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라는 특별한 지위. 정말일까?
본 브런치북은 과학적인 관점에서 인간에 대해 탐구해 보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철학을 함께 생각해 보는 시리즈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경우, 무심코 하게 되는 위험한 칭찬이 있다.
산수 시험에서 100점을 맞아온 아이에게 “넌 최고야!”, “역시 넌 특별해!”, “진짜 똑똑하구나!” 같은 말을 건네는 것이다. 이처럼 아이의 ‘본질’을 규정하는 칭찬은 조심해야 한다(본질을 규정하는 비난은 더더욱).
이런 말을 자주 들은 아이는, 자신이 최고이고 특별하며 똑똑하다고 믿게 된다. 그리고 그런 존재라서 사랑받고 칭찬받는다고 느낀다.
하지만 자만에 빠져 다음 시험에서 점수가 떨어지는 순간, 아이는 혼란에 빠진다. 자존감이 무너지고, 불안해지고, 심하면 부정행위나 자포자기에 이르기도 한다.
“산수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자랑스럽다.”는 따뜻한 격려면 충분하다. 태도와 존재 자체에 집중한 격려가 아이의 삶을 스스로 지탱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내 아이는 내게 정말 특별해 보이기 때문이다. 객관성을 유지하기란, 생각보다 어렵다.
놀라운 건, 이런 태도가 내 아이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또 ‘특별한 존재’로 여기는 대상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 바로 '사람'이다.
쾌적하게 설계된 도시, 잘 닦인 도로 위의 자동차들, 편리한 전자제품...
그리고 그 곁에 있는 강아지나 고양이, 드물게 눈에 띄는 새 몇 마리 외엔, 대부분의 동물은 보이지도 않는다.
어릴 때부터 보아 온 이런 환경의 익숙함 속에서 우리는 자만하며 믿는다.
“사람은 특별하다.”
태어날 때부터, 그런 존재였다고.
물론 우리만 이런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다. 과거의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동서양의 수많은 사상가들은 물론, 불과 250년 전 미국 독립 선언서를 만들 때만 해도 이런 말을 적었다.
We hold these truths to be self-evident,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that they are endowed by their Creator with certain unalienable Rights.
우리는 아래의 진리를 자명한 것으로 여긴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신으로부터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다.
사람의 권리를 신으로부터 부여받았다는 '천부인권'의 개념이다.
이는 15년 후 미국 헌법의 권리장전 내용으로 고스란히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로부터 235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미국 헌법의 이 문구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이 브런치북 시리즈를 지금까지 함께 해왔던 독자라면, 이 '천부인권' 개념의 문제점을 금방 눈치챌지도 모른다.
천부인권을 부여받았다면 그럼 언제부터 부여받았고 언제까지 유효한 것일까?
700만 년 전 아프리카 대륙의 융기로 기후가 차가워지면서 숲이 줄어들기 시작했을 때부터 부여받은 것일까?
검은 털 무리 일부가 원래 살던 열대 숲에서 초원으로 쫓겨나고, 오래 달리기 능력과 지능이 발달한 개체들이 점점 많이 생존해 나가기 시작한 그때?
또는 3500만 년 전 영장류의 공통조상에서 여러 형태로 분기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태초의 빅뱅부터?
아니면, 500만 년 후 뇌는 유기물로 남지만, 나머지는 기계로 대체된 인간이라면?
혹시 그 뇌마저도 양자 코드화 된다면?
또는 침팬지가 수렴 진화를 거쳐, 현재 인류와 비슷한 지능과 문명을 갖게 된다면?
이런 존재들에게도 그 권리는 유효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은 과거부터 한 형태로 머문 적이 없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리가 지금 '인간'이라고 부르는 존재는, 2025년 7월 '현재' 모습의 호모사피엔스일 뿐이다.
인권에 '천부'라는 단어가 붙는 순간, 인간은 특별한 존재로 여겨지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많은 과제와 의무를 떠맡게 된다.
법은 물론이며 절대적인(?) 윤리도 따라야 하고, 품위를 지키면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하며, 꿈과 목표를 가져야 하고, 각자 받은 달란트(talent)를 성실하게 개발해야 하며, 모든 사람에게 친절해야 하고, 인류와 사회를 위해 봉사해야 하는 등 등 등...
이쯤 되면, 인간은 존재 자체가 프로젝트다.
그리고 이러한 삶에서 조금 멀어지는 느낌이 들면 자존감이 무너지고, 불안해지고, 심하면 부정행위나 자포자기에 이르기도 한다. 마치 앞에 나왔던 특별하다고 규정되었던 그 아이처럼 말이다.
'천부인권'이 계몽기엔 해방이었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자아 강박과 도덕적 피로로도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농사를 짓기 이전 불과 몇만 년 전의 원시 인류만 해도 이런 생각은 전혀 가져본 적이 없었다.
윤리, 삶의 의미, 품위, 꿈과 목표, 성실한 삶, 인류에의 봉사와 같은 개념은 우리 몸 속에 없던 유전자였다. 원래 없는 우리의 유전자가 현대 사회에서 강요되는 인간상과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현대 기술문명을 유지하기 위해 이 같은 인권, 인간의 존엄성 개념은 필수불가결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에 '천부'가 붙음으로써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목적 지향성의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차라리 우리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서로를 공격하고 죽이는 것은 공동 파멸의 길이니, 우리 인류가 인권의 개념을 정립해, 다 같이 평화롭게 공존해 나갑시다.
그것이 인류의 편안한 생존과 후손의 유지에 훨씬 더 유리합니다.
한명 한명 인권의 가치를 소중히 여깁시다.
이렇게만 인권을 정의해도 기술문명을 충분히 지켜내면서, 사람이 본질적으로 다른 생명보다 우월하다는 전제를 잠시 내려놓고 조금은 편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인류는 이제, 이러한 관점을 받아들일 만큼 조금은 성숙해지지 않았을까?
'우리가 그렇게까지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이, 오히려 우리를 더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이제는 공론화해 볼 때도 되지 않았을까?
다음 편에서는, 이렇게 인간을 규정하는 사회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어떻게 주고 있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행복을 찾을 실마리는 없을지 구체적으로 들여다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