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개체수 조절 전략
본 브런치북은 과학적인 시선에서 인간에 대해 탐구해 보며,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철학을 함께 생각해 보는 시리즈입니다.
사람의 유년 시절은 왜 이렇게 긴 것일까?
사춘기가 와도 여전히 아이 같고, 최소 20년은 키워서 대학까지는 보내 놓아야 서서히 자립이 가능해지는 느낌이 든다.
이유는 바로 사람의 이족보행 때문이다.
이족보행으로 골반과 산도가 좁아진 반면, 뇌의 발달로 머리는 커진 역설이 생겨났다.
먼 옛날, 머리가 크게 태어나려는 아기와 엄마는 생존하지 못했고 후대에 유전자를 물려줄 수 없었으며, 머리가 작게 미성숙한 채로 태어난 모자는 살아남았다(여자의 넓은 골반 형태를 자기도 모르게 좋아하는 남자의 심리에는 자식이 죽지 않고 잘 태어나기를 바라는 유전자의 본능이 숨어있다.). 대신 태어난 후 육아 기간을 늘려야 했다.
이런 우여곡절에도, 어쨌거나 나를 닮은 아기가 세상에 나온다는 것은 무척 신기하고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동시에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아기에게 투자해야 하는 고충이 따르는 것 역시 사실이다.
태어나서 아무것도 할 줄 모르던 아기는 점점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지게 되면서, 엄마 아빠의 자유시간도 차츰 늘어난다.
걷게 되고, 말로 의사소통을 하게 되고, 어른 음식도 먹게 되고, 기저귀를 안 차게 되고, 어린이집에 가게 되면서부터 아이와 엄마 아빠 모두 가장 행복한 평화가 시작된다.
그렇게 3살 무렵 시작된 행복한 평화는 대략 10년 간 지속되다가, 아이가 13살 무렵이 되면 종료된다.
아이는 엄마 아빠가 만들어 준 세상에 의문을 품고, 스스로의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시도를 시작하는 것이다.
발랄하던 아이가 말이 없어지고, 짜증을 쉽게 내고, 방에 틀어박혀 도통 나올 생각을 안 하며, 친구를 찾고, 새벽 한두 시까지도 잠을 안 잔다.
아이는 속으로 이런 말을 하고 있지 않을까?
'난 아직 어린이 같은데 어른의 몸이 되었어. 이상하고 무서워.'
'엄마 아빠도 이런 나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짜증 나.'
'방에 있는 게 편해. 친구랑 톡 해야지.'
'그리고 왜 이렇게 밤에 잠이 안 오는지 모르겠어.' (이는 놀랍게도, 인간의 번식 유전자가 청소년이 되면 밤에 짝을 찾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이 되면 하루 중 수면 유도 호르몬, 멜라토닌의 분비 시간이 늦춰진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아이는 스스로 어른이 되어야 함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옛날 아이들보다 훨씬 더 큰 공포를 마주하는 채로...
과거 인류가 수렵 채집을 하던 시기, 세상은 큰 변화가 없었다. 가끔 평소보다 큰 비나 예상 못한 맹수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대체로 예측 가능한 세계의 범위 안에 있었다.
하지만 인류가 농사를 시작하고 문명이 발달하면서 세상은 조금씩 변화의 속도가 빨라졌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뇌는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예측을 하고 있다.
아이들은 이를 훨씬 더 생생하게 체감하고 있다.
인공지능의 놀라운 능력을 목도하면서, 인간 불확실성의 미래를 예측한다. 앞으로의 인생을 이러한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고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앞으로의 인생은 기성세대보다 훨씬 길게 남아있다.
흔히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를 가리켜, 풍요롭게 자라나, 꿈도 의지도 없는 나약한 세대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기성세대의 젊은 시절과, 현재 젊은 세대의 환경은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은 쉽게 간과되곤 한다.
과거에는 직업의 종류가 큰 틀의 변동 없이 정형화되어 있었고, 성장의 사회였고, 열심히 노력하면 어느 정도 삶의 기반을 갖추고 성공할 수도 있는 세대였다는 것.
그러나 지금은 사람이 할 일이 불확실하고, 성장보다는 쇠퇴가 우려되고, 계층 간의 사다리는 잘라진, 완전히 다른 세상에 놓여 있다는 사실 말이다.
만약 여러분이 중고등학생 자녀가 있다면, 자녀가 공부를 열심히 했을 때 앞으로도 뒤처지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이 아이들은 10년만 지나도 인생을 자기 스스로 살아 나가야 한다. 부모가 자식의 인생을 평생 책임지고 대신 살아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회가 큰 변동이 없을 때에나, 어른의 지혜, 노인의 지혜가 과거의 경험으로써 유효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스스로의 가능성과 한계와 사회 현실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좋은 대학을 간다고 해도, 미래가 불투명하고 그렇게 밝지 않다는 사실이 명확히 보인다. 그럼에도 엄마 아빠는 보통 별다른 설명도 없이 그저 공부하라고 강요하고 체크하고 윽박지르기 일쑤다.
아이들은 현실과 부모 생각의 괴리 속에서, 오랜 시간을 공부한 적이 없던 인류의 유전자와 부모 압박의 괴리 속에서, 더 쉽게 번아웃 된다.
공상과학철학자는 군대 훈련병 시절에 특이한 체벌을 받은 경험이 있다.
어떤 하사관이 삽 한 자루를 쥐어주더니 운동장 같은 곳의 땅을 좀 파라고 하는 것이었다.
대충 흙을 파내고 다 됐다고 말하자, 하사관은 사람이 들어갈 정도로 더 깊이 파라고 했다.
결국 깊이 흙을 파내고 암석에 걸려 더 이상 흙이 파지지 않는 순간, 하사관은 이렇게 말했다.
"다시 메워."
아무런 목적과 용도도 듣지 못하고 흙을 파냈던 기억. 인생의 안 좋았던 순간 중 하나로 여전히 남아있다.
애덤 그랜트라는 미국의 심리학자는 2007년 미시간대학교 박사 과정 중, 장학금 후원을 전화로 모금하는 콜센터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가지 실험을 했다.
직원을 두 그룹으로 나누었다. 한 그룹에는 장학금 수혜자의 감동적인 강의를 들려주었고, 다른 그룹에는 단순한 지시만 내렸다.
이 결과 장학금 수혜자의 강의를 들은 직원들은 그렇지 않은 직원들보다 훨씬 더 오래 통화를 했고, 모금액은 2배 이상이었다.
어른이건 아이건 젊은 세대건, 사람은 목적이 명확하고 예측이 가능할 때 움직이게 되어있다.
과거의 우리도 무화과나무가 시야에 들어오고 먹을 수 있다는 예측이 있어야 나무로 달려갔고, 사자가 멀리서 나타난 것이 보여야 나무 위로 달아났다.
지금 젊은 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일방적 강요나 지시가 아니라 목적과 가능한 예측, 즉 방향이다. 그리고 그 방향은 자기 자신을 잘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축구는 여러 명이 한 팀에서 플레이한다. 그중에는 발이 빠른 선수, 킥이 좋은 선수, 패스가 좋은 선수, 피지컬이 좋아 잘 안 넘어지는 선수 등, 각자의 능력과 선호하는 포지션을 고려해서 포메이션을 정한다.
젊은 세대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을 좋아하는지, 보통 사람들 평균보다 좀 더 잘하고 못하는 것은 무엇인지, 이런 것들에 대한 관찰자로서의 조언과 격려를 주는 것일지 모른다.
만약 당신이 젊은 세대와 함께 일하거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입장이라면, 혹시 불확실한 현재의 기준이 아닌 과거의 잣대를 들이밀고 그들과 대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나마 대화를 하고 있다면 다행이다. 최소한 스스로도 불확실해 보이는 상황에서, 이유를 잘 설명하지 못하는 지시나 강요를 무작정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젊은 세대가 아이를 잘 낳지 않는 것. 나약하고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생존에 불확실한 환경을 선제적으로 인지하고 개체수를 조절하려는 인류 전체의 현명한 전략을 선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