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서 벽에 걸린 그림이나 조각들을 보면, 잘 모르면서 보고 있으면, 어느새 이걸 어디다 쓰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한 쓸모 있고 아름다운 물건들을 보는 즐거움이 더 크다.
지난봄 서울에 계신 시부모님과 함께 서울공예박물관을 찾았다. 종로 한복판에 예전 여고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만들었다는 박물관은 세 개의 동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어디부터 들어가 봐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는데, 건물과 건물은 모두 안에서 연결되어 있었다.
우리는 어쩌다 보니 1관 1층 전시물부터 봐서 조선시대부터 고대로 시대를 거슬러 보게 되었는데, 찬찬히 2층 고대부터 보면 좋을 것 같다.
층과 층 사이에서 보이는 오래된 나무는 시간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원래 이곳은 여고였다고 한다.
도자기부터 보자기까지 전시된 공예품들은 모두 실생활에 쓰였던 것이기에 보면서 당시 사람들의 삶을 상상해 보는 재미가 있었다. 시부모님은 옛날 일을 추억하시는 듯 이야기를 나누셨다. 나는 교과서에서는 잘 다루어지지 않는 개화기 공예품들이 신기했다.
개화기 공예품들은 낯설지가 않았다. 어렸을 적 집에 있던 물건들과 비슷해서. 나도 이렇게 옛날 사람.
가장 좋았던 전시는 자수와 보자기 전시였다. 물건이 귀했던 시절 사람 손으로 하나하나 만들어 사용했다는 걸 실감하게 하는 전시였다. 천 조각을 꿰매어 커다란 보자기를 만들고 그 위에 자수를 하나하나 놓았을 사람을 떠올려 보았다. 또 그걸 선물 받거나 직접 만들어 사용했을 사람의 마음도. 분명 지금과는 달랐을 삶의 속도. 이런 생각들을 하며 나는 과거로 확장되었다. 아마도 이런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박물관에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수많은 칸을 하나하나 좋아하는 것으로 채워 나가다 마당의 고양이가 눈에 띈 것일까?(고양이를 찾아보세요.) 어떤 자수는 과감히 선을 넘어갔다.
가지랑 단호박이 병풍에 수놓아져 있었다. 무슨 의미일까?
파주에 국립 민속 박물관 개방형 수장고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은 건 꽤 오래전인데, 가까운 곳에 살면서도 이번 가을의 끝에 찾게 되었다.
수장고는부여 박물관에서도 가 본 적이 있지만 파주는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있는 '열린 수장고'와 밖에서 감상하는 '보이는 수장고' 말고도 어떻게 소장품을 복원하고 보존하는지 체험할 수 있는 '열린 보존과학실', 도서, 음향, 영상 등 자료들을 볼 수 있는 '아카이브센터'가 잘 되어 있어서 민속학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이 나이쯤 되면 더 이상 신기하고 재밌는 것도 없어지는데, 오랜만에 새로운 분야를 발견하고 조금 신이 났다.
표주박. 옛날의 텀블러.
떡살.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은 여기서 나왔나. 집집마다 다른 모양을 찍어 떡을 만들어서 나누어 먹었겠지.
민속 박물관에서는 의외로 귀여운 물건들을 마주치게 된다.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는 포대화상. 입 막고, 귀 막고, 눈 가리고 살라는 잠언을 익살스럽게도 표현하여 유쾌하다.
아카이브에서 고향의 옛모습을 찍은 사진들이 눈에 띄어서 담아 왔다.
오래전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와서 그때의 현재를 찍어 사진과 영상을 남긴 일본인 사진가는 인터뷰에서 '40년 전의 삶이 지금 역사가 되었듯이 지금의 모습들도 40년 후에는 후손들이 궁금해할 역사가 될' 거라고 했다.
그런데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그때는 썼지만 이제는 쓰지도 못하는 이 물건들이 지금도 유용한가, 그때는 현재였지만 이제는 과거인 역사는 꼭 알아야 하는가, 쓸모가 없다면 벽에 걸린 그림과 무용한 건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
박물관에 가면, 아이와 함께 가면 죽은 사람들과 앞으로 태어나 살 사람들 사이에 내가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내 삶이 어디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 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진다는 것. 또, 옛 사람들이 손수 만들어 오래 사용한 물건들을 보면 하루하루 먹고 자고 입고 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된다. 그러니까, 위대한 예술이 아니라도 그저 삶은 아름답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민속 박물관을 나설 때면 눈앞의 삶이 잠깐은 달리 보이는 것이다.
어느 집 밥상에 놓인 숟가락 하나가 귀하듯, 나도 귀하다. 쓸모 있다. 똑같지 않아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