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계발의 과학적 난제
본 브런치북은 과학적 관점에서 인간에 대해 탐구해 보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철학을 함께 생각해 보는 시리즈입니다.
지난 화 '스스로에게 행복한 거짓말 하기'편을 쓰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거짓말하는 사람이 나일까? 속는 사람이 나일까?
녹색 벽지로 바꾸고 속이는 사람이 나일까? 녹색을 보고 평온한 마음을 느끼는 것이 나일까?
자아의 개념은 이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아 보인다.
중학생이었거나 고등학생 시절,
도덕 책 한 귀퉁이 속, 인간의 욕구를 설명한 피라미드 그림이 떠오른다.
'욕구에는 각 단계가 있다. 위층으로 갈수록 고차원적인 욕구다.'라고 선생님이 설명해 주셨던 어렴풋한 기억.
20세기 초 미국 심리학자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설로, 1단계 생리적 욕구가 충족되어야 2단계, 3단계식으로 욕구를 갈망하게 된다는 가설이다.
여기서 가장 높은 욕구는 '자아실현'으로,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수없이 많이 들어왔다.
아리스토텔레스도, 공자, 주자, 율곡 이이, 안창호 선생도, 엄마 아빠도, 학교 선생님도 늘 자아실현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바 있다.
그러면 보다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
일단 '자아'라는 개념은 무엇일지 생각해 보자.
한마디로 '나'에 대안 정의라고 할 수 있는데, 자아라는 것은,
(1) 외부와 분리된 신체적인 '나'
(2) 살면서 축적된 기억의 총합
(3) 나의 생각, 성격, 기호, 태도, 가치관, 사회성, 지능, 감수성, 상상력 등 무형적 특징.
정도로 정의해 볼 수 있다.
그런데, 가만...
이렇게 자아라는 개념을 정리해 놓고 보니, 자아실현이라는 말속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어 보인다.
똑같은 사람이라도 5살과 50살의 신체는 몸의 크기와 능력이 달라진다. 세포가 완전히 바뀌고, 심지어 손가락을 다쳐서 못쓰게 되는 사람도 간혹 생긴다. 같은 신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기억 역시, 사람은 과거의 기억을 잊어버리기도 하고, 새로운 기억을 축적한다.
스무 살의 기억과 예순 살의 기억은 크게 다르고, 성격, 기호 등 무형적 특징도 마찬가지로 변한다.
그렇다면 자아라는 것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닌데, 정확하게 '이것이다'라고 규정할 수 없지 않을까? 규정이 되어야 그것을 실현할 텐데 말이다.
자아면 자아일 뿐인데, 그것을 실현해야 한다고 대체 누가 정한 것일까?
아리스토텔레스도 그랬지만, 예수님도 달란트를 말씀하셨고, 현대의 학교, 회사, 미디어 역시도 자아실현, 내지는 자기 계발을 무척이나 강조하고 있다. 서점에도, 유투브에도 자기 계발에 대한 콘텐츠는 홍수를 이룬다.
그러나 왜 자아를 꼭 실현해야 하는지, 왜 자기를 꼭 계발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아마도 잘 되라고 하는 이야기겠지만, 왜 꼭 그것이 자아실현의 방식이어야 할까?
1만 년 전 과일 따고 사냥하던 인류도 자아실현 개념이 있었을까?
사람은 누구나 유전자가 다르기에 조금씩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다. 후각이 뛰어나게 태어난 사람은 과거 사냥감과 맹수의 흔적을 느끼고 상한 음식을 가려내는데 결정적 능력을 발휘했는데, 현대사회에서는 써먹고 활용할 데가 별로 없다. 겨우 향수 제조, 요리, 와인 등 소수 분야에서 쓰일 뿐이다.
어쩌면 적성에 안 맞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는 훨씬 더 많지 않을까?
15살에 주산(주판) 실력이 좋아, 이 능력을 개발하려고 했던 김주판 학생은 5년에 걸친 주산 수련 끝에 세계 최고가 되었다.
하지만 15살의 미성년자 김주판 학생과 20살의 김주판씨 사이에는 자아(신체, 기억, 성격)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심지어, 손에 큰 부상을 당해서 손가락을 잘 움직일 수 없었다. 신체적 자아가 변한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계산기와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주산은 퇴물이 되었다는 것...
부분적으로 인간보다 뛰어난 AI, 로봇 등 첨단 기술이 인간을 점점 대체하고 있다.
이렇듯, 인간의 고차원적 욕구나,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도덕 개념으로 자아실현을 바라보기에는 추상적일 뿐만 아니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거가 떨어지고, 실제로 실현하기에도 쉽지 않아 보인다.
예를 들면 이런 해석은 어떨까? '자아실현은 고차원적 욕구나 도덕이 아니라, 그냥 사회적 본능이다.'
좀 더 적나라하게 세속적으로 표현하자면,
'내가 가진 재능을 연마하고 공동체에 뽐내서, 사회적 평판과 대우를 얻고, 짝을 찾는데 유리해지려는 욕구'.
매슬로우의 이론은 거꾸로 정의되어야 할 수 있다.
3단계 사랑과 소속감의 욕구, 4단계 존경받고자 하는 욕구, 5단계 자아실현의 욕구, 이 모두는
2단계(생존)와 1단계(번식)의 욕구를 위한 것이라고.
공작새 수컷은 다른 동물과 비교해 무척이나 크고 화려한 날개를 가지고 있다. 수컷마다 깃털 무늬가 조금씩 다른 '자아'적 특성을 가지고 있고, 이를 활짝 펼쳐 미세하게 진동시킴으로써 '실현'한다.
암컷을 유혹할 때 그렇다.
위대한 예술가들이 사랑에 빠진 시기 대작들을 남겼던 것도, 남자들이 연애할 때는 열심히 운동하고, 여행 다니며 SNS 활동을 하고, 악기 연주를 연습하다가, 결혼 후 귀찮다고 중단해 버리는 것에도 비슷한 본능이 숨어있을지 모른다(남편이 안 하던 근력운동을 갑자기 하면 한 번쯤 의심을...).
사회는 이 본능을 '자아실현'이라는 말로 미덕처럼 가르쳐 왔다.
현대인들은 누구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최대한의 여건을 활용해, 속해 있는 사회에서 좋은 평판을 받고 싶어 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또 창작활동이나 과학탐구 스포츠 등 어떤 분야에 깊게 몰입하게 될 때, 사회 평판과는 별개로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그것이 무의식 속 생존 본능인지 번식 본능인지는 크게 중요치 않다.
중요한 문제는, 그렇지 않아도 이미 본능적으로 애쓰고 있는 사람들에게, 사회는 끊임없이 자아실현과 자기 계발을 하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굳이 '자아실현', '자기 계발'이라는 말에 도덕적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는 현재의 나로서 증명할 필요 없이 존재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자아는 과거부터 고정되어 있는 것도, 굳이 실현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자아실현이라는 말은 사회가 만들어 낸 포장이자, 외부의 기준에 맞추어 나를 증명하려는 욕망일 가능성이 높다.
꽂히는 일에 열망을 가지고 매진하는 것과,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춰 억지로 자아실현 스트레스를 받는 것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자아실현과는 또 다른 삶의 방식은 어떨까?
자아의 실현은 본능에 열심히 맡기고, 자아를 존중해 보는 것.
자존감의 진짜 정체를 다음 편에서 함께 탐구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