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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와 접이식 키보드

by 상아

금요일 저녁 6시. 검은 구두, 소매에 구김이 간 셔츠, 무릎길이의 치마를 입은 여자가 사각 박스를 들고 버스에 오른다. 소리 없이 부산스러운 버스에서 고개를 돌리는 수고를 하는 일은 많지 않다. 잔액 부족을 알리는 음성이 연속 2번 이상 반복될 때, 고된 하루를 짐작케 하는 기사의 욕지거리가 들려올 때 그리고 보기에도 번거로운 짐을 들고 있을 때. 저 사람은 어딜 가는 걸까 3초 정도를 할애해 생각한다. 정리해고 당한 사람처럼 출근복에 상자에 짐을 가득 넣은 아까 그 여자는 이윽고 가방에서 길고 흰 무언가를 꺼내 무릎에 놓았다. 가만 보니 접이식 키보드다. 자꾸만 흘러내리는 치마 트임 사이로 보이는 무릎 위에 키보드와 휴대폰을 올리고 자판 위로 느릿한 손놀림이 지나간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라도 글을 써야 하는 직업이려나. 이러나저러나 금요일 저녁 시내에서 떨어진 외곽으로 나가는 버스는 나름 한산하다. 쏟아지는 냉한 에어컨 바람 통풍구를 상반신을 추켜 세워 닫은 후, 할 일이 없던 나는 한 번 더 훑어본다.

탁 타닥 탁-

왠지 글을 쓰고 싶어진다.

토요일을 앞둔 사람들이 마지막 퇴근길에 모여드는 지금을 기록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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