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의 영역 : 내일 만나
"내일 만나"
한 달 만에 만난 언니와 내일 만나라고 말을 하며 헤어졌다.
인사를 하고 나서야 평소에 잘 쓰지 않는 말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일 만나는 직장 동료들에게도 수고하셨습니다 라는 말로 내일을 기약하기보다는 오늘의 우리를 마무리하는 인사를 하는 게 습관이었다.
그랬던 나에게 내일 만나 라는 이 말이 가슴에 훅 꽂혔던 건 본능적인 반응이었던 것 같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하루 전,
나는 병원에서 아빠와 인사를 하고 단도리하던 언니와 통화를 하며 내일은 우리가 함께 동행하며 아빠를 다른 병원으로 전원 할 그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내일 만나"라는 말로 마무리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날 우리의 통화는 희망과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지만, 아빠와 함께하리라는 미래에 대해서는 의심치 않았다.
내일 만나 에는 아빠와 언니 그리고 나까지 모두 만난다는 말이 담겨있었다.
그러나 나를 향해 왔어?라고 말해주는 아빠를 내일이 되었지만 만날 수 없었다.
미래의 시간은 실체가 없다.
언젠가 남은 여생이라는 말이 얼마나 오만하고 허황된 말인가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처음 듣고 뒤통수를 맞은듯한 기분을 잊지 못한다. 이후로 나는 여생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인간은 그 누구에게도 여생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오늘, 그것도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갈 뿐이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 더 집중하고 살아야 한다는 아주 간단한 진리를 알지만 나는 영원할 것 같은 사람처럼 실체 없는 미래의 시간으로 쉽게 미루는 것이 일상다반사였다.
여생이라는 것, 여분의 시간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게 사실임을 그날에서야 직접 경험했다.
그 이후로 내가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순간에 집중하며 살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아니다.
나는 여전히 과거와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아주 짧은 순간이라도 소중한 것은 한 번 더, 그리고 조금 더 진심으로 마음에 담으려 노력하는 나를 발견하는 현재를 살고 있다.
어릴 적 눈물이 많아 울보라고 부르던 아빠는 지금의 나를 보면 뭐라고 말해줄까? 여전히 "울보공주"라고 할까? 그 표정과 목소리를 아직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내일 만나기로 한 언니와는
내일이 되어 약속장소에서 만났다
늘 차가운 언니 손이지만 함께 손을 잡고 있으니 곧 따뜻해졌다
소중한 존재가 내 옆에 있다는 것이 행운의 영역임을 다시금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