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 편, 프랑스 대학 심리학과 시험

교수님과 나의 텔레파시

by 라엘

시험을 잘 보려면, 교수님과 텔레파시가 통해야 했다.
학교에서 시험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교수님이 수업 시간에 강조하지 않았던 문장이
시험지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수업 시간에 보지 않았지만 논문 리스트에 있던 논문 속에서 문제가 나오기도 했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개념은 시험 범위 밖이었다.
그때 처음 깨달았다.
이건 단순히 암기의 싸움이 아닌 암기와 교수님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싸움이라는 것을.


시험 문제는 보통 한두 개의 긴 서술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주제를 주면 그에 대한 나의 생각과 논리를 적어야 했다.
정답은 없었다.
대신 얼마나 ‘생각했는가’,
얼마나 나의 언어로, 나만의 방식으로 이 질문을 설명했는가가 중요했다.

처음엔 이 방식이 너무 어려웠다.

답을 찾는 시험이 아니라 ‘나만의 답’을 써야 했기 때문이다.


가장 어려웠던 문제는 단연 이거였다.
“이번 학기 동안 배운 모든 것을 서술하시오.”
그 문장을 보는 순간, 나는 멍해졌다.
배운 모든 걸 두 시간 안에 쓴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결국 중요한 건, ‘무엇을 쓰느냐’보다 ‘무엇을 쓰지 않느냐’였다.
그래서 나는 점점 더 확신했다.

좋은 점수를 받으려면, 교수님과 텔레파시가 통해야 한다.


시험 시간은 2시간이고 한국어로 생각하고 프랑스어로 적기에는 너무 부족한 시간이었다.

생각하기도 벅찬 이 시간에 답안을 써야 했다.


그래서 공부할 때마다 교수님의 의도를 알기 위해 고민했고

의도를 고민하는 것보다 더 오랜 시간 공부하고 연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험을 준비하는 건 여전히 어렵고 불안했다.

무엇이 중요한가를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과
교수님이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늘 달랐다.

그래서 친구들과 함께 스터디를 하며
서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비교했다.
그런 대화를 반복하며 조금씩 감을 잡아갔다.

시험이 끝나면 또 다른 싸움이 시작됐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몇 주가 걸렸고,

그 시간 동안은 머릿속에서 시험 문제가 떠나질 않았다.
‘교수님은 내 답을 어떻게 읽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나를 잠식했다.


드디어 점수가 공개되는 날.
학교 홈페이지에 점수가 떠오르는 순간,
숨이 막힐 만큼 긴장됐다.

우리 학교는 점수만 공개됐다.

그 점수가 어떻게 나온 건지,
내가 어디에서 잘했고 어디에서 부족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만약 점수에 이견이 있다면
학교에서 정해준 날, 대 강의실로 가야 했다.

그날은 항상 긴장의 연속이었다.

과목마다 교수님들이 큰 강의실 안에 앉아 계셨고,
학생들은 자신의 시험지를 찾아 교수님 앞에 섰다.
시험지를 다시 펼치고
왜 그런 점수를 받았는지를 직접 설명 들어야 했다.
그 짧은 순간이
어쩌면 시험보다 더 무서웠던 시간이었다.


프랑스의 시험은
점수를 매기는 절차가 아니라
사유의 깊이를 묻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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