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살해는 나쁜가요? 생명진화 역사와 윤리.
본 브런치북은 인간에 대해 과학적으로 탐구해 보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철학을 함께 생각해 보는 시리즈입니다.
무려 2400년 전,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물에 빠진 아이를 보면 측은하게 여기잖아?'
'남을 위해 양보하려는 이타심도 있지.'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반성하는 마음도 있고...'
'그러고 보니 사람은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도 아네?'
"역시 사람은 착한 것 같아!"
기원전 4세기, 유라시아대륙 서쪽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세상과 사람을 탐구하는 동안, 동쪽에서는 '맹자'가 이러한 특징을 파악한 끝에, 사람은 본디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성선설'을 제시했다.
후대의 순자가 이러한 맹자의 주장을 비판하기도 했지만, 이 브런치북을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는 우리는, 순자의 말을 빌리지 않고서도 맹자의 주장을 의심해 볼 수 있다.
✔️ 어린 개체를 살리려는 것은 선함이 아니라 종족의 유지를 위한 유전자적 본능일 수 있으며,
✔️ 이타심의 발현에는 평판 욕구가 숨어있으며,
✔️ 부끄러워하는 것은 무리생활에서 배제될까 당혹해하는 감정일지 모르며,
✔️ 옳고 그름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 장소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춘추전국 시대에는 왕에게 복종하고, 여자가 남자를 섬기는 것이 '옳은' 일이었다.
그러면 순자의 주장처럼 인간은 '악하다'는 이야기인가?
살며시 순자의 판정승을 선언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는 하지만, 다른 시각으로 본다면 선하다, 악하다는 것은 어쩌면 인간이 만들어낸 기준일 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살인'은 어떨까? 예수님의 십계명에도 적혀 있고, 살인은 우리가 당연하게 '악'으로 여기는 행동인데 말이다.
그러나 자연계로 눈을 돌려 보자면, 동족 살해는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밀림의 왕 사자를 보자.
사자의 세계에서는 새로운 우두머리가 나타나면, 새 우두머리 수사자는 어린 새끼들의 냄새들을 킁킁 맡아서 자기 동맹의 유전자와 관계가 없다고 판단되면 모두... 죽인다.
암사자는 새끼를 보호하려고 숨기거나 저항하지만 힘의 차이로 인해 대부분 실패하고, 결국 새 우두머리 수사자와 다시 짝짓기 하며, 새로운 새끼들을 출산한다.
전임 우두머리의 새끼 중 성인이 된 개체라고 해서 안전한 것은 아니다. 새로운 우두머리가 나타나면 무리에서 쫓겨나야 한다.
비정하게 느껴지지만, 암사자는 새끼를 기르는 동안 발정기가 오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우두머리 수사자는 암사자와 교미하기 위해서 어린 새끼를 죽여버리는 것이다.
성적 본능에 따른 행동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잠재적 위협이 될 도전자를 제거했고,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혈연 무리에서 쫓겨난 전임 우두머리의 성인 새끼들은 밖에서 다른 무리들과 교배하며 사자 전체에 풍부한 유전적 다양성을 안겼다.
이처럼 수사자의 영아살해 행위는 사자의 유전자 입장에서는 '번식'과 '유전적 다양성 확보'가 이루어지는 자연계 안에서의 본능일 뿐, 이를 두고 '나쁘다', '악하다'라고 판단하는 것은 우리의 선입견일 것이다.
(이런 영아살해 행위는 사자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돌고래, 고릴라도 그렇다, 인간과 유전자 98.8%가 일치하는 침팬지의 무리간 서열간 동족 살해는 훨씬 더 일상적이고 치밀하다.)
다른 이유의 살해 케이스도 있다.
독수리 둥지의 여러 알 중에서 먼저 깨어난 새끼는, 나중에 깨어난 힘없는 새끼들을 모두 물어 죽이고, 엄마 독수리는 이를 가만히 지켜본다.
토끼의 경우에는 독수리와 달리, 엄마 토끼가 가만히 지켜보지 않고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야생에서의 토끼는 한 번에 4~10마리의 새끼를 출산하는데, 엄마 토끼는 힘이 약한 새끼 한두 마리를 물어서... 죽이고, 먹는다.
죽은 새끼의 냄새가 퍼지면 포식자들이 다가올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채식을 하는 토끼가 유일하게 육식을 하는 순간이다.
한정적 자원의 효율적 분배를 위해 약한 새끼를 죽이는 이 토끼는 나쁜 토끼인가?
수오리들의 번식 경쟁과 자주 목격되는 암오리 살해는 자연계의 비정함을 보여주지만, 수오리들을 나쁘다고 비난하기는 어렵다.
사람은 어떨까?
동물 세계에서의 동족 살해는 주로 먹이가 모자란 열악한 환경에서의 생존 경쟁과, 번식 경쟁 때문에 벌어진다.
그렇다면 과거 인간의 먼 조상 역시도 무리끼리 자원을 다투느라, 무리 안에서 서열을 다투느라, 살해가 일어나진 않았을까?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45만 년 전의 유골에서 살해 흔적이 보이는 것도 있고, 침팬지의 행동으로 비교 추정하기도 하지만,
비교적 최근, 영국인들이 아메리카 토착인 2천만명을 학살한 것이나, 태종 이방원이 안정적인 서열 유지를 위해서 모든 잠재적 경쟁자들을 죽인 사례 등만 떠올려 봐도 쉽게 추정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인간의 동족살해는 언제까지를 자연적인 질서이고, 어느 시점부터 '악'이라고 구분할 수 있을까?
700만 년 전 인류와 침팬지의 공통 조상 한 무리가 무화과나무 군락을 차지하기 위해 다른 무리의 개체들을 살육한 것도 '악'이었을까?
안타깝게도 현대 인류의 살인 동기 역시... 크게 다르지는 않다.
대부분의 살인 사건은 주로 자원(돈), 치정, 불명예(생존과 번식에 불리) 때문에 일어난다.
사이코패스들의 범죄 역시 진화심리학에서는 생존, 번식 경쟁에서 밀려난 유전자들의 자포자기성 극단적 행동으로 보기도 한다.
그리고 이 살인 행위는 사회 시스템 속에서 공식적으로 제도화된다.
국가 간의 죽고 죽이는 전쟁은 자원 확보를 위한 생존 경쟁의 일환이며, 나치의 홀로코스트는 유전자의 번식 우위를 위한 행동이었으며, 사형 제도는 특정 유전자를 제거하기 위한 장치일 수 있다.
전쟁터에 뛰어들어 적군을 향해 총을 겨누는 병사, 교수형 버튼을 누르는 교도관은 '살인'을 하지만 이를 누구도 '악'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동족 살해'의 행위는 어떤 절대적인 윤리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는 무리에 도움이 되는 살인을 '선' 내지 자연적인 것,
그러나 무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살인을 '악'으로 인식하는 것은 아닐까?
더 나아가, 지구 생태계 윤리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어떨까?
점점 열악해지는 환경으로 개체수가 줄고 있는 북극곰의 입장에서는, 동식물 서식지를 파괴하고, 탄소 배출을 일삼으며, 재미 삼아 다른 동물을 사냥하는 인간의 개체수가 줄어드는 것이 '선'이지 않을까?
'인류에의 공헌과 봉사', '세계시민으로서의 인류애'... 북극곰이 듣는다면 최악의 캐치프레이즈로 들릴 수 있다.
2400년 전 소크라테스, 칸트, 맹자는 절대적인 도덕과 이상을 추구해야 한다고 했다.
시간이 흐른 현대라고 해도 별반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현대는 철학자들 대신 학교와 미디어와 교양 도서들과 SNS가 역할을 대체한다.
이들은 끊임없이 '도덕적일 것', '다른 사람을 도울 것', '착하게 살 것', '의미 있는 삶', '성실한 태도', '시간을 낭비하지 말 것', '성장하고 자아실현 할 것' 등,
무엇인가 세상의 절대적인 윤리가 존재하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인식시키고, 이를 따르지 않으면 잘못된 사람인 것처럼 '윤리적 강박'을 주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좋은 사람' 코스프레를 하느라 숨이 찬다.
우리는 좋은 자식이 되기 위해 매년 돌아가신 조상의 위패를 모시고 정성스럽게 규칙에 맞게 음식을 차려 제사를 지낸다. 그렇다면 제사를 차리지 않고 고인의 사진을 추억하거나 간단히 예배만 드리는 미국, 유럽인들은 나쁜 자식인가?
오랜만에 만나 반갑게 포옹하고 키스하지 않는 한국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일까?
극단적인 예시로 동족 살해의 예를 들기는 했지만, 만약 무리에 도움 되는 행위를 '선'이라고 정의한다면, 이것은 이미 인간이 정해놓은 바 있다.
바로 각국의 헌법과 형법과 민법에 법률로써 정해 놓은 규칙들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시대의 변화나 필요에 따라 규칙을 조금씩 바꿔나가기도 한다.
법은 최소한의 윤리라고 하면서, 왜 그 최소한의 윤리마저 계속 바뀌는 것일까?
절대적인 윤리라는 것이 어쩌면 모호하고 허상이기 때문은 아닐까?
사람의 유전자 역시 '생존'과 '번식'을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서는 좀 더 본능적이어도 괜찮다.
내가 속한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고 타인에게 상처와 불편을 주지 않을 정도의 윤리면 충분하다.
그리고 그것은 매번 바뀌는 '법'을 잘 따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선'할 수 있다(이에 따르면 살인은 '악'이 맞다. 법에 써있으니까).
'법'을 넘어선 절대 이상과 절대 윤리의 강요. 어떤 존재도 그런 강요를 할 권한은 가지고 있지 않다.
북극곰이라면, 인간 무리에 도움을 주는 사람의 행동조차 '악'으로 느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애초, 선, 악, 윤리,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라는 것은 절대적 성질의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제도 속에서 기준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개념일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