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아빠 관찰기록 15.

보내지 못한 편지

by 요를레희요

길었던 연휴가 끝났다.

난생처음 명절 핫플은 망자를 위한 공간인 추모공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5km를 이동하는데 2시간가량 걸리는 경험을 하면서, 삶과 죽음은 항상 공존하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한다.


나는 여전히 추모공원에 있는 아빠의 사진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 공간을 지키고 있는 사진 속에서

우리를 보던 아빠의 너그러운 표정을 마주하면

어김없이 목이 메어 그 흔한 "아빠 안녕"이라는 간단한 네 글자조차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연휴 동안 엄마가 많이 아프셨다. 몸살까지 겹친 엄마를 보며, 한동안 우리 가족에게 크고 작은 통증은 계속되리라 생각했다. 엄마의 통증이 사라지면 좋겠지만, 부모님이 우리를 키울 때 아프지 않기를 바랐던 마음과는 달리, 예상치 못하게 번갈아가며 아팠던 자식들을 돌보던 그때처럼, 우리 역시 엄마의 통증에 맞춰 반응하고 대처할 뿐이다, 현재로서는 이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엄마는 매일 목욕탕에 다녔다.

그랬던 엄마가 지난 초여름부터 목욕탕에 발길을 끊었다 회원권은 정지해 둔 상태였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에는 누가 안부를 물어올까 봐 부담스러워 목욕탕 가는 것조차 꺼린다고 하셨다.

나는 그런 걱정 없이 지내셨으면 했지만, 어른들의 문화를 내가 다 알 수는 없으니 그저 엄마 마음이 편안해지면 그때 가자고 말씀드렸다.

엄마의 소중한 일상이었던 목욕탕 타임이 부담이 되었다는 게 많이 속상했다.

그런데 지난 명절에 다 함께 목욕탕에 다녀오고 싶다고 하셨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었다.


오랜만에 목욕탕을 찾은 엄마는 아빠의 회원권을 해지하며 그간의 상황을 설명했다.

오랜 회원이었던 부모님의 안부를 들은 직원은 친절하게 해지 절차를 도와주었다.

아빠의 몇 안 되는 흔적이 사라지는 것 같아 마음 한편이 아쉬웠다.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엄마에게 안부를 전하며 꽤 오랜 시간 서로의 근황과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한 대화들이 엄마에게 위로가 되었을까, 아니면 그저 거쳐야 할 통과의례였을까.



아빠 없이 처음 맞는 명절.

평소와 다를 것 없다는 듯, 익숙하게 각자의 몫을 해내며 명절을 준비했고,

가족끼리 모여 앉아 깔깔거리며 웃고 잘 먹고 잘 놀며 작년보다 더 유쾌한 명절을 보냈다.


긴 연휴 끝, 아이의 책가방을 정리하다 불필요해 보이는 물건들 틈에서 편지 한 통을 발견했다.


곱게 봉해진 편지의 받는 사람은 할아버지.

내 아이의 할아버지, 우리 아빠에게 보내져야 할 편지였다.


아빠가 수술을 받은 후 나를 통해 소식을 전해 들은 아이가 할아버지께 쓴 삐뚤빼뚤하지만 꾹꾹 눌러쓴 아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보내지 못한 편지.


그동안 잘 참아왔는데,

그만 내렸으면 했던 가을비의 빗소리 덕분에 훌쩍이는 소리가 묻혀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연휴의 끝자락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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