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 고도 지능의 산물
본 브런치북은 과학적인 관점에서 인간에 대해 탐구해 보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철학을 함께 생각해 보는 시리즈입니다.
누워있기만 하던 아기가 스스로 뒤집고 엎드렸을 때,
기어 다니던 아기가 뒤뚱뒤뚱 첫걸음마를 뗄 때,
그리고 '엄마' 하고 부르며 조금씩 말을 시작할 때...
엄마와 아빠는 물론 할머니 할아버지도 박수를 치며 환희에 찬다. 무척이나 사랑스럽고 대견하지 않을 수 없다.
이윽고 초보적 수준의 말을 구사하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실제로는 없는 일을 지어서 말하거나, 혼날까 봐 "내가 한 거 아니야.'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 엄마, 아빠는 화들짝 놀라며 아이에게 말한다.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 거짓말은 나쁜 거야."
허지만 엄마, 아빠의 가르침과는 별개로,
거짓말은 인간의 상상 능력과, 언어 구사 능력, 그리고 이기심(또는 사회적 이타심)이 결합된 고도의 결과물이다.
사람의 뇌는 오감을 통해 인지된 상황에 반응하는 것을 뛰어넘어, 눈을 감고도 듣지 않고도 머릿속에서 상황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거짓말을 하기 위해서는, 엄마가 내 말을 믿을 것이라는 '예측력', 이야기를 지어내는 '상상력', 자신의 행동과 거짓말을 일치시키는 '기억력', 어떻게 말할지에 대한 '기획력', 자신을 보호하려는 '자존감', 체계적인 '언어능력' 등 복합적인 사고의 발달이 필연적이다.
(물론 훨씬 수가 높은 엄마, 아빠에 의해 아이의 거짓말은 무력화되고 금방 들통나고 만다. 혼나고 난 아이의 뇌는 어떻게 생각할까? "그래. 다음번에는 좀 더 참신하고 치밀하게 준비해야겠어!")
어린이들 말고 성인 중에서도, 풍부한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지어내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그 사람들을 보통 이렇게 부른다. 소설가, 영화감독, 웹툰작가, 드라마 작가, 뮤지컬 창작자...
까마귀는 자신의 먹이를 다른 까마귀에게 들키면, 그 자리에서 몰래 숨기는 척하고는 실제로는 다른 곳에 숨긴다.
먹이를 발견할 때면, 천적이 왔다는 거짓 경보음을 내서 다른 까마귀를 쫓아낸 후 유유히 혼자 먹기도 한다.
고릴라, 침팬지의 더욱 복잡한 속임수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들은 뇌가 사람보다 조금 덜 체계적이고, 언어 능력이 발달하지 못했기에 거짓'말'을 못하는 것일 뿐, 속임수를 쓰는 것 자체는 무척 자연적인 현상이다. 뇌가 발달한 개체일수록 속임수의 정교함도 더 높아진다.
사람도 어릴 때부터 거짓말을 하고, 심지어는 거짓 상상을 문예 직업으로 가지는 사람도 있으며, 자연에서도 속이는 행위는 흔한데,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거짓말을 '나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첫째, 거짓말을 의심하고 싫어해서 살아남은 유전자의 축적 때문이다. 모략에 쉽게 속아 넘어간 개체들은 먹이 부족 등으로 살아남지 못했고, 유전자가 후대로 이어지지 못했다. 사람이 거짓말하는 능력이 발달하자, 이에 대응하는 능력 역시 공진화했다.
둘째, 거짓말을 할 경우 순간적으로는 성공할 수 있어도, 반복된 거짓말은 더 큰 거짓말을 낳게 되고 결국은 발각되면서 사람들에게 신뢰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협동생활에 불리하다.
셋째, 지배계급의 원활한 통치에 있어서, 사람들의 거짓말이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거짓말은 '나쁜 것'이라는 신화가 사람들에게 퍼지는 것이 필요했다.
이처럼 '거짓말'은 자연에서의 현상이자, 사람의 지능과 언어가 고도로 발달하면서 창조할 수 있게 된 상상력의 산물일 뿐, 여기에 어떤 절대적인 옳고, 그름의 가치를 부여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이 거짓말의 행위가 '공동체에 이익이 되지 않음.'으로 인해서 사람들이 '나쁘다'라고 문화 규범화 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거짓말은 현대에서도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일부 전현직 정치인들이 밥 먹듯이 하는 거짓말, 보이스피싱, 사이비종교, 사기꾼 등, 정신을 바싹 차리지 않으면 코 베어가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이런 거짓말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남을 속이는 거짓말이다. 동물의 세계에서 보이는 속임수와 같다.
자기 자신에게 하는 거짓말도 있다. 때로는 상황을 유리하게 해석하거나, 의지를 되뇌게 하는 효과도 있지만, 스스로를 속이는 자기기만이 심해지기도 한다. 제대로 현실을 파악하지 못한 채 스스로에게 불이익을 초래할 수 있다.
반면, 남을 위한 거짓말도 있다.
소설가와 영화감독의 상상력은 독자, 관객에게 감동, 재미, 교훈, 정보를 주기 위해서 사용하는 도구다.
응급실 의사는 사망 판정이 난 환자의 유가족에게 "사망했으니 오세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위독하다.'라고 돌려 말한다.
비만으로 고민하는 친구에게 "넌 뚱뚱해서 보기 싫어."라고 말하지 않는다.
타인을 배려하는 거짓말로, 동물 세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인간만의 고유 영역이다.
현대에서 자기의 이익을 위해 남을 속이는 거짓말도 문제지만,
'진실'을 말한다는 솔직함의 외피를 둘러입고, 팩트폭격을 가장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 역시 성숙하다고 볼 수는 없다.
또, 솔직함을 강요하며 남의 치부를 들추려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솔직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무엇인가 대답해야 한다고 초조하게 느낄 수 있지만, 그럴 땐 충분히 노코멘트 해도 괜찮다.
현대 공동체에서의 성숙함은 '거짓말은 무조건 나쁘다.'라고 규정하거나, '무조건적인 솔직함'이 아니다. 거짓말의 자연스러움을 이해하고, 상황에 맞게 적절히 방어, 대처, 이용하는 것이 오히려 더 성숙함의 지표가 될 수 있다.
✔️ 나에게 손해가 되는 거짓말을 구분하고, 방어해 낼 수 있는 성숙함
✔️ 남에게 피해를 입히는 거짓말은 결국 손해로 돌아옴을 인식
✔️ 타인을 배려하기 위해 적절히 돌려 말할 줄 아는 사회 지능
✔️ 상상력을 좋은 방향으로 승화시켜 창작의 동력으로 이어나가는 것
거짓말을 한 피노키오에게 줘야 했던 것은 죄책감이 아니라, 어쩌면 이러한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야. 하지만,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거짓말은 결국 나의 손해로 돌아오게 돼."
거짓말은 죄가 아니라 사람만의 고유한 능력에 가까울 것이다. 다만 그 능력을 다른 사람을 피해 입히며 속이는 데 쓸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쓸지는 우리가 선택할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