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 편, 출석의 자유

자유와 책임 그 사이 어딘가

by 라엘

한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 지각하지 않기 위해 부던히 노력했다.

다음 수업 강의실이 먼 경우 항상 열심히 뛰어다니는게 일이었다.

교양이든 전공이든, 출석체크를 하지 않는 과목을 찾기가 더 어려웠다.


프랑스에 오고 나서 가장 크게 달라졌다고 느낀 점 중 하나는 바로 출석 문화였다.
내가 다닌 학교에서는 대부분의 수업에 출석 체크가 없었다.
누가 왔는지, 어디에 앉는지 교수님은 신경 쓰지 않았다.
출석부를 들고 한 명씩 이름을 부르는 일도 없었다.

물론 모든 수업이 그런 건 아니다.

실험 수업이나 소규모 그룹 수업처럼 참여가 필수적인 과목에서는
종이에 이름과 학생번호를 적어 제출하거나 싸인을 해야했다.

하지만 한국에서처럼 ‘출석점수’가 최종 성적에 크게 반영되는 방식은 아니었다.

(나의 경우 실험 수업은 출석 점수가 포함되기도 했다.)


수업에 나오든 말든, 그 선택의 결과는 온전히 학생 본인의 책임이었다.

수업 자료가 학교 사이트에 올라오지 않는 경우도 있었기 떄문에 수업 노트를 다른 학생에게 받거나 아님 방법을 찾아야 했다.


출석을 따로 기록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 때나 들어가도 괜찮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나름의 암묵적인 규칙이 존재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건 “너무 늦게 들어오지 않기.”


대강의실 중에는 옆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있어서
가끔 몇 분 늦었을 때도 민망하지 않게 살짝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문이 강의실의 정면에 있는 경우나
10~15명 정도로 진행되는 소규모 수업에서는
늦으면 모든 학생의 시선을 지나쳐 가야 했다.

문이 열리는 소리, 발걸음 소리, 시선들이 한 번에 나에게 쏠리는 그 느낌
그걸 피하고 싶어서 나는 거의 무조건 시간에 맞춰 갔다.


지각을 하면 조용히 들어가는 것이 기본 예절이었다.
교수님이 말을 하고 있지 않은 순간이라면
작게 “늦어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들어가기도 한다.

대부분의 교수님들은 그냥 고개만 끄덕이며 수업을 이어갔다.
하지만 “조금 일찍 다니세요”라고 말하는 교수님도 당연히 있었다.

그런데 어느 비 오는 날,
나는 평생 잊지 못할 ‘지각 사건’을 겪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 때문에 길이 완전히 젖어 있었고
가로등이 없는 구간에서는 발밑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물웅덩이를 보지 못한 채 그 위로 크게 미끄러졌고
바닥에 넘어지자마자 손과 무릎에서 피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날따라 하필 교수님이 지각에 엄청 민감한 분이었다.

다급한 마음에 나는 절뚝이면서도 빠르게 학교로 갔다.


5분 정도 늦게 도착을 했고

강의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을 때
교수님은 이미 강의를 하고 계셨다.
나는 최대한 조용히 들어가
문 바로 앞의 자리에 살짝 앉았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과 무릎은 미친듯이 얼얼했다.

그리고 교수님과 눈이 마주친 순간,
교수님의 표정이 일순간 크게 변했다.
내 손에서 흐르는 피를 본 교수님은
말을 멈추셨지만
지적도, 꾸중도 하지 않으셨다.
그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아무 말 없이 다시 강의를 이어가셨다.


옆에 있던 친구는 더 놀란 얼굴로
가방 속에서 휴지와 약, 반창고를 꺼내 내 손에 쥐어줬다.
수업 내내 옆에서 나를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따뜻함이 당시의 고통보다 더 또렷하게 기억난다.


출석 체크가 없다는 건
그만큼 학생을 ‘자율적인 존재’로 바라본다는 뜻이었다.
수업에 참여하는 방식, 시간 관리
모든 걸 스스로 선택하고 감당해야 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자유를 책임감으로 채워야 하는 문화.
그 사이에서 나는 조금씩
‘누가 시켜서’가 아닌
‘내가 선택해서’ 학교에 가는 마음을 배워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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