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의 유전자적 기원
본 브런치북은 과학적인 관점에서 인간에 대해 탐구해 보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철학을 함께 생각해 보는 시리즈입니다.
직장 5년 차 김덕훈 선임, 요즘 멍한 느낌이 든다.
어제도 아침 7시에 일어나 허겁지겁 씻고 요기를 한 후, 꽉 막힌 대중교통에 몸을 의지해 간신히 출근에 성공했다.
출근 후에도 하루 종일 바빴던 것 같은데, 하루를 돌아보면 왠지 모를 공허함이 밀려온다.
지친 몸을 저녁의 거실 소파에 기댄 채 생각한다.
'나는 오늘 하루 제대로 보낸 걸까?'
결혼 10년 차 이혜주 씨, 가사와 육아를 맡으면서 요가 강사 활동을 하고 있다.
아침 6시부터 일어나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초등학생을 깨워 전쟁을 치르듯이 학교 정문까지 동행시켜 보낸다. 오전엔 집안일, 오후엔 요가수업을 진행하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 학원 수업과 저녁식사를 챙긴다.
그러다가 밤이 깊으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오늘 대체 뭘 한 거지?'
현대인은 대부분 바쁘게 살아간다. 김 선임도, 이혜주 씨도, 카페를 운영하는 박 아무개 씨도, 학교를 다니는 어린 학생들도 다 마찬가지다. 아마 재벌 회장도 회사의 앞날을 고민하느라, 대통령도 행정을 기획하고 정국을 구상하느라, 손흥민 선수와 가수 아이유도 더 멋진 무대를 준비하느라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체 현대인은 왜 이렇게 바쁘고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일까?
첫째, 현대 자본주의가 잉여 생산 체제이기 때문이다.
둘째, 비교 본능의 유전자 때문이다.
셋째, 장시간 일하는 유전자가 우리에게 없기 때문이다.
23.5도 기울어진 지구의 자전축 덕분에, 1년 중 절반은 태양에 가깝게 기울어져 에너지를 많이 받고, 나머지 반년 동안은 반대이다. 원시인류를 포함한 생물들은 이 기울어진 자전축 현상에 적응해야 했다.
그래서 보통 먹이를 구하기 어려울 때를 대비해, 예를 들면 겨울을 대비해, 동물들은 평소 먹는 양보다 열매를 더 많이 수확했다. 그리고 나선 겨울 환경이라는 자연 냉장고 속에서 보존해 가며 아껴 먹었다.
동물들은 늦가을에 잉여 수집을 했고, 식물들 역시도 늦가을에 잉여 생산을 많이 한 식물들의 열매 씨가 더 넓게 퍼졌다. 우리가 늦가을에 먹는 감, 대추, 사과, 석류, 밤, 호두 등은, 동물의 행동에 따른 식물 고도의 전략이다.
농경사회로 진입하자, 인간의 이러한 잉여 수집 속성은 일하는 양을 훨씬 늘게 했다. 더 많은 곡식을 획득할 수 있었지만, 인류의 먹이는 한 가지 종류로 경도되어 영양 불균형이 심해졌을 뿐만 아니라, 하루 종일 땅을 파고, 씨와 모종을 심고, 물을 길어다 나르고, 잡초를 뽑고, 수확하는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현대 사회는 이에 더해, 대량 생산을 통해 필요한 물품보다 더 많은 생산을 하는 공장일 수록 더 살아남을 수 있는 자본주의 체제가 결합되어 있다.
꼭 공장뿐만이 아니라, 유통이든, 식당이든, 카페든 대형 업체와 프랜차이즈들이 득세한다. 개인 빵집은 특출 난 개인기를 가지고 죽기 살기로 해야 겨우 입에 풀칠을 할 수 있다.
설령 대량 생산의 이익을 누릴 수 있는 회사라고 해도, 이익은 소수의 몫이고, 나머지 직원은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한 톱니바퀴가 되고 만다.
가능하다면, 적은 월급을 주고 많은 일을 오래 시킬 때 최고 효율의 노동력이 된다.
오늘도 페북, 인스타그램을 열면, 누구는 유럽으로 여행을 가고, 누구는 좋은 차를 타며, 누구는 비싼 레스토랑에서 여유를 즐기는 모습이 보인다. 물론 그들도 특별한 순간을 업로드한 것이겠지만, 이를 보고 있자면 괜히 배가 아프기도 하고, 뒤처진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러한 비교 본능은 인간만의 특성은 아니다. 무리 생활을 하는 대부분의 포유류는 서로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비교한다.
침팬지는 싸움 실력과 몸집을 비교하여, 스스로가 무리에서 어느 정도 서열에 위치해 있는지 파악한다.
늑대는 신체 능력, 나이, 경험, 그리고 무리를 이끄는 리더십 등을 종합적으로 비교해서 서열을 형성한다.
보노보는 누가 더 과일을 잘 따고 잘 나누며, 사회적 유대에 능한지를 비교해서 서열을 정한다.
그러면 이들은 대체 왜 서열을 정하는 것일까?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개체수는 많기 때문이다. 서열을 정하는 것이 극단적인 싸움을 피하고 전체의 생존을 도모하기에 유리했고, 서열을 거부하지 않고 무리에 녹아들었던 유전자가 살아남았기 때문이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현대의 법과 제도는 서열이 아닌 평등을 말하고 있지만, 현실 세상에서는 암묵적인 서열이 존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의식 속에서도 남과 나를 자꾸 비교하려는 본능은 계속 발현된다.
왜냐고? 바로, '생존'과 '번식'의 유리한 고지를 남보다 먼저 차지하려는 우리 유전자의 속성 때문이다.
불과 약 400세대 전, 1만 년 전의 인류만 해도 농사를 짓기 전이었다. 그때는 하루이틀 먹을 양 정도만 과일을 따고 사냥을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쉬거나 동료들끼리 교류하는 활동이 주를 이루었다.
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의 부시맨들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수렵채집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먹고살기 위해 일주일에 15~20시간 만을 일해도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우리는 지금 어떤가. 일주일에 52시간을 일해야 한다. 마을 전체가 아이를 돌보는 인류의 문화는 사라져 버렸고, 어린 아이 한 명을 양육하기 위해서는 하루의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장시간 일한 적이 없었던 우리의 유전자가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에 적응하기에는 1만 년이라는 시간은 너무도 짧다.
요약하면,
잉여생산의 현대 사회가 장시간의 노동을 요구하고 있고,
비교 본능을 가진 우리의 유전자가 여기에 대응해 보고자 애쓰고 있지만,
장시간 일해본 적이 없던 우리의 신체(뇌 포함)가 SOS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현대 사회의 체제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AI와 로봇이 인간의 모든 경제활동을 대신할 때까지 이 체제는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그렇다고, 장시간의 노동을 피해 산속으로 들어가기에는 위험하다(다만, 대기근이 일어난다면 산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해결책. 그러나 현대 문명에 적응해 버린 우리는 문명을 떠날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그대로 굶어 죽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스로를 돌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면, 내가 바뀌는 수밖에 없다.
확실한 방법 하나는 남과의 비교를 줄이기. 구체적으로는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말처럼 SNS를 멀리 하는 것이다.
추후 연재에서 행복에 관한 주제는 따로 많이 다루겠지만, 많은 연구자들이 재산, 소득, 외모, 학력, 지능, 나이와 같은 외적 조건이 행복과 별 상관관계가 없다는 데이터들을 수집했다.
물론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이 안 되는 환경이라면 당연히 기본욕구부터 충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 적당한 비교는 개인의 삶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것은, 굶어 죽을 걱정이 없는 선진국에서, 이러한 외적 조건이 우월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특별히 더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의 가치와 자존감을 남과의 비교가 아닌, 내 스스로에게서 찾아본다면 어떨까?
이미 당신은 138억 년 전 빅뱅에서부터 지금까지, 현재의 환경에 가장 적합한 유전자들이 살아 남고 축적되어 만들어진 최고의 결과물이다. 충분히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세계적인 심리학자 연세대학교 서은국 교수의 한 말씀이, 당신에게 작은 위안이 되기를 바라며...
https://youtube.com/shorts/ONVaP6wgrr4?si=gzhf6dr0FPEMb2i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