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 오기 전부터 나는 스트레스에 민감한 몸을 갖고 있었다.
조금만 긴장해도 두통이 찾아오고, 걱정이 깊어지면 속이 금방 뒤집혔다.
잠을 제대로 못 자는 날도 많았고, 잘 넘어지거나 부딪히는 일도 흔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프랑스 생활 초반 2년은 잔잔했다.
건강에 큰 이상이 없었고, 병원에 갈 일도 없었다.
낯선 언어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지만, 웬일인지 건강만큼은 큰 문제없이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밤, 의자 다리에 작은 발가락을 세게 부딪쳤다.
순간 숨이 멎을 만큼 아팠고, 통증은 발끝에서 머리까지 번져 갔다.
금세 시퍼렇게 부어오른 발을 보며 ‘병원을 가야 하나?’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문제는 그때가 밤이었고, 나는 프랑스에서 병원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예약이 필요한지조차 감이 오지 않았다.
결국 친구에게 연락해 상황을 설명했고,
다행히 다음날 바로 진료가 가능한 병원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 병원에서 만난 젊은 의사는 내 발을 보자마자
“골절일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초조함과 언어의 장벽 때문에 잔뜩 긴장해 있던 나에게
그는 직접 엑스레이 센터에 전화를 걸어
바로 가능한 병원에 예약을 잡아주었다.
그 작은 배려와 친절하게 상황을 설명해 주셔서
불안과 걱정이 조금은 줄어들었던 것 같다.
결과는 큰 골절이 아닌 실금.
며칠 동안 보호대를 착용하며 지냈다.
그 뒤로도 몇 번 더 넘어지거나 삐끗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서야 깨달았다.
아, 그 의사는 정말 친절했던 거구나.
그리고 내 발은 정말 많이 다쳤던 거구나.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원래 프랑스에서는
일반의 → 소견서 → 검사 예약 → 다시 병원
이 과정을 기본적으로 거쳐야 한다고 했다.
그 선생님이 한 번에 모든 걸 해결해 준 건
정말 특별한 경우였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프랑스 의료 시스템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고,
담당 의사(Médecin traitant)를 지정해야
진료도 빠르고 보험 혜택도 제대로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처음 지정한 병원은 집에서 가까웠지만
의사는 불친절했고, 나를 대하는 태도도 차가웠다.
이사를 하게 되면서 담당의를 다시 지정했는데
이번엔 정말 친절한 의사를 만났다.
프랑스에 온 뒤 심해진 알레르기와 소화 문제로 오래 고생해 왔는데
이 선생님은 끝까지 원인을 찾으려 노력했고
결국 나에게 잘 맞는 알레르기 약도 찾아주었다.
시험 기간에는 몸이 더 솔직하게 반응했다.
위경련이 밤마다 찾아왔고,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탈모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몸이 먼저 신호를 보내고,
마음이 그다음에 뒤따라오는 느낌이었다.
올해 졸업을 하고 나서야 조금 숨을 돌릴 틈이 생겼다.
스트레스가 줄어드니 위경련도, 탈모도 조금씩 괜찮아지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 병원을 다닌다는 건
언어와 서류, 예약 시스템을 이해하는 일이었다.
때로는 불친절함에 당황하기도 했고,
작은 친절에 위로받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경험 덕분에, 나도 누군가에게 작은 친절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번 더 하게 된 것 같다
아프고, 당황하고, 이해하기 어려웠던 모든 순간이 결국 나를 조금 더 성숙하게 만들어 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