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아빠 관찰기록 18.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삶

by 요를레희요

얼마전 한 게시글에서,

지금까지 살면서 '정말 최선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본 적이 있다.




있었다.

정말 하고 싶던 일을 할 수 있었던 회사에 입사했지만, 처음의 기대와는 달리 현실은 장밋빛 상상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그때.


일보다 힘든 게 사람이라는 걸 처음 알았던 시기, 이 흐름에 따라 내가 회사를 그만두면 결국엔 누가 가장 만족할까, 나는 지는 사람이 되는 걸까?라는 생각에 휩싸여 이 상황을 변화시킬, 무엇보다 내 현재의 삶을 바꿀 무언가가 절실히 필요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방법을 찾던 중 당시 유행하던 1만 시간의 법칙에 꽂혀 그 길로 3년 간 책에 파묻혀 살았다.

출퇴근길은 기본이었고, 점심시간과 퇴근 후 저녁 식사도 거르며 책만 봐서 아빠와 엄마는 다 큰 성인 직장인 자녀 밥걱정을 할 정도였다. 미쳐야 미친다는 말처럼 그렇게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읽다 보니 장거리 출장이 즐거울 정도였다. 긴 비행시간 동안 누구의 방해도 없이 책만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3년을 보내고 나니, 내 앞에 펼쳐진 삶이 180도 바뀐 게 아닌 내 마음가짐이 달라져 있음을 느꼈다.


그 시기 이후로 나는 인간관계나, 일로 마음이 너무 괴로운 상태는 잘 겪지 않게 되었다.

다를 것 없던 일상이 달라졌다는 큰 변화에, 그때의 나는 스스로가 기특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 후 그때의 나를 기억하는 것은 언제라도 영광스러운 기분이었다.




잊고 있었던 그때의 기억을, 얼마 전 우연히 마주친 질문을 통해 다시 떠올리게 되자, 무심코 지나쳤던 장면들이 불현듯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20대에 고군분투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잠도 안 자고 책을 보는 것일까 봐, 조용히 방문을 열어 나를 몰래 지켜보시던 부모님의 인기척이, 괜찮은지 내 표정을 살피시며, 아무 말 없이 그저 먹기 편한 음식을 내 앞으로 밀어놓던 3년간 부모님의 배려가.




비로소

나는 내가 하고자 하면 해내는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 3년이란 기간동안 그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그 시절 그 어느 때보다 섬세한 배려와 보호 속 평온한 환경 덕분이었음을 깨달았다.


결국 아무리 어른이 된다고 해도 나를 살리고 일으키는 것은 어린 시절의 나를 키워준 또 다른 어른이었고, 그 어른이 부모님이 이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도.


아빠 없이 처음 맞이하는 아빠 생신을 앞두고 써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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