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인간에 대한 탐구의 역사
본 브런치북은 과학적인 관점에서 인간에 대해 탐구해 보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철학을 함께 생각해 보는 시리즈입니다.
철학을 표방하는 시리즈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글들은 온통 과학 이야기로 도배되었을 뿐, 철학자들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프롤로그와 [3]화에서 밝히기는 했지만, 이 시리즈는 본질적으로 철학을 추구하는 것이 맞다. 다만 그 방법이 다를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안 할 수는 없기에...
오늘은 [쉬어가기] 편을 활용해, 현대 문명사회에 많은 영향을 준 '서양철학'에 대해 빠르게 보고 넘어가 보자.
최대한 재미있게! 최대한 새로운 시각으로!

철학은 한마디로 세상과 사람에 대한 질문과 탐구라고 볼 수 있다. 누구나 알만 한 유명한 사람만이 철학을 했던 것은 아니다. 심지어 5살짜리 꼬마도 철학을 한다.
"엄마, 난 어떻게 태어났어?"
이렇게 묻는 5살 아이에게, "엄마와 아빠가 성적 결합을 거치면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어 착상 후 세포분열이 일어나 팔다리 등 기관이..."라고 정확하게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5살 아이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세계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아직 곱셈, 나눗셈도 배우지 못한 아이가 1차 방정식을 이해하고 다른 친구에게 알려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는 천문학도, 화학도, 의학도 마찬가지였다.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확립시키기 전까지의 사람들은, 코페르니쿠스를 제외하고는 모두 우주에 대해서 틀린 이야기만 했다. 정확히 알지를 못하니 상상할 수밖에 없었고,
'지구가 평평하지 않을까?'
'새가 해를 집어삼켰다가 뜨거우니 뱉은 게 일식 아닐까?'
이러한 잡담들을 나눈 것이 과거의 천문학이었다.
화학도 분자, 원자, 양성자, 쿼크, 글루온 같은 개념이 나오기 전까지는,
"세상의 구성 물질은 물이다."
"아니다 공기다."
"물, 불, 흙, 공기다."와 같은 이야기들을 나누곤 했다.
14세기의 흑사병은 당시 유럽인구의 절반 2천만 명을 죽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병의 정체를 몰랐기에 기도하고, 채찍으로 때리고, 마녀를 잡고, 피를 뽑으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1928년 페니실린이 나오고 나서야 겨우 흑사병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철학은 어떠할까?
마찬가지다. 시대가 흐르면서 사람들은 보다 세상과 사람을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제대로 알지 못했을 때의 이야기들과 지금의 이야기는 아무래도 다를 수밖에 없다.
서양철학의 유구한 수천 년의 역사... 기간은 무척 길지만, 몇 가지 구분으로 단순화해 볼 수 있다.
★세상과 사람은 무엇일까 끊임없이 '생각'하던 시대
★신의 뜻을 실천하며, 생각이 '사라진' 시대
★기술문명 발달, 인간 '자아도취' 시대
== 대전환점(충격적 사실): 지동설, 진화론 ==
★신도 죽었고 인간도 별게 아니라니, 길을 찾는 시대
★과학과 접목하려는 시도들
[고대 그리스 철학] - 세상과 사람은 무엇일까 끊임없이 생각하던 시대
때는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 기원전 6세기 정도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은 100년마다, 아니 10년마다 세상이 휙휙 바뀌니 얼마나 까마득한 옛날일까 하겠지만, 사실 인간의 뇌용량이라든가, 유전자, 사고 수준의 격차는 지금과 차이가 없었다. 다만 지식과 정보가 부족했을 뿐...
아테네는 문예를 숭상한 도시국가였다.
약 20~30만 명으로 추정되던 아테네 인구 중 약 10%는 남성 시민 계급으로서, 이들은 광장에 모여 직접 민주주의에 참여하고, 다양한 대화와 토론과 설득을 이어갔다.
시민은 이른바 정치적 '말발'을 세우기 위해 여러 지식들을 과외받아야 했다. 수사학과 변론 기술을 가르치며 생계를 이어가던 과외 선생님들, 그들이 바로 소피스트였다.
소피스트들도 먹고살기 위해 열심히 자기의 철학을 발전시키고 설파해야 했다.
이들은 주로 '생각'했다.
여러 사례를 관찰해 귀납적 추론을 내린다든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 연역적 추론을 내는 방식이었다.
여러 철학자들이 많지만 대표적으로 '탈레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탈레스의 직접 저술은 못 찾았지만, 후대의 언급에 따르면,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다.
당시에 아마 물처럼 고체, 액체, 기체 세 가지의 형태를 모두 쉽게 나타내는 물질은 없었을 것이다.
탈레스는 이 현상을 보고.
'잠깐? 그러고 보니 세상의 모든 물질은 고체, 액체, 기체 형태잖아? 물이 만물의 근원이 아닐까?'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탈레스는 이밖에도 피라미드의 높이를 재기 위해 막대기를 세운 후 그림자의 비율을 통해 피라미드 높이를 추론했고, 다음 번의 일식 시기를 예언하기도 했다.
주로 현상을 관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것이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었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피타고라스, 플라톤, 에피쿠로스, 히포크라테스 모두 이러한 관찰과 추론 방식을 사용했다.
물론 이들의 말은 지금에 견주어보면 틀린 이야기가 많지만, 오늘날에 와서, '생각'하기보다는 AI와 검색에 의존하는 현대인, 주어진 매뉴얼대로 살고 있는 현대인을 견주어 본다면, 오히려 그때가 가장 철학이 활발했던 황금기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는 공교롭게도 지구 반대편에서 석가모니, 공자, 맹자, 한비자 같은 위대한 사상가들이 활동하던 시기와 같다.
[중세철학] -신의 뜻을 실천하며, 생각이 사라진 시대
찬란하던 아테네는 필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하고, 평소 무예를 중시한다고 깔보던 스파르타에 결국 함락되는 운명을 맞이했다. 스파르타 역시 전쟁에서 승리하긴 했지만 국력이 쇠퇴했고, 기원전 1세기경 두 나라는 결국 로마제국에 통합되었다.
그리고 얼마 안 지나 기독교가 등장했다. 로마의 본디오빌라도 황제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처형했지만, 그 후 2~3백 년이 흐르는 시간 동안 기독교는 도시의 빈민층, 여성, 노예, 상인 계층에 꾸준히 확산되었고 결국 제국 전역에서 무시 못할 세력이 되었다.
여호와께서 사람을 만들고, 여호와의 예언자께서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것은 소외된 이들에게 큰 위안을 줄 수밖에 없었다. 노예제 사회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획기적인 사상이었다.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생각했다.
'그래 유일신 사상은 오히려 중앙집권화를 꾀하기에 유리할 수도 있어.'
'황제가 기독교의 보호자로 자리 잡으면, 종교의 권위까지 정치권력에 흡수할 수 있겠는데?'
결국 서기 313년 로마제국은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공인했고, 후대 왕은 기독교를 국교로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예수를 죽인 로마가 기독교의 본산으로 변신한 것이었다(이때부터 지금까지, 교회는 '로마' 내부 바티칸공국에 교황청을 두고 복음을 전파하고 있다.).
교회와 신학이 번성하는 동안, 안타깝게도 철학은 암흑기를 맞이했다.
사람들은 세상과 인간에 대해 '생각' 하기보다는, '교리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신의 뜻을 어떻게 실천해 나갈 것인가' 궁리했다.
안셀무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는 인간의 이성을 동원해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시도했다.
이처럼 계속될 것만 같던 중세도 결국에는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로마의 기독교 공인 후 무려 천년이 넘게 이어진 중세철학 암흑기는 아주 작은 미물의 존재 때문에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
[르네상스 철학] - 기술문명 발달, 인간 자아도취 시대
1346년은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한 지 1033년이 흐른 해였다.
제노바(현 이탈리아 지역)의 식민지 크림반도의 카파(Caffa)라는 곳에서 시작된 원인 모를 병은, 교역선 한 척이 이듬해 10월 그리스의 시칠리아섬 메시나 항구에 도착하면서 유럽 전체에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했다.
1347년부터 1351년의 5년간 유럽 인구의 절반 가까이... 무려 2천만 명이 죽어 나갔다.
이 흑사병의 참혹한 결과는 유럽 사회 전반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켰다.
먼저, 교회의 권위가 추락했다. 마녀를 잡고 피를 뽑아냈지만, 상황이 개선되기는커녕 신부님들조차 대거 죽어나갔다.
이렇게 사람들이 줄고 교회를 불신하게 되자 헌금은 감소했고, 교회는 면죄부마저 사고파는 장사꾼이 되었으며 성직자는 타락했다. 훗날 1632년 갈릴레이가 발간한 '두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는 지동설로 교회에 또 한 번의 큰 타격을 안겼다.
흑사병이 일으킨 또 다른 큰 변화는, 죽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혜택을 누렸다는 것이다. 노동력이 감소하자 노동자들의 가치가 치솟았고, 식량이 남아돌아 삶이 풍족해졌다.
식량이 남아도니 사람들은 다른 것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상업을 발달시켰고, 항해술, 별자리, 수학, 해부학 등을 발전시켰다.
교회의 추락. 그리고 이에 불구하고 더 풍족해진 사람들의 자신감과 기술문명. 이것은 철학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났다.
바로, 르네상스 인본주의. 바꿔 말하면 인간에 대한 자아도취가 생겨난 것이었다.
사람을 아주 특별하고 위대한 존재로 인식했으며, 사람의 이성, 영혼, 정신같은 개념을 추앙했다.
○ 에라스무스, 마키아벨리, 스피노자는 종교를 비판하고, 신과의 단절을 주장했다.
○ 벤담은 인간 스스로 사회를 통해 행복을 조성해야 한다고 했고 스튜어트 밀이 이어받았다.
○ 데카르트, 존 로크, 장자크 루소, 헤겔은 인간 정신의 특별함, 인간 이성의 위대함을 숭상했다.
칸트가 이맇게 제동을 걸어주기 전까지는 말이다.
"잠깐! 인간의 이성과 인식은 불완전해 보이지 않아? 사람마다 보는 시각에 따라 본질을 다르게 인식할 수도 있잖아?"
[근현대 철학] - 신도 죽었고 인간도 별게 아니라니, 길을 찾는 시대
1859년 찰스 다윈이 출간한 '종의 기원'은 하늘 높이 치솟던 인간의 자존심에 큰 타격을 입혔다.
이후의 철학자들 중 사람을 특별한 존재로 여기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신은 죽었고 인간도 생명의 진화 법칙을 따라 변화해 온 것이라면, 대체 사람의 존재는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방황하며, 길을 찾으려 했을 뿐이었다.
이 시기의 철학자들은 대체로 우울했다. 찰스 다윈이 결정적이었지만, 1차 세계대전, 공산혁명, 대공황, 2차 대전으로 이어지는 삶의 환경들은 우울함을 가중시켰다.
○ 니체는 신은 죽었다며, 인간 삶은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 알베르 카뮈는 "나약하게 교회에 기대지 말아라.",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져도 잘 버텨."라고 했다.
○ 프로이트는 인간 삶의 동기는 번식 욕구, 즉 리비도에 있다고 보았다.
○ 사르트르와 하이데거는 태어났으니 존재 자체가 의미이고, 각자 스스로의 삶을 채워나가면 된다고 했다.
○ 쇼펜하우어는 인간을 고통 아니면 권태에 시달리는 존재로 여겼다.
○ 마르크스는 공동생산 공동분배가 인간을 행복으로 이끌 것이라 주장했다.
○ 미셸푸코는 인간을 권력에 가스라이팅 당하는 존재로 보았다.
○ 칼세이건은 우주 차원에서 인간을 아주 보잘것없으면서도, 우주를 인식할 줄 아는 위대한 생명으로 인식했다.
○ 하이젠베르크는 인간이 관찰하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모른다는 불확정성을 제시했다.
[현대 철학] - 과학과 접목하려는 시도들
현대 철학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인간을 볼 때도, 더 이상 인간을 신에 종속된 나약한 혹은 선택받은 존재나, 다른 동물과 차별화된 특별함을 가진 존재로 바라보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겸허하면서도 담대하게 바라봄을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현대의 물리, 화학, 천문, 진화생물학, 진화심리학, 뇌과학, 사회학, AI윤리학 등의 학문들과 통섭되어 나타난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5분여에 걸쳐 서양철학의 큰 줄기를 함께 살펴보았고, 여러분은 이제 이해했다 :)
철학이 세상과 인간을 탐구하는 학문이라면, 대학 강단의 노교수들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세상이 물, 불, 흙, 공기, 에테르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했다.'라고 가르치는 것은 더 이상 철학이 아니다.
오히려,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창한 삼단논법(사람은 재미를 추구한다. 독자들도 사람이다. 따라서 독자들도 재미를 추구한다.)처럼 '생각'하는 능력, 그가 강조한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탐구정신이야말로 바로 철학의 본질이 될 것이다.
이 브런치북 역시 마감하는 날까지 그러한 철학을 계속 지향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