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달라졌어요
아빠에 가려져 자신의 목소리는 크게 내지 않던 엄마,
그런 엄마가 많이 달라졌다.
첫 번째도 두 번째도 화가 너무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유가 뭘까?
갑작스러운 변화에 마치 칠십춘기가 찾아온듯한 엄마로 인해 집안 분위기는 24시간 365번 변화하는 롤러코스터 같은 상황이 되었다.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도 무척 힘이 들것이고, 아빠가 한창 병원에 계실 무렵 발목 통증이 너무 심하다고만 느끼고 그냥 지냈던 게 실수였다. 발목통증의 원인이 발목 골절이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당시 엄마의 정신이 어디를 향해 있었는지 알 수 있던 결과라 어깨가 늘어진 엄마의 뒷모습이 그렇게 짠할 수가 없었다.
오랜 시간 애써 돌봐온 그 대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방향과 목적을 상실한 엄마는 어쩌면 지난한 세월을 아빠가 강한 의지로 스스로 털어 일어나는 모습에서 보상과 위로를 얻고 싶었을 것 같단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나 엄마에게 정확한 보상과 위로를 건네줄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은 더 이상 존재 하지 않고, 그러므로 방향을 잃은 엄마의 바람과 달라진 현실은 불안과 두려움으로 차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불안과 두려움이 '화'의 근원이 되었을까.
어떤 유가족이 가족을 먼저 보낸 슬픔을 그럴듯하게 합리화할 수 있을까, 아쉬움과 자책에서도 자유롭진 못할 것이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가설을 동원하여 자책하는 시간들을 충분히 보내야 겨우 멈출 수 있을 것 같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이고, 엄마도 현재 이러한 자책을 수없이 하고 있음을 느낄 때가 종종 있었다.
이러한 불안과 두려움을 가족들만큼은 잘 이해할 수 있기에 서로 더 많은 배려를 하는 시기이기도 한데, 때때로 엄마의 주체할 수 없는 '화'를 막무가내로 받아내야 하는 자식들은 이 횟수가 반복될수록 지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딸들은 엄마의 '감정'을 세심히 살피기에 그것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내가 아닌 타인의 감정변화를 고스란히 받아낸다는 건 보통의 감정노동이 아닐 수 없다.
보통 사춘기 자녀를 대하는 부모들도 극심한 고통을 겪는 경우는 너무 흔하지 않은가.
갑작스러운 변화에 마치 칠십춘기가 찾아온듯한 엄마로 인해 집안 분위기는 24시간 365번 변화하는 롤러코스터 같은 상황이 되었다.
결국은 참고 참던 딸들과 엄마의 대전이 시작되었다
그간 퍼붓던 엄마의 화가 잠시 멈추었고, 딸들은 과한 배려를 잠시 멈췄다.
강약조절, 낄낄 빠빠 라는건 항상 필요하다.
상처에 무조건 잘 낫는 연고보단, 아프고 쓰라린 소독약이 잘 낫게 만드는 환경을 만들어주듯 때론 '단칼'처럼 확실한 선이 성장의 시작이 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은 마라톤처럼 오랜 호흡이 필요한 과정이기에 쉽게 지치면 곤란하다. 긴 호흡으로 가려면 숨 고르기는 반드시 필요하다. 지금 엄마에게, 우리에게 필요한 건 현실 속에서 감정 숨 고르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