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 편, 조별과제

조별과제 평화로운 듯 전쟁인 듯 그 사이의 경계

by 라엘

첫 조별 과제는 정말 혼란 그 자체였다.
프랑스에서 처음 해보는 조별 과제는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잘 몰랐고,
문화적인 부분도, 언어적인 부분도 아직 모든 것이 미숙했다.

한국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는 일들이
프랑스에서는 아주 쉽게 큰일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처음엔 언제나 ‘관찰자’가 되었다.

먼저 말하기보다,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고
그들 사이에서 어떤 규칙이 작동하는지를 조용히 지켜보았다.
이렇게 해야 이상한 실수들을 줄일 수 있었다.


우리 학교의 조별 과제는 보통 한 학기 동안 같은 조가 유지되었다.
즉, 첫 조 편성이 곧 한 학기의 운명이었다.
조가 잘 맞으면 편하게 흘러가지만,
어긋나면 학기 내내 미묘한 긴장 속에 살아야 했다.


첫 조별 과제는 규모가 큰 프로젝트였다.
총 7~8명이 한 조로 구성되었고, 주제는 ‘죄책감(la culpabilité)’이었다.
각 조는 이 큰 주제 안에서 세부 주제를 정하고,
한 학기 동안 하나의 그룹 논문을 완성해야 했다.


나는 처음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피해는 주지 말자’는 마음이 강했다.
그래서 모든 회의에 빠짐없이 참석했고,
회의 전에는 늘 관련 논문과 자료를 꼼꼼히 읽고 갔다.
프랑스어로 생각을 정리하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최대한 성실하게 참여하려 애썼다.
덕분에 처음엔 분위기가 꽤 잘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어느 날, 사건이 터졌다.
한 조원이 갑자기 “이 과제,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다.
우리 학교에서는 조를 만든 뒤 이름을 빼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교수님이 ‘협업은 함께 끝까지 가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학생의 말은 단순한 투정이 아니라,
조 전체를 흔드는 일이 되어버렸다.

결국 회의 자리에서 큰 싸움이 벌어졌다.

프랑스 학생들의 언성은 점점 높아졌고,
그날 나는 처음으로 프랑스 욕설을 그렇게 많이 들었다.
말이 너무 빠르고 상황이 급박해서
도저히 끼어들 수가 없었다.
나는 뒤로 물러나 조용히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 문제는 깔끔하게 해결되지 못했고,
그 학생은 참여를 멈췄지만 이름을 명단에서 뺄 수는 없었다.

우리는 남은 인원끼리 과제를 마무리했다.
첫 조별 과제가 이렇게 끝나자,
나는 자연스럽게 두 번째 조별 과제를 걱정하게 되었다.

그 후로는 그렇게 극단적인 상황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지만,
조별 과제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떤 조에서는 꼭 한 명쯤,
여러 이유를 대며 참여하지 않는 사람이 생겼다.

‘시간이 없다’, ‘자료를 아직 못 봤다’,
혹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연락이 끊기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남은 사람들은 묵묵히 그 빈자리를 채웠다.


특히 ‘차별 심리학’이라는 과목의 조별 과제가 기억에 남는다.
이 과목 또한 한 학기 동안 그룹 논문을 완성해야 했다.
7명이 한 조였고, 서로 구역을 나눠 자료를 조사한 뒤
결과를 공유하고 논문을 쓰는 방식이었다.

전체를 서론, 본론, 결론으로 나누고
각 부분마다 두 명씩 짝을 지어 진행하기로 했다.
나는 서론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같이 맡은 친구가 자꾸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일을 미뤘다.
그러다 결국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너랑 논문을 쓸 수 없어.
너 프랑스어 잘 못하는 것 같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모든 것이 저 보이지 않는 지하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결론은 그 말이 사실이 아니었다.
결국 나는 서론 전체를 혼자 작성하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아이는

조별 과제 때마다 온갖 핑계를 대며 참여하지 않는 학생이었다.
우리 조 사람들은 모두 내 편을 들어주었고,
나는 꿋꿋하게 논문을 써 내려갔다.


그리고 다짐했다.
농담이든 진심이든,
그 어떤 이유로도 ‘프랑스어 못해’라는 말을
두 번 다시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 이를 악물고 프랑스어를 공부하겠다고.


물론, 모든 조별 과제가 나쁜 기억만은 아니었다.
차별 심리학 과제를 하던 때,
나는 한 친구와 특히 가까워졌다.

우리는 함께 공부를 하기도 했고,
시험이 끝난 후에는 다른 도시로 짧은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서로의 언어가 완벽히 통하지 않아도
그 시간들은 유난히 따뜻하게 기억에 남았다.


결국 조별 과제는 나에게

커다란 스트레스이자, 동시에 하나의 배움이었다.
사람들과 함께 일한다는 것은 단순히 역할을 나누는 일이 아니라,
각자의 다름을 이해하고 맞춰가는 과정이라는 걸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이제 돌이켜보면, 그 혼란스러웠던 시간들이
내가 ‘함께’라는 단어의 진짜 의미를 배우게 된
작은 수업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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