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몬 - 마음을 설계한 유전자의 비밀
본 브런치북은 과학적인 관점에서 인간에 대해 탐구해 보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철학을 함께 생각해 보는 시리즈입니다.
당신은 왜 손가락이 5개이며, 슬플 때 울고,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려 할까?
어쩌면, 비둘기처럼 발가락은 4개이고, 슬플 때는 깔깔 웃고, 미래보다는 그때그때 상황에 그냥 반응만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당신의 세포 안에는, 어머니와 아버지 유전자의 50%씩을 물려받은 DNA 염색체 23쌍이 만들어져 있고, 그 DNA는 2만 개가 넘는 유전자 정보를 가지고 있다. 당신의 특성이 하필 이러한 것은, 당신의 수많은 유전자 정보가 당신의 모습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손가락을 5개로 만들어!"
"남들보다 못생기게 만들어!"
세계적 석학 리처드 도킨스는 1976년 명저 '이기적 유전자'에서 말했다. 사람을 결정하는 것은 유전자이고, 사람의 신체는 유전자의 생존과 번식을 위한 '생존기계'일 뿐이라고.
당신의 손가락이 5개인 것, 왱왱거리는 모기가 보이면 그 손으로 모기를 덥석 낚아채는 것, 그리고 구멍이 뚫린 방충망을 손으로 보수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유전자의 설계와 명령이라는 것이다.
'오늘 이성친구를 만나러 클럽에 가야지.'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당신의 생각이 아니라 유전자의 명령일지도 모른다.
유전자는 사람에게 어떻게 명령을 내리는 것일까?
유전자에 전파 송신기나 와이파이가 탑재되어 있지도 않은데 말이다.
그 방법은 바로 호르몬이다. 유전자는 뇌로 하여금 특정 '호르몬'을 분비하게 하고, 그 호르몬이 몸과 마음을 움직이도록 만든다.
오감을 통해 특정한 상황을 마주할 때나, 또는 하루 낮과 밤의 주기에 따라, 뇌에서는 여러 가지 다른 종류의 호르몬이 뿜어져 나온다,
그중 오늘 대표적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도파민, 세로토닌, 옥시토신, 코르티솔, 아드레날린의 5가지 호르몬이다.
이들 호르몬이 몸에 명령을 내리는 가장 대표적인 말들을 들어보자.
각 호르몬의 명령어에서 보듯, 이 호르몬들은 인류가 과거부터 생존하는데 필요한 필수적인 명령들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 인류 역시도,
"내 유전자를 생존시켜야 하니까 토끼를 사냥해야지.", 또는 "내 유전자를 후손에 전달해야 하니까 이성친구를 찾아야지!"라고 어떤 당위나 의지를 가지고 행동한 것은 아니었다.
토끼를 잡기 위해 달릴 때, 마침내 잡았을 때, 고기를 먹었을 때의 강한 성취감과 쾌감,
그리고 짝과 함께 밤을 보낼 때의 짜릿한 황홀감이 다음에도 같은 행동을 계속 반복하도록 만들었다.
도파민을 더 자주 느낀 개체들은 더 많이 사냥하고, 더 많이 번식했다.
도파민은 성취가 예상될 때, 그 과정과 결과에서 모두 분비된다. 뇌의 측좌핵을 자극해 뉴런 수용체에 강한 전기 흥분 자극을 준다. 이것이 바로 신체가 느끼는 짧고도 강한 도파민 쾌감의 정체다.
하지만 과거 수렵 채집 시절에는 정육점, 19금 영화, 술, 담배, 마약, 모바일게임, SNS, 인터넷쇼핑은 존재하지 않았다. 도파민을 느끼는 것은 흔치 않은 경험이었기에, 유전자는 사람이 사냥하고 채집하고 이성친구를 찾으면서 도파민을 추구하도록 설계되었다.
하지만 도파민을 자주 느끼던 인류라고 해서 항상 유리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강한 도파민 자극을 추구했던 일부는 때로 무리한 사냥감을 쫓다가 죽기도 했고, 대장의 여자친구를 탐하다가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세로토닌은 마음을 한 템포 진정시키고, 평화로우며 충만한 느낌을 주도록 만들었다.
사자를 잡으면 기분이 끝내줄 거라는 마음이 생기게 하는 대신, 사자를 잡고자 하는 충동을 억제시켰다.
맹수가 없고 먹을 것이 풍부한 상황에서는 안심해도 되도록 불안을 감소시키고, 안도감과 만족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리고 해가 질 무렵이 되면 많아지기 시작해 마음의 이완과 수면에 도움을 주었다.
평온하고 안정된 마음만 있다고 해서 항상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멋진 이성친구를 봤는데도 마음이 차분하기만 했다면, 인류는 일찍부터 대가 끊겼을지도 모른다.
옥시토신은 이성친구와 눈을 맞추고 다정한 말을 나누고 키스를 할 때 분비되는 것은 물론, 엄마가 아기를 바라볼 때, 아기가 엄마를 바라볼 때, 귀여운 강아지나 고양이를 볼 때도 생성된다.
인류에게 강한 유대를 형성하게 만들어 사회의 결속을 다지게 하고, 반려동물까지 포섭하게 만드는 호르몬이 바로 옥시토신이다.
다만 너무 과할 경우, 집착으로 이어져, 강박, 의처증, 의부증과 같은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과거 인류는 당연히 평화로운 환경에서만 생활했던 것은 아니었다. 자연환경은 때로는 가혹했고, 한가하게 짝짓기만 하면서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먹을 것이 떨어질까 봐 항상 먼 곳을 보며 사냥감이나 과일나무를 주시해야 했고,
겨울을 맞이하기 전에는 최대한 많은 과일을 미리 따놓기 위해 긴장해야 했다.
같은 집단 내에서는 서열싸움을 위해, 짝을 찾기 위해 늘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정신을 차리고 하루를 시작해야 했다(코르티솔은 아침 분비가 활발).
이처럼 코르티솔 또한 생존을 위한 필수 호르몬이었던 것이다.
사자를 마주쳤을 때, 뾰족한 창을 든 다른 무리의 사람들을 만났을 때, 단순히 긴장하고 각성하는 정도에 그쳤다면 인류는 지금까지 살아있지 못했을 것이다. 코르티솔 정도의 수준을 넘어서, 즉각적으로 털이 곤두서게 만들고, 도망치거나 맞서 싸우게 만드는 아드레날린은 생존의 필수 호르몬이었다.
이처럼 유전자는 뇌의 호르몬 분비라는 메커니즘을 통해 사람의 몸과 마음을 컨트롤했고, 흔히 부정적인 호르몬이라고 오해받기도 하는 코르티솔과 아드레날린 역시도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호르몬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우리에게 꼭 필요한 호르몬이라고 해서 항상 좋은 작용만 하는 것은 아니다. 바로 부족하거나 너무 과할 때, 호르몬은 우리에게 문제를 일으킨다.
그리고 현대사회의 제도와 문화는 특정 호르몬의 과잉이나 결핍을 만성적으로 부르고 있다.
그중 가장 과잉이 심한 것은 코르티솔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인생의 모범답안에 가까이 가기 위해, 늘 긴장하고,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성실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스트레스의 종류가 과거의 먹이에서 현대의 '성공'으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다.
이렇게 코르티솔에 계속 장기간 노출될 경우 심각한 우울증, 불면증, 기억력 저하, 면역력 감소, 비만, 당뇨, 고혈압 등 각종 부작용에 시달리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당연히 긴장과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을 찾는데, 역시 가장 쉬운 것은 도파민이다.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무엇인가에의 꾸준한 몰입을 통해서 도파민을 얻는 것이지만, 현대 문명의 주변에는 언제든지 쉽게 도파민을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도파민의 강렬한 느낌은 지속시간이 무척 짧기 때문에, 또다시 도파민을 얻는 행동을 반복 추구하게 된다. 도파민이 과도하게 활성화될 경우 중독 행동, 충동 조절 장애, 망상, 환각, 초조함 등 여러 부작용을 낳는다는 사실이 간과된 채로.
반면, 세로토닌은 도파민보다 더 오랫동안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행복감을 준다.
산책, 달리기, 명상, 휴식, 예술 감상, 그리고 햇볕을 쬘 때 분비되며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주게 된다.
세로토닌은 중독성도 없고, 우울증 처방약의 과다 복용을 제외한다면 자연 상태에서 과잉 분비될 가능성도 거의 없다. 설령 과도해지더라도 감각이 살짝 무뎌지는 정도일 뿐이며, 도파민이나 코르티솔 과잉처럼 극단적인 부작용을 유발하지도 않는다.
많은 현대인은 사회가 요구하는 모범답안을 쫓느라 이런 여유를 누릴 시간을 잘 갖기 어렵고,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많다 보니 햇볕조차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코르티솔 과잉으로 피폐해지고, 이를 해결하고자 도파민에 중독된 채로, 정작 세로토닌은 결핍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말처럼 아마도 유전자는 우리를 호르몬으로 조종하려 할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그 작동 원리를 알고 있으며, 의도적인 선택과 기피를 통해 스스로 호르몬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다.
좋아하고 가치 있는 무엇인가에의 꾸준한 몰입, 햇볕 아래 가벼운 산책, 차 한잔과 음악감상의 여유,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따뜻한 대화...
이렇게 사소한 순간들이야말로, 유전자를 넘어서는 능동적인 세로토닌 촉진 작용,
우리가 찾아 헤매는 진짜 행복의 열쇠가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