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 편, 쉼이라는 것

by 라엘

프랑스 대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내가 가장 크게 느낀 건 '쉼'이었다.
쉰다는 게 무슨 뜻인지, 어떤 의미인지 알고는 있었지만
한 번도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나에게 있어 쉼은 늘 “해야 할 일을 다 마친 뒤에야 허락되는 것”이었다.
그마저도 잠깐이었다.


특히 시험기간에 쉰다는 건,
나에게 엄청난 죄책감을 동반한 행위였다.

‘지금 이러면 안 돼. 조금만 더 해야 해.’

그 말은 늘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쉰다는 건 곧 게으름이었고,

게으름은 곧 불안과 죄책감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수업이 끝나 집에 돌아와 잠시 낮잠을 자거나,
영화를 한 편을 볼 때면 어김없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러고 있어도 괜찮을까?
조금 더 프랑스어를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
복습을 더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럴수록 마음은 조급해졌고,
몸은 서서히 무거워졌다.
하루가 끝날수록 나는 뭔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늘 충분하지 않다는 느낌만 남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쉼’의 의미를 완전히 바꾸는 순간을 맞았다.
시험기간이었다.
책상 위에는 형광펜이 흩어져 있고,
읽어야 할 논문과 해야할 공부는 아직 끝이 나지 않았다.

그때 휴대폰에 친구들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오늘 오후엔 쉬자. 카페 갈래?”

나는 처음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시험기간인데 쉰다고?”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그 시간에 나는 프린트를 붙잡고 있었는데,
그들은 햇빛 좋은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처음엔 솔직히 불안했다.
‘저 사람들은 어떻게 저럴 수 있지?’
‘혹시 나만 이렇게 조급한 걸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들의 ‘쉼’은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들은 공부와 쉼을 분리해 시간을 보냈다.

아침에 오늘 할 일을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정해진 시간 동안은 철저히 공부했다.
그리고 그 시간이 끝나면,
마치 스위치를 내리듯 완전히 쉬었다.


그들은 자신이 쉬는 시간에 대해 단 한 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그 시간은 그들에게 다음 공부를 위한 리듬의 일부였다.
“쉬는 것도 공부야.”
한 친구가 웃으며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다.
하지만 점점 그 말의 뜻을 이해하게 되었다.

쉼이란 공부와 반대되는 게 아니라,
공부를 가능하게 하는 ‘호흡’이었다.


물론 나는 프랑스인이 아니었기에,
그들과 나를 완전히 동일시할 순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 역시
조금씩 죄책감을 내려놓는 법을 배워갔다.
처음에는 10분이었던 쉼이 20분이 되었고,
언젠가는 한두 시간의 여유가 생겼다.


그 시간 동안 나는
그동안 미뤄둔 산책을 하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듣기도 하고 뜨개를 하기도 했다.


쉼은 단순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었다.

나를 회복시키는 시간이었다.

쉼 속에서 나는 다시 공부할 힘을 얻었고,
내가 왜 공부를 시작했는지도 떠올릴 수 있었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완벽하게 쉬지 못한다.
여전히 해야 할 일의 목록을 머릿속에서 지우지 못하고,
가끔은 영화 한 편을 보면서도 마음 한켠이 불편하다.

하지만 예전처럼 쉼을 미뤄두지는 않는다.

공부와 쉼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완성시키는 한 쌍이라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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