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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재취업 면접 도전기

by 일용직 큐레이터

40 넘어 일용직을 전전하는 이유는 재취업 때문이다.

다시 박물관에서 일하고 싶다.

전시를 기획하고 도슨트를 하던 내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다.


무려 10년 넘게 큐레이터로 일했다.

부산 이사 후 재취업을 꿈꾸며 이곳저곳에 원서를 넣었다.



첫 번째 면접은 부산 내 위치한 큰 갤러리다.

팀장급 채용으로 지원하자마자 연락이 왔다.


오랜만에 작업복을 벗고 정장을 입었다.

묵직한 작업화 대신 또각 구두를 신었다.

오래만에 메는 넥타이가 목을 조여 온다.


30분 일찍 도착해 주변을 서성였다.

무려 1만 원을 내고 전시도 관람했다.

이곳에서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


집에서 가깝고 내가 하던 일 그대로다.

팀장급이니 급여도 적지 않을 거다.


면접자는 나를 포함해 두 명이었다.

면접관은 한 명이었는데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면접인데 슬리퍼라니...


유리창을 통해 면접하는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면접자는 당당한 모습으로 웃음 지으며 답변을 이어나갔다.


이어 내 차례가 왔다.


경력이 많으시네요.

한 곳에서 10년 가까이 일했다.

막내부터 시작해 팀장급까지 올랐다.

물어오는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했다.


다만, 면접관은 내가 맘에 들지 않는 눈치다.

계속 부정적인 언사로 내 답변을 가로막는다.


마지막으로 궁금한 게 없냐길래 급여 수준을 물었다.

다시 언짢은 표정을 짓는다.

희망 연봉 적어 내지 않았냐 되물어 온다.


합격 여부는 언제 알 수 있냐 물었다.

빠르면 이번 주, 늦어도 다음 주에 연락을 주겠다 했다.


결국, 이번 주도 그다음 주도 연락이 없었다.

한 주를 더 보낸 후 전화를 걸어 물었다.

결과는 불합격.


그 갤러리는 다시 채용 공고를 냈다.


두 번째는 임기제 공무원 면접이다.

새로 건립되는 박물관이다.

전공 분야는 아니지만 안 해본 전시가 없기에 자신 있었다.


경쟁률은 무려 10대 1이다.

서류 단계에서 학력, 자격증으로 제한을 걸었는데도 만만치 않다.


노가다 다음날, 다시 정장을 입고 면접 장소로 향했다.

한 명이라도 불참할 줄 알았는데 전원 참석이다.

요즘 취업 시장이 어렵다더니 다들 간절한가 보다.


차분히 않아 면접 자료를 읽고 있는데

누군가 우리 앞에 서서 인사를 한다.


"사실 저는 다른 곳에 합격했어요.
여러분을 위해 면접을 포기할 테니 화이팅 하세요~"

두 명정도 짝짝 박수를 쳤다.

나를 비롯한 나머지는 어리둥절했다.


다른 곳에 합격했으면 담당자에게 말하고 집에 돌아가면 된다.

굳이 우리 앞에 서서 말할 건 없는데...

아마 축하를 받고 싶었나 보다.


내 차례가 왔다.

준비해 온 자료를 바탕으로 거침없이 대답했다.

역시 경력이 많다는 소리를 들었다.


뭔가 희망이 보였다.

합격만 하면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렇게 1주일을 기다려 최종 합격자 명단을 확인했다.


내 이름은 없었다.

불합격이다.


다시 노가다판으로 돌아가야 했다.


세 번째 면접은 그야말로 하하향(下下向) 지원이다.

정규직도 아니고, 임기제도 아닌

몇 개월짜리 기간제 근로자 채용에 응시했다.


일당은 8만 몇천 원이다.

노가다 보다 훨씬 적다.


그래도 몇 달간 꾸준히 일할 수 있다.

다시 경력을 쌓을 수 있다.

다시 감을 찾을 수 있다.


이 희망 하나로 원서를 넣었다.

불합격은 있을 수 없다.

이래도 떨어지면 포기하리라 마음먹었다.


나를 포함해 4명이 면접을 보러 왔다.

내 순서는 두 번째다.

내 경력을 보고 깜짝 놀란다.


정확히 알고 지원한 거 맞냐 묻는다.

맞다고 했다.


이거 할 수 있어요?

저거 할 수 있어요?


이거 해봤어요?

저거 해봤어요?


네, 다 할 수 있고 다 해봤습니다.


결과는 불합격이다.

그날로 포기했다.


세 번의 면접 탈락 후 다시 알바 어플을 켰다.

노가다 인력이 줄어 출근 못 하는 날이 늘었다.


자동차 부품 공장, 주급 70만 원

2주 이상 일할 인력을 구한다고 했다.

저녁 7시쯤 지원했는데 1분 만에 답장이 왔다.

내일 8시까지 출근하란다.


알겠다고 했다.

다시 알바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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