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공백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
자신만의 시그니처를 가진 직원이 퇴사하면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회사라도 업무에는 지장이 없을지언정, 그 동료의 공백은 느껴지기 마련이다. 단순히 일을 대체할 인력과 시스템은 있을지라도, 그 사람만이 가진 존재감으로 인한 공백은 다른 사람으로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함께 일하는 공간에서 '그 사람'이 가진 존재감. 요즘에는 더욱 느끼기 어려워진 '존재감'이라는 것.
5명인 우리 가족에게 한 명의 공백은 100% 중 20%라는 엄청난 존재감이 있고, 특히 이 가족의 시작인 아빠와 엄마라는 두 축 중 하나인 아빠의 부재는 더욱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 존재의 공백을 메울 수 있을까?
자영업을 하는 부모님의 가게는 1년 365일 대체로 바쁘지만, 그중에서도 봄가을은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엄청난 노동력은 물론이고, 그중 오랜 시간으로 쌓아온 '감각'의 영역에서 효율과 퀄리티를 가늠하는 일 중 하나가 아빠의 고유 역할이었는데 이 역할을 담당하던 아빠를 대신할 수 있는 인력이 있지 않다는 것에서 엄마는 아빠를 자주 떠올릴 수밖에 없어 보였다.
무엇보다 오랜 시간 동안 그 자리에 있던 아빠의 모습이 훤히 그려질 엄마는 그 공간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감정을 마주하고 있을까.
지난 금요일 오후에 휴가를 내고 무의식적으로 아빠가 즐기던 도넛 가게에 들러 여러 종류의 도넛을 산 후 부모님 가게로 향했다.
바빠도 이렇게 바쁠 수 있나 싶은 주말을 앞둔 부모님의 매장 사정을 알고 있었기에, 아무 연락 없이 몰래 매장으로 들어섰다.
"알바 왔습니다" 나의 우렁찬 목소리에 엄마는,
"어머, 바쁜데 왜 왔어?"라며 반색하셨다.
곧 아빠가 뒷마당 화단에서 "어이 우리 막내가 왔어!"하고 들어오실 것만 같은 그 분위기였다.
비록 뒷문을 열고 아빠가 들어오시는 일은 없었지만, 갑작스러운 딸의 방문을 늘 반갑게 맞이하는 엄마의 모습에서 변함없는 완전체 우리 가족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주말마다 이렇게 바빠진 건 코로나19 시국이 거의 끝나갈 때쯤부터였다. 그전에는 우리 가족이 봄, 가을 주말이면 가까운 곳으로 나들이를 자주 다녔기 때문에 '주말'은 가족들에게 '함께하는 시간'이라는 의미로 통했다.
나들이가 아닌 일상의 '매장'이라는 공간에서 '함께'할 수 있는 주말은, 멀리 바람을 쐬러 가는 나들이만큼은 아니어도 서로에게 그때의 의미를 느끼게 해주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모든 시간을 더 소중하게 느낄 수 있는 시절인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빠의 역할은 자식인 우리가, 엄마가, 또 다른 누군가가 해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빠 고유의 존재, 그 존재에 대한 부재는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음을 안다.
이제 '부재'는 존재감으로 작용할 것이고, 결국 아빠의 존재감은 부재라는 새로운 형태로 가족을 재구성하게 될 것이다.
여전히 슬픔이 밀려오고 마음에는 먹구름이 드리운 듯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빠의 빈자리에서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함이라는 귀하고 감사한 감정을 더 많이 느끼고 깨닫게 된다. 삶은 이토록 다채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