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 편 , 강의실의 풍경

by 라엘

내가 다니던 프랑스 대학교의 수업은 교수님마다 차이가 있었지만,
교수님은 수업 내내 질문을 던졌다.
마이크를 손에 쥐고 강의실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학생들에게 말을 걸었다.

“이 이론에 동의하나요?”
“그렇다면 당신이라면 어떻게 설명하겠어요?”

이런 질문이 한두 개 던져질 때마다 교실은 갑자기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그럴 때면 나처럼 시선을 피하며 조용히 숨는 학생도 있었지만,
정말 멋지게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말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교수님의 의견에 반대하는 학생, 교수의 말을 끊고 질문을 던지는 학생도 있었는데,
처음엔 ‘저렇게 해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 안에는 분명한 존중의 선이 존재한다는 걸 느꼈다.
그들의 대화는 싸움이 아니라 ‘사유의 충돌’이었고,
그 충돌 속에서 서로를 인정하는 묘한 온기가 있었다.


학생들은 정말 다양했다.
나이가 많은 학생들도 의외로 많았고, 문신이 있는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작은 타투가 아니라 팔과 목을 감싸는 큰 문신,
무지개색 머리를 한 학생, 남자지만 치마를 입은 학생.
성별을 지칭하지 않고 서로를 ‘그 사람’이라고 부르는 장면도 종종 있었다.

처음에는 그 풍경이 너무 낯설고 신기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점점 ‘다양성의 자연스러움’을 배워갔다.
그들은 자신의 모습으로 존재했고,
그 존재는 수업의 한 부분이 되어 있었다.


수업 시간에는 간식을 먹는 학생들도 많았다.
한국에서는 조용히 물이나 커피를 마시는 정도가 전부였지만,
프랑스에서는 쿠키를 먹거나 작은 샌드위치를 꺼내 먹는 학생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처음엔 낯설었다.
‘수업 중에 먹어도 되나?’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교수님도 아무렇지 않게 강의를 이어갔다.
그 안에서는 음식이 ‘무례함’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상’의 연장선에 있었다.


그리고 프랑스 수업의 또 다른 풍경은
타닥타닥 이어지는 키보드 소리였다.
교수님의 긴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강의실 안은 동시에 수십 개의 타이핑 소리로 가득 찼다.
누군가의 손끝이 문장을 따라가며 부딪히는 그 소리는
어쩐지 비 오는 날의 창문 두드림처럼 일정하고 차분했다.


가끔은 노트북 대신 공책을 꺼내 든 학생들도 있었다.
그들의 손은 마치 모터가 달린 것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다섯 가지 색의 펜으로 문장을 구분하며
빽빽한 글씨를 채워 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 집중력과 리듬감이 하나의 예술처럼 느껴졌다.


소규모 세미나 수업에서는 주로 논문을 읽고 토론을 했다.
교수님이 수업 시간에 논문을 나눠주면,
학생들은 1시간 동안 집중해서 논문을 읽고,
그다음 1시간 동안 그 내용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해야 했다.
처음에는 정말 어려웠다.

논문을 빠르게 읽는 것도, 핵심을 요약해 말하는 것도 익숙하지 않았으니까.

특히 프랑스어로 된 전문 용어들은 읽는 데만 한참 걸렸고,
말하려고 입을 열면 단어가 입안에서 엉켰다.


다행히 발표는 조마다 한 명이 맡았기 때문에,
보통 자신감이 넘치고 말 잘하는 학생이 대표로 발표를 했다.
나머지 학생들은 역할을 나누어 각자 맡은 부분을 짧게 요약했다.
처음엔 그저 ‘살아남기 위한 분담’처럼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 과정 자체가 하나의 훈련이라는 걸 알게 됐다.
서로의 생각을 조율하고, 누군가의 말에 근거를 더하며,
한 편의 논문을 ‘우리의 언어’로 다시 써 내려가는 작업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늘 약간의 피로감이 몰려왔지만,
그건 단순히 언어와 지식의 피로가 아니라
‘다른 사고방식과 부딪힌 후의 여운’이었다.
그 강의실 안에서 나는 세상을 배우기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다양함을 배운 것 같다.


이처럼 프랑스의 교실은

내가 익숙했던 한국의 교실과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말하는 방식도, 앉아 있는 자세도,
심지어 공기 속의 소음조차 달랐다.
처음에는 그 낯선 리듬에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질문이 쏟아지고, 의견이 부딪히고,
키보드와 펜의 소리가 교차하는 그 혼란스러운 공간 속에서
나는 종종 길을 잃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 다양한 소리와 움직임이야말로
‘배움’이라는 것이 살아 숨 쉬는 증거라는 걸.
그 안에는 경쟁보다 호기심이 있었고,
정답보다 탐구의 열정이 있었다.
그제야 나는 이해했다.
프랑스의 강의실은 조용한 질서가 아닌,
다양한 혼란 속에서 피어나는 자유로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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