함께 도착했지만 정작 같이 무언가를 했던 시간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그 친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에 큰 위안이 되었다.
프랑스에 오기전까지 프랑스어를 혼자 공부하기도 했고,
프랑스에서 살았던 분을 수소문해 간단한 회화를 배우기도 했다.
읽고 쓰는 건 아주 조금 가능했지만, 사람과 직접 대화를 해본 적은 없어서 말하기는 여전히 두려웠다.
그래서 출국 전까지 가장 큰 고민은 “프랑스에서 버스를 어떻게 타지?”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웃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한 것 같다.
아는 사람도 없고,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나라에 가면서 가장 큰 걱정이 버스라니
어학연수를 하는 이 기간동안 나는 태어나서 거의 처음으로 혼자 여기저기 다녀봤던 것 같다.
나는 심각한 길치라 매일매일 길을 잃었다. 하루는 시청 근처로 상자를 사러 갔는데 가게들이 너무 밀집해 있어 구글 맵도 잘 표시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날 두시간 정도 길을 찾지 못했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길을 잘 잃어버린다.
처음 기숙사에 도착했던 날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서류를 작성하다가 손을 종이에 베었는데, 피가 기숙사 입실 서류에 묻었었다.
그런데 기숙사 마담이 그 종이를 아무렇지 않게, 오히려 기분 나쁘다는 듯이 찢어버려다.
너무 황당하기도 하고 속이 상하기도 했다.
리옹의 첫 인상은 좋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리옹에서 지내는 게 막 나쁘진 않았던 것 같다.
어학연수 중에는 정말 힘든 날이 많았다.
물건을 사고 고장이 나 환불을 받아야 할 때, 아플 때 병원에 가야 하는 상황 등…
한국에서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여기에서는 벽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나는 엄청 작은 기숙사 방에서 지냈었는데 기숙사 문제로 인해 따뜻한물이 거즘 한달간 나오지 않았다. 추운 날씨였는데 따뜻한 물도 라디에이터도 되지 않아서 정말 너무 힘들었다. 매일 언제 고쳐질까 하는 생각도 들고 서럽기도 하고...
언어가 완벽하지 않아서 제대로 항의조차 할 수 없었다.
프랑스에 지내면서 혼자 할 수 있는 일보다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일이 많다는 게 생각보다 힘이 들었다. 한국에서는 쉽게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이 프랑스에서는 누군가에게 물어봐야 하는 일이 라는게 힘들었던 것 같다.
프랑스에 와서 내가 느낀건 언젠가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것이였다. 안되는 일에 힘을 들여도 해결되지 않기에 터특한 방법이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 그냥 밖으로 나가서 걸었다. 걷는다고 문제가 해결되진 않지만 적어도 몸이 힘들어 모든 생각을 멈출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살던 작은 기숙사 방에는 창문이 아주 컸는데, 그 창으로 보이는 풍경이 참 큰 위로가 되었다.
너무 힘들어서 가끔 “아,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대학교 친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친구들에게 프랑스에서 공부하러 간다고 이야기했을 때, 어떤 친구가
“쟤 얼마나 있다가 돌아올지 내기하자.”라고 말한 걸 우연히 알게되었다.
엄청 친했던 친구는 아니였지만 그 말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고, 그래서 더 이를 악물고 버티고 또 버텼다.
어학연수를 하면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일들은 나를 잘 돌보고 밥을 잘 주고 프랑스에서 계속 살 수 있는지, 나에게 잘 맞는 나라인지 보자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