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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와이프 몸무게가 왜 궁금해?

by 일용직 큐레이터

2주간 일할 공장을 찾았다.

자동차 외관을 만드는 공장이다.

주급이 70만 원이니, 2주 일하면 140만 원을 벌 수 있다.


2주에 140만 원이면 정말 큰돈이다.

꾸준히 일할 수 있으니 더 좋다.


셔틀버스를 타고 도착하니 대기장소에서 기다리란다.

대기장소는 야외에 있는 흡연장이었다.

나를 비롯해 3명이 뻘쭘하게 앉아있었다.


담당자가 찾아와 우리를 인솔한다.

너른 강당에 들어서, 각자 테이블에 앉힌다.

이력서를 작성하라며 종이 여러 장을 나눠줬다.


1. 키, 몸무게

→ 작업복 사이즈 때문에 그러려니 했다.


2. 직전 직장 연봉, 보너스(%)

→ 희망 연봉에 맞춰주기 위한 배려일까?


3. 와이프 키, 몸무게

→ 여기서부터 뭔가 이상하다 싶었다. 남의 와이프 신체 사이즈는 왜 묻는지...


4. 가족관계, 가족 연봉+보너스(%)

→ 요즘 시대에 이걸 묻는 게 말이 되나? 싶었다.


말도 안 되는 문항은 공란으로 비워두었다.



갑자기 안전모를 쓴 젊은 직원이 들어온다.

신입 직원을 위해 안전 교육을 실시한단다.

알바가 아닌 직원이라 했다.


난 알바로 지원한 건데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

안전 교육 후 다른 지원자에게 물었다.


이거 알바 아니에요?

잘 모르겠다며 적성에 맞으면 오래 일할 수 있는 곳이라 했다.

담당자는 우리를 보고 말했다.

정식으로 채용되었으니 앞으로 열심히 하라고 했다.


알바 어플을 보고 문자로 이름, 나이만 보냈는데

다음날 취업이 됐다.

그토록 간절했던 재취업인데... 뭔가 이상했다.


개인 사물함을 받고 작업복, 작업화 사이즈를 적어냈다.

2~3일 내로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다만 관두면 급여에서 깐단다.


개인 작업화가 있으니 안 주셔도 된다고 했다.


담당자가 우리를 이끌고 공장 내부로 향했다.

엄청난 굉음이 들렸다.

다들 귀마개, 이어폰을 끼고 일하고 있다.


너무 더운지 반팔을 입고 있다.

여자는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건장한 남자들이 나사를 조이고, 부품을 운반했다.


로봇팔지잉~지잉 움직이며 자동차 외관을 조립한다.

멀지 않은 곳에서 담배를 피우며 쉬는 직원이 보였다.

담배를 공장 내부에서 핀다.

그것도 작업공간 바로 옆에서 말이다.


담당자는 우리를 공장 사무실로 안내하고 떠났다.

조장이라 불리는 직원이 우리 앞에서 섰다.


하루에도 몇 명씩 다치는 곳이니 조심하세요

안전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난단다.

자동차 외관을 만들고 조립하는데

날카로운 부분이 많다고 했다.


베이고 찔리는 사고가 많단다.

어제도 직원 한 명이 베여 병원에 실려갔다고 했다.


무서웠지만 고마웠다.

사탕발림 소리를 안 해 다행이다.


하루 일하고 그만두는 사람이 대부분이에요.
안 맞으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솔직해서 좋다.

이것저것 개인사를 물은 후 공장 견학을 시켜줬다.


보기만 해도 위험하다.

지게차가 바삐 다닌다.

무거운 자동차 외관을 손으로 나른다.


살짝만 삐끗해도 팔이 베이고

다리가 찔릴 수 있다.

이래서 주급 70만 원인가 보다.


점심이 가까워 올 때 즈음

일거리를 받았다.

자동차 외관에 나사를 조이는 일이다.


로봇기계 앞에 자동차 외관을 딱 맞게 끼우면 된다.

일반 자동차, 친환경 자동차를 구분해야 한다.

종류에 따라 조립하는 방식이 다르다.


10분 정도 설명 듣고 투입됐다.

복잡했지만 눈에 익혀둔 순서를 그대로 따랐다.


처음인데 잘하시네요~

칭찬을 받으니 힘이 났다.

1시간 내내 조립 후 점심을 먹었다.

규모가 있는 공장인데 식사는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요리 솜씨라고 1도 없는 분이 만든게 분명했다.

반찬도 풀떼기 천지다.


식사 후 사물함 앞에 누워 쉬었다.


형님이라고 부를게요. ㅇㅇ이라고 불러주세요.

같이 입사한 동기가 친근하게 다가온다.

공장일을 찾으려 근처로 이사까지 왔단다.

열의가 넘치는 친구다.



식사 후 다시 조립 업무에 투입됐다.

옆에서 일하던 직원이 바뀌었다.


아이씨, 그거 일반차 아니고 친환경차라니까!

처음 봤는데 나에게 아이씨라고 했다.


오전에 설명 못 들었어요? 무슨 생각으로 일하는 거예요?


설명은 들었지만 처음이라 익숙지 않다고 했다.

다시 정신 차리고 조립을 했다.


오전에 만났던 조장은 나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다시 그 직원이 나에게 다가와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알려준다.

그대로 따라 했다.


아~진짜 그게 아니고 이거라니까! 이해 못 해?


이제는 반말을 섞는다.

너무 화가 나 그 직원을 노려봤다.

내 눈을 피한다.


쉬는 시간이 됐다.

10분 휴식인데 5분만 쉬고 오란다.


그 직원은 담배를 피우며 계속 나를 노려본다.

내가 뭘 잘못했나 싶었다.

오늘 처음 왔는데 이 정도로 욕을 먹는 게 맞나 싶었다.


아마 매일 바뀌는 신입 때문에 짜증이 났나 보다.

허나 그건 그쪽 사정이다.

내가 의도한 게 아닌데 왜 짜증을 부리는지 알 수 없었다.


한번 말하면 제대로 들으세요!


처음이라 잘 모릅니다. 왜 그렇게 말하시나요?

라고 응수하니 내게 말을 걸지 않는다.

옆에서 보던 다른 직원이 그 직원과 자리를 바꿨다.


라인 조장이 다가와 등을 토닥여 준다.

처음인데 이 정도면 잘하고 있다.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하라고 했다.


오늘 연장근무 할 수 있어요?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왕 온 거 돈은 벌어야 한다.


저녁 식사는 만둣국 한 사발이다.

왕만두 두 개가 들어있는데 차게 식어 있었다.

식사 후 다른 라인에 배정받았다.


입사 동기 청년과 프레스 라인으로 향했다.

팍! 팍! 소리를 내며 자동차 외관을 찍어낸다.


살집이 있는 직원이 다가와 친절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다.

이래서 이렇고, 저래서 저렇다.


귀에 쏙쏙 들어왔다.

처음 듣는 용어지만 주변 정황으로 대충 정리가 된다.


프레스 담당 직원을 뽑고 있는데 생각 있어요?


마침 티오가 났다고 했다.

일은 힘들지만 몇 개월 만에 정직원이 될 수도 있다.

연장 근무가 많고 휴일 출근도 잦다.


남들 300 벌 때 프레스는 500 이상 번다고 했다.

단숨에 고연봉자가 될 수 있으니 고민해 보란다.


난 오늘 알바인 줄 알고 왔다.

면접 없이 취업이 됐고, 고연봉 자리까지 제안받았다.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친절하게 음료수까지 따라준다.

동기 청년은 프레스 라인이 탐나는 눈치다.

난 욕심 없으니 네가 하렴... 속으로 말했다.



퇴근 후 셔틀버스에 올라 문자를 보냈다.


안전사고가 너무 많은 곳이라 오늘만 하고 그만두겠습니다.


언제 다칠지 모른다.

뭐 이건 내가 하기 나름일 수도 있다.


괴롭히는 직원이 있다.

그런 빌런은 어디에나 있다.

대충 무시하면 된다.


서류 접수도 없이 채용 절차가 시작되었다.

면접도 없이 합격했다.

회사는 내 직전 연봉, 와이프 몸무게를 궁금해한다.


조장에 따르면 신입 직원 중 80%가 첫날에 그만두고

15%가 1주일을 못 버틴다고 했다.

너무 잘 알려주어서 고맙다.


피할 수 있게 기회를 주어 다행이다.

그 조장을 만나 다행이다.

그렇게 또 요상한 경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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