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 도서관은 아침 8시에 문을 열어 저녁 8시면 닫혔다.
시험 기간이 다가올 때만 가끔 10시까지 열리곤 했지만,
대부분의 날은 저녁이 되면 작은 안내 방송과 함께 도서관 건물 곳곳의 불이 차례로 꺼졌다.
프랑스의 대학은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는 ‘시티 캠퍼스’ 구조라
도심의 거리 사이사이에 학교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인문대는 시청 근처에, 법대는 조금 더 멀리, 의대는 인문대 근처였다.
나는 인문대 학생이었기 때문에
주로 내 강의실에서 가장 가까운 인문대 도서관을 이용했다.
그곳은 따뜻한 오렌지 색 조명이 많고 책이 많았다.
공기에는 오래된 종이 냄새가 은은히 배어 있었고,
햇살이 창문을 통해 비스듬히 들어올 때면
먼지 입자들까지도 조용히 빛나 보였다.
분위기는 따뜻했지만, 난방은 그렇지 않았다.
겨울이면 손끝이 얼 정도로 추웠다.
하지만 그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사람들은 묵묵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도서관은 한국보다 훨씬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조용하지만 완전히 정숙하지는 않았다.
누군가는 친구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고,
누군가는 노트북으로 음악을 들으며 리듬에 맞춰 타이핑을 했다.
어디선가 커피 냄새가 섞여 들어오기도 했고,
때로는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조용히 퍼졌다가 이내 사라졌다.
그 모든 소리들이 이상하게 조화를 이루며,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살아 있게 만들었다.
도서관 한쪽에는 여러 개의 작은 방들이 있었다.
이 방들은 예약제로 운영되어 조별 과제나 스터디를 할 때 사용할 수 있었다.
한 사람당 최대 3시간까지 이용이 가능했고,
유리벽 너머로 보이는 학생들의 모습은 언제나 진지했다.
누군가는 PPT를 다듬고, 누군가는 손짓을 섞어 의견을 설명하고 있었다.
나는 주로 수업이 끝난 후, 다음 수업까지 시간이 남을 때 도서관에 들렀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집순이’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집에서 혼자 있을 때 가장 집중이 잘 되고,
책상 위에 커피 한 잔과 강아지 그리고 고양이와 함께라면 몇 시간이고 버틸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강 시간이 길던 날이면
가방 가득 책과 노트를 넣어 도서관으로 향하곤 했다.
단지 시간을 헛되게 흘려보내기 싫다는 이유 하나로.
책상마다 노트북이 켜져 있고,
사람들은 각자의 공부를 이어가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경제학 책을 읽고, 다른 쪽에서는 철학 논문을 정리했다.
가끔 머리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면
여러 권의 책을 한꺼번에 펼쳐놓고 필기를 하는 학생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은 묘하게 인상적이었다.
색색의 펜, 마른 종이의 소리.
그 속에서 나는 ‘공부’라는 행위가 단지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자기 세계를 확장하는 일이라는 걸 느꼈다.
어느 날, 책 사이로 들어온 햇빛이 내 노트 위에 길게 누워 있었다.
그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해졌다.
낯선 도시의 도서관 한편에서,
나도 이 풍경의 일부가 되어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아주 가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한국이 아닌 프랑스의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나를 낯설게 하는 게 아니라
조금은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