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아빠 관찰기록 12.

다른 기억 - 결혼을 앞두고

by 요를레희요

아침 공기가 시원해졌다, 시간은 흐른다.


지난 얼마간은 아빠를 떠올리며 이야기 나누고 울고 웃었는데

요즘 들어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파도처럼 슬픔이 몰려온다

기억할 수 있는 추억은 많지만, 새로운 추억을 만들 수 없는 현실을 새삼 깨달아야 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부모님 댁을 대대적으로 정리하면서 우리의 일기장과 다양한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발견했는데,

언니의 결혼식 청첩장이 눈에 띄었다.


20년 전 청첩장


"시대가 이렇게 달라졌는데 청첩장은 예전디자인과 바뀐 게 하나도 없네"

웃음과 함께 청첩장을 펼쳐본 순간, 신부 아버지 이름이 적힌 곳에서 우리의 시선은 멈춰버렸다.

갑자기 말이 없어진 것으로 보아, 같은 의미로 멈췄을 것이다.

20년 전 그 시절, 살아있는 아빠의 이름이 고스란히 찍힌 청첩장.




잠시 후 언니는

"너 기억나? 내가 결혼 다 엎어버리고 싶다고 한 거?"

"그랬던가?"


"그리고 며칠 뒤에 아빠가 같이 밥을 먹자고 연락을 주셨어. 아빠랑 둘이 어디를 갔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아빠가 한 말은 또렷하게 기억나. 큰딸 결혼을 앞두고 보니 아빠로서 해준 게 너무 없는 거 같아 미안하다고 하셨어.

그러고는 네 형부가 속상하게 하면 아빠한테 곧장 연락하라고 하셨지"


"아빠가 그런 이야기를 했었어??"


"그러고 보니 나 결혼하고 신혼 때 아빠한테 전화해 남편 흉을 그렇게 봤네.. 아빠는 그때 어땠을까... 나 때문에 아빠도 참 힘들었겠다."


처음 듣는 에피소드였다.

언니와 아빠 모두 과묵한 성격이었는데 그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부녀였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예전글에 썼던 아빠는 양관식. 수틀리면 빠꾸. 아빠는 결혼을 앞둔 딸에게 그런 뒷배 같은 존재였다.

아빠 참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네 라는 생각이 스쳤다.




부모님 기대에 부응해 온 언니와 달리, 나는 결혼에 있어 타협하고 싶지 않았다.

막내 사위에 대한 부모님의 기대치가 높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부모님과 나의 스타일은 너무나 달랐기에 괴리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특히 엄마는 어른들의 생각은 안중에도 없는 나에게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셨다. 당시 집안 분위기는 좋지 않았는데 별말씀이 없던 아빠가 내 결혼식을 앞둔 어느 날,

"내 딸이 좋다는데 뭘 더 바래, 얘가 좋아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야, 내 딸이 선택한 사위라면 최고 사위인 게 당연하지"

그 말 덕분에 나는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아빠의 손을 꼭 잡고 버진로드를 걸을 수 있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아빠의 손을 잡고 버진로드를 걸을 수 있었던 것이 행운의 영역이었음을 깨닫는다.




결혼을 앞둔 두 딸에게 아빠가 했던 말은 서로 달랐지만, 이 말을 해주고 싶었을 것 같다.

'무조건 네 편이라고'


자녀로서 부모의 무조건적인 지지는 삶에서 무엇보다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안다. 아빠는 당신이 해준 게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을 알고 가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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