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를 깨우는 최면 주문
본 브런치북은 과학적인 관점에서 인간에 대해 탐구해 보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철학을 함께 생각해 보는 시리즈입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혜원(배우 김태리)은 서울 생활에 지친 끝에, 고향 시골로 돌아와 사계절을 보낸다. 아름다운 자연의 영상과 신선한 식재료들이 빚어낸 맛깔난 음식들은 혜원이가 느끼는 힐링의 감정을 우리로 하여금 고스란히 느끼게 한다.
혜원뿐만이 아니라, 도시의 직장생활에 지친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시골에 전원주택을 짓고 자연 속에서 텃밭을 일구며 살아가는 삶을 한 번씩 생각해 보기도 한다.
당장 시골에 살 수는 없지만, 휴가를 통해, 주말을 통해 우리는 자연으로 나아간다. 답답한 도시 생활을 잠시 떠나 숲의 나무 향기들을 듬뿍 느끼고 오는 것만으로도 삶의 활력소가 된다.
화가들은 초록 산과 나무가 멋들어진 풍경화를 그려내 왔고, 사진작가들도 자연을 렌즈에 담아내곤 한다.
우리는 왜 자연을 좋아하는 것일까? 인체가 나뭇잎이 내뿜는 산소를 필요로 하는 생리적 욕구 때문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지구 어디를 가나 도시의 공기 중 산소 농도와 숲의 산소 농도는 20.9% 수준에서 거의 차이가 없다.
아마도 그것은 과거로부터의 기원일 가능성이 높다.
아주 먼 옛날, 아프리카 대륙이 융기하고 기후는 추워지자, 숲은 점점 줄어들고 먹이 경쟁은 극심해졌다.
힘센 무리들만이 숲에서 득세했고, 그렇지 않은 개체들은 자의 반, 타의 반 초원으로 쫓겨나야 했다.
그러나 초원의 현실은 쉽지 않았다. 이미 얼룩말들과 코끼리들이 풀을 다 뜯어먹어 식물이 별로 남아있지 않았고, 뿌리를 겨우 캐 먹거나 개미를 잡아먹었지만 별로 배가 차지는 않았다.
결국 작은 동물을 사냥하거나, 아니면 원래 숲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숲을 찾아야 했다.
누런 황무지를 정처 없이 몇 날 며칠을 걸었던 그때, 저 멀리 시야에 초록색 나무 군락이 들어왔다.
열매가 열렸는지 다른 개체들이 이미 차지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초록색 나무 군락을 발견한 것 자체가 벌써 생명줄을 찾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숲의 피톤치드 냄새, 초록색 빛깔은 우리에게 행복한 느낌을 주는 유전자의 고향이다.
숲은 먹이가 있는 곳이자, 맹수로부터의 피난처이자, 여름의 그늘이자, 동료들과 함께 있는 곳이었다.
회색빛 보도블록과 아스팔트 사이에 이어 펼쳐진 초록빛 가로수들만 봐도 조금은 싱그러운 마음이 드는 것, 겨울철 잎이 다 떨어진 나무들의 풍경은 쓸쓸한 마음을 주는 것, 이것에는 고대의 고향을 그리워하는 유전자의 영향이 숨어있다.
개천과 강 역시 그러하다. 물은 식량을 획득할 수 있는 창고였고, 갈증을 해소하게 해 주었으며, 몸을 청결하게 하고 휴식하게 해 줄 수 있는 장소였다.
한강이 아름답게 보이고,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가 좀 더 비싼 것, 어항 속에 물을 담고 유유히 헤엄치는 금붕어를 바라보는 것은, 생존하기에 유리한 강을 좋아했던 유전자의 특성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전자가 좋아하는 대로 도시를 떠나 당장 시골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돈을 더 벌어야 하고, 아이가 있다면 아이를 키워야 하며, 노후 준비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그중 하나는 내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침실 한 군데의 벽지를 녹색으로 바꾸는 것인데, 녹색의 인테리어는 마치 숲 속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줄 수 있다.
학교 칠판이 검정이나, 파랑이 아니고 녹색인 이유도 심리적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심지어는 집중력도 높여준다. 우리의 조상이 초록 나무속에서 과일을 찾느라 얼마나 눈이 반짝반짝했을지 상상해 보자.).
녹색 풍경화가 그려진 액자를 걸어두거나, 직접적으로 화분에 식물을 키우며 피톤치드를 맡는 것은 우리의 세로토닌을 증가시키고 코르티솔을 감소시키는데 더욱 큰 도움이 된다.
미국의 심리학자 폴 에크만이 발견한 안면 피드백 이론(Facial Feedback Theory)은 유명한 사례다.
연필 한 자루를 '이'로 물면 웃는 표정이 나오고, 입술로 물면 뾰로통한 표정이 나오게 된다. 각각의 상태를 한 실험자들에게 재미있는 영상을 보여주고 어땠는지 피드백을 받았더니, '이'로 펜을 문 채 웃는 표정으로 영상을 봤던 실험자들은 훨씬 더 재미있다는 답변을 했다. 일부러 웃는 표정을 했을 때 실제로 코르티솔 수치가 감소한 것이 후속 연구에서도 확인되었다.
언짢거나 속상한 일이 생겼을 때 당장 입꼬리를 의식적으로 올려보자. 그래도 마음이 안 풀리면 하얀 이를 드러내고 더 크게 웃는 표정을 지어보고, 그래도 안되면 그 표정을 한 자신을 거울로 바라보자. 확실히 마음이 한결 좋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깨를 펴고 가슴을 내밀면 자신감이 생기고, 두려움이나 화를 느꼈을 때 일부러 심호흡을 하면 마음이 가다듬어지는 것도, 자신의 몸을 긍정적으로 속이는 예시 중의 하나이다(쓸쓸하고 유대감이 필요할 때 짝과 함께 있다고 자신을 속이는 행동도 도움이 된다.).
그리고 가장 효과적인 거짓말이 또 하나 있다.
고대 인류는 사냥에 성공했을 때도 즐거운 호르몬들이 나왔지만, 사냥을 하며 창을 들고 뛰어가는 과정에서도 즐거운 호르몬들이 분비되었다.
이것이 바로 현대로 와서는 달리는 사람들의 '러너스하이(Runner's high)'이며, 일상생활을 통해서는 '몰입'을 할 때 나타난다.
물론 자기가 좋아하고 몰입할 수 있는 취미를 일로 가진 사람은 드물고, 생활 전선에서 매일 바쁘지만, 일하지 않는 틈을 내어 무엇인가 좋아하는 것을 취미로 삼아 오랜 기간 동안 몰입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된다. 뇌는 사냥 등 생존을 위한 몰입 활동을 하고 있다고 속게 된다.
만약 생업 때문에 여의치 않다면, 개인(또는 가계) 자산, 부채, 순자산 목록의 재무상태표를 만들어, 매월 말일 순자산을 비교해 보며 캐릭터 성장 게임처럼 생업을 운영해 나가 보는 것도 좋은 몰입이 될 것이다.
이처럼, 긍정적인 마음은 의지만으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몸을 움직여 유산소운동을 시키고, 환경을 바꿔 우리의 고향과 같은 착시효과를 주고, 의식적으로 좋은 표정을 짓는 연습, 그리고 무엇인가에의 몰입이 호르몬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좋게 만드는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마음만으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몸이 먼저 마음을 움직임으로써, 그 마음이 다시 몸을 움직이는 선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
우리의 마음은 속임수로도 행복해질 수 있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