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적응하는 듯할 무렵, 코로나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먼 나라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점점 현실로 다가왔다. 프랑스의 다른 학교들은 휴강을 하고 문을 닫기 시작했지만, 내가 다니던 학교는 조금 더 늦게 문을 닫았다. 내가 살던 지역은 초반에 감염자 수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은 금세 심각해졌고, 혼자 있는 게 점점 무서워져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완전 무장을 하고 비행기를 탔다. 한국에서 자가격리를 하며 집에만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공부를 포기할 것도 아닌데 한국에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황이 나아진 건 없었지만, 프랑스에 있으면 무조건 프랑스어를 써야 하니 적어도 언어는 늘겠다 싶었다. 그 사실 하나가 내가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야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되다. 그래서 나는 다시 프랑스행을 택했고 혼자 살면서 최대한 조심하면 괜찮을 거라고 여겼다.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는 날, 나는 왠지 모를 걱정과 무서움에 휩싸였던 것 같다. 아주 늦은 밤 비행기를 타러 가는 길 가족들과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속으로는 마음이 무겁고 씁쓸했다. 긴 비행 끝에 프랑스 작은 마을에 있는 기숙사 방에 도착하고 나서야 비로소 안도감이 밀려왔다. 익숙한 듯 낯설었지만 여기가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돌아온 이후 프랑스는 2차 봉쇄를 하기 시작했고 장을 보러 갈 때도 외출 증명서와 신분증이 필수였다. 산책을 할 수는 있었지만 거리 제한이 있었다. 이 시기 마트에서 인종차별을 당하기도 했고, 혼자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스트레스는 점점 심해졌다. 친구들을 만나고 싶었지만 봉쇄 거리상의 이유로 봉쇄기간 동안에는 만날 수 없었다.
이 기간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매일 뉴스에서 많은 사람들이 아프고 세상을 떠나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과 내가 그들에게 바로 갈 수없다는 생각이 버티기 힘들 만큼 무거웠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길어진 만큼 나는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무료히 시간을 보내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았다. 이전에는 영화나 책을 보는 것이 취미였지만, 너무 많이 보니 점점 흥미가 줄어들었다. 그러다 문득, 프랑스에 처음 왔을 때 우연히 산 예쁜 실과 뜨개바늘이 생각났다. 그날부터 뜨개질을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그것이 내 인생 취미가 되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면서 공부도 하고 뜨개질을 했다. 나는 걸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코로나에 걸렸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아픈 게 이렇게 서러울 수 있나 느꼈던 것 같다. 혼자 마트도 약국에도 가야 하지만 그럴 힘이 도무지 없어 이틀 동안 잠만 잔 것 같다. 이틀 후 상태가 나아지진 않았지만 혼자이니 방법은 없고 완전 무장을 하고 약국에 가서 약을 샀었다.
팬더믹이 1년쯤 지났을 무렵, 코로나 백신 접종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었다. 나는 심각한 ‘주사 공포증’을 가지고 있었지만, 예약을 하고 접종 센터로 갔다.
의자에 앉는 순간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고, 주삿바늘을 보는 것만으로도 손끝이 차가워졌다. 그런데 내 앞에 있던 나이 지긋한 의사 선생님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을 건네주셨다. 그 따뜻한 눈빛과 목소리 덕분에 긴장이 조금씩 풀렸고, 결국 무사히 접종을 마칠 수 있었다.
그 순간을 나는 잊지 못한다. 낯선 나라에서 버티던 내게 건네진 작은 친절은, 예상치 못한 큰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친절을 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