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당신의 '이성'은 안녕하십니까?

고도 진화의 산물, 감정.

by 공상과학철학자
본 브런치북은 과학적인 관점에서 인간에 대해 탐구해 보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철학을 함께 생각해 보는 시리즈입니다.


MBTI에서 당신은 F 성향인가 T 성향인가.

어떤 사람을 '이성적'이라고 말할 때,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


샤프하게 생긴 셜록 형사가 고도의 추리를 통해 범인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인터뷰에 응할 때에도 기쁜 감정을 내색하지 않고 기자들의 질문에 차분하고 담담하게 답변했다. 우리는 보통 이런 셜록 형사를 '이성적'이라고 말한다.


이것을 풀어서 분해해 본다면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 셜록 형사는 뇌 영역이 발달했다.

⇒ 형사는 학습과 추론의 능력이 있었다.

⇒ 학습과 추론을 통해 범인을 찾는 성과를 올렸다.

⇒ 성과를 올리고 기뻤다.

⇒ 기뻤지만 내색하지 않고 인터뷰에 건조하게 임했다.


사람들이 '이성'이라고 하는 것을 간단히 축약해 보자면 ①뇌의 추론과 학습 + ②감정 참기(사회적 눈치 보기)라고 말할 수도 있다.

"너 정말 '이성적'이다.", "'이성'을 찾아 제발." 할 때의 '이성'이다. 여자친구, 남자친구 말고(이 이성의 문제는 다음 기회에 상세히 다루기로 하자. 매우 중요하니까.).


뇌가 좀 더 발달하고, 사회적 눈치가 뛰어났던 개체들이 더 많이 살아남아 번식하고 이어져 온 지금까지의 산물, 그것이 바로 인간의 '이성'이다.

이성은 '학습 능력'과 '사회적 눈치'의 복합 생존 도구. 과거의 경험을 통해 패턴을 인식하고 미래를 예측하며, 타인의 의도를 파악하고 반응하는 능력인 것이다.


셜록 홈즈는 범죄 사건들을 주로 땅에서 해결했지만, 이런 사례는 물에서도 보이곤 했다.

수영장에서 복잡한 퍼즐을 해결하고, 훌라후프 위치와 너비를 계산해 몸을 통과시킨 후,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고 음식을 먹는다.

작은 생선이 성에 안 차 불만의 감정이 있지만, 내색하지 않고 조련사가 주는 먹이를 잘 받아먹는 돌고래의 이야기다.


주인한테 화날 때도 많지만, 주인 눈치를 살살 보며 의도를 추리해 내는 강아지는 또 어떠한가?


물론 인간의 이성은 돌고래와 개보다는 더 복잡하지만, 이는 발달 수준의 차이일 뿐, 돌고래와 개가 이성이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비록 그것이 초보적 수준의 것일지라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성'을 높은 가치로 여긴다. 특히 '감정'과 대비되는 '이성'을 말할 때 더욱 그렇다.


"남자는 우는 거 아니야. 울면 바보 되는 거야!"

"입을 그렇게 크게 벌리고 웃니? 웃음이 헤프면 안 돼."


지금은 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 말을 들은 어떤 사람은 사내답지 못하다고 울음을 참았고, 어떤 사람은 웃음을 삼켰을 것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우리 안의 감정을 억누르는 법을 배워왔다. 사회는 특정 감정의 표현 방식을 규정하고, 때로는 감정 자체를 저급하거나 나약한 것으로 치부하곤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이성이 우리를 특별하게 만드는 유일한 능력이며, 감정은 통제해야 할 미성숙한 존재일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눈물을 흘리면서 울거나, 기쁘거나 재밌는 상황에서 입을 크게 벌리고 웃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더욱 인간만의 반응인 것 같다.

침팬지가 즐거울 때 "후후후후" 하며 숨을 헐떡이고, 개가 화날 때 이빨을 드러내긴 하지만 인간처럼 눈물을 흘리거나 미소를 띄거나 깔깔대고 웃지는 않는다.



슬픔의 눈물은 위험한 상황에 대한 자기 인식이자, 슬픔에 대한 공감을 유도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가 된다. 이는 위험한 상황을 본인이 깨닫거나 무리의 보호를 받아 생존율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웃음 기쁨과 만족을 표현하며 무리 내 유대감을 강화한다. "너와 함께 있으면 안전하고 즐거워."라는 메시지를 전달하여 공동체의 결속을 다진다. 물론 이성친구를 찾는데도 유리하다.


기쁨의 눈물 있다. 주로 생존이 위험하다가 안전한 상황이 되었을 때이다. 현대의 언어로 바꾸자면 고생 끝에 의미 있는 일을 성취했을 때, 그리운 사람을 오랜만에 만났을 때, 또는 이런 장면을 제삼자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공감하며 나타나게 된다.



우리가 느끼는 기쁨, 즐거움, 슬픔, 분노, 지루함, 이 모든 감정은 생존을 위해 발달시켜 온 고도의 사회적 장치들이다. 위험을 피하게 하고, 동족과 유대하며, 이성친구를 찾고, 자원을 얻고, 불쾌한 상황에서 벗어나게 하는 강력한 동기이자 신호 시스템이다.


이성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생존 본능이 사회적 본능과 결합된 것이 바로 '감정'이다.

☞ 감정 = 생존 본능 + 사회적 본능


AI 시대 사람의 이성이 더욱 더 위축되고 있는 반면, 감정이야말로 다른 동물이나 AI가 흉내내기 어려운, 인간만이 고유하게 발달시켜 온 특성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 감정이 억압당하고 숨겨졌을 때다.

감정이 숨겨지면 우리의 뇌는 이를 지속적인 스트레스 상황으로 인식한다.

코르티솔이 계속해서 분비되고, 이는 만성적인 불안, 우울, 수면 장애, 면역력 약화와 같은 신체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내면에 쌓여, 결국 우리를 병들게 하는 독소가 된다.


물론 재벌 회장도 대통령 앞에서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대통령도 국민들 앞에서는 눈치를 본다. 이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과할 때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직장에서든 가정에서든 감정 표현이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특히 자본주의의 효율성을 중요시하고, 개인보다는 집단이 강조되는 사회에서 더욱 그러한 경향이 있는데, 이 두 가지의 정점에 해당하는 케이스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이쯤 되면 전 국민이 감정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을 숨기지 않고 적절히 표출했을 때,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자신을 이해하고 성장시키며,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는 등 효익은 명확하다.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고적인 T보다 감성적인 F가 감정을 더 잘 표현하는 것일까?

사람들 중에서는 좀 더 신경이 예민하고 감정 이입이 잘 되는 강한 F 유형의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감정을 잘 표현한다는 것이 T냐 F냐의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감정적 억제를 요구받는 사회에서는 F 성향의 사람이 어쩌면 더 감정 표현의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을 수 있다. 감정이 올라오지만 속에서 끙끙 앓기만 하는 것이다.


감정의 표현은 무엇인가?

외부 정보를 인식한 후, 신체의 반사적 반응, 표정과 행동, 그리고 '말'이 외부로 드러나는 것이다.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은 우선 자기감정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여럿이든 혼자일 때든 그 감정에 따라 몸이 이끄는 대로 편하게 표정을 짓고, 울고 웃는 것이다.


또 서운한 것이 있다면 내 감정을 '말'하는 것이 좋다.

신체의 반사적 반응은 내가 컨트롤할 수 없지만, 행동과 말은 컨트롤할 수 있다.

요령은 '네가 나쁘다'라고 규정하기보다는 '내 감정'을 말하는 것. 그것이 자기 이해를 높이고, 상대방을 덜 공격하는 현명한 방법이다.

속으로 끙끙 앓아봤자 상대는 알 수 없고, 내 마음만 번민하게 될 뿐이다.

이심전심을 알아차리는 것은 빗나갈 확률이 높다.

'내 감정을 말하는 것'이야말로 생존 본능과 사회적 본능이 결합된 '감정'의 가장 궁극적인 표현 수단이다.


다만, 여기서 '분노'의 감정만큼은 잘 제어할 필요가 있다. 관계의 손상, 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 등, 현대 사회에서 잘 수용되지 않는다. 원인을 분석하고, 비폭력적으로 감정을 전달하며, 필요하다면 잠시 상황을 벗어나 감정을 식히는 등의 방법을 활용해야 한다.


당신은 진짜 펑펑 울어도 괜찮다.

당신의 응어리가 풀릴 것이고, 대부분의 사람은 당신을 바보같이 보는 대신, 작은 마음이라도 도움을 주려 할 것이다.

입을 활짝 열고 웃어도 괜찮다.

몸에서 세로토닌이 분비될 것이고, 대부분의 사람은 당신을 무례하게 보는 대신, 당신의 웃음을 따라 즐거움이 전염될 것이다.


911 테러 당시, 남쪽 타워(WTC2)에 있던 사람들은 먼저 8시 46분에 충돌한 북쪽 타워(WTC1)의 폭발음을 듣고 탈출할 기회가 있었다. 남쪽 타워에 또 한대의 비행기가 충돌하는 9시 3분까지의 17분간.

많은 사람들이 이 17분 동안 빠져나왔지만,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은 그러하지 않았다.

남쪽 타워는 무사하다는 안내 방송, 침착하게 커피를 마시는 동료들의 모습을 보며, 머물러도 괜찮다고 '이성적'으로 판단한 사람들도 많았다.


이때 공포를 느끼는 본능과, 울고 싶은 감정을 따라 울며 대피했다면 어땠을까?

감정에 충실한 것은 정신적인 문제의 완화뿐만 아니라 때로는 즉각적인 생사를 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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