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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 좋은 날

by 일용직 큐레이터

평일에 노가다, 주말은 알바를 뛰었다.

노가다 인력이 줄었지만 출결이 좋아 자주 불러준다.

드문 드문 나오는 사람보다 꾸준히 나오는 인력을 선호한다.


하루는 특별 임무를 부여받았다.

4명이 한 팀이 되어 어딘가로 끌려갔다.

별일 아니라는 듯 관리자는 말했지만

눈앞에 마주한건 엄청난 양의 바닥 타일이었다.


롤처럼 말려진 바닥재는 무게가 100kg이 넘는다.

정사각형의 바닥 타일은 몇 장이 겹쳐져 박스에 담겨있다.

무게는 20kg 정도 나간다.


우리의 임무는 롤 바닥재와 타일을 각 동에 날라주는 역할이다.

팀원들의 불만이 속출한다.


이거 단가가 안 맞는데?


우리는 잡부로 왔다.

그런데 곰방 혹은 양중으로 불리는 일을 시키니 단가가 안 맞을 수밖에...

무거운 걸 나르면 돈을 더 받아야 한다.


아니면 야리끼리라 해서 일찍 끝내고 집에 귀가하 방법도 있다.

일단 큰 쇠파이프를 롤에 끼우고 둘이서 날랐다.

어찌나 무거운지 손가락이 빠질 것처럼 아팠다.


각 동에 몇 개씩 날라주니 벌써 힘이 다 빠졌다.

이번엔 바닥 타일을 날라줄 차례다.

곰방에 익숙한 노가다 형님들은 한 번에 2~3박스씩 나른다.


나는 힘은 있지만 기술이 없다.

또 노가다 근육이 없어 금방 팔이 아려왔다.

형님들은 웃으며 적당히 들라한다.


저 멀리 새끼 반장이 보인다.


무슨 일 하세요?

물어오는 새끼 반장에게 달려들며 하소연했다.

별거 아니라 해서 따라왔는데 곰방을 시킨다.

이런 식이면 일 못한다.


새끼 반장은 어이없다는 듯 관리자와 통화했다.


아니, 이러시면 단가가 안 맞잖아요.

관리자와 합의를 본 듯 전화를 끊었다.


야리끼리 하시죠.

일찍 끝내고 집에 가란 소리다.

형님들의 얼굴에 웃음끼가 돈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긴 것 같다.


가장 연배가 높은 형님이 방법을 제안했다.

너무 일찍 가면 눈치 보이니 적당히 시간을 때우자신다.

오전에 적당히 날라놓은 후

점심 먹고 1시간 만에 끝내고 집에 가기로 했다.


옳다구나 했다.

보통 4시 반에 마치는데 2시에 집에 갈 수 있다.

퇴근길을 피하니 차도 안 막힌다.


그렇게 노가다 인생 처음으로 야리끼리를 경험했다.

점심 후 가뿐하게 박스를 나른 후 집으로 향했다.

뻥뻥 뚫린 도로를 달리니 기분도 좋다.


노가다 하다보니 이런 일도 있다.


다음날 또 따로 불려 갔다.

이번엔 덩치 큰 친구와 함께다.

나보다 몇 살 어린 친구는 스무 살 때부터 노가다판에서 굴렀다 한다.


각진 턱에 딱 벌어진 어깨를 보니 노가다 근육이 장난 아닌 듯싶다.


아... 이거 어제 하던 거네

어제 날랐던 타일 박스가 몇 파레트나 널려있다.

어제 들어온 게 다가 아니었나 보다.

관리자는 역시나 별거 아니라는 듯 각 동에 나르라한다.


이거 그냥 하면 안 되는 거 아시죠?

어제 한번 해봤다고 아는 척 했다.

어린 반장님은 물론이라며 새끼 반장을 호출한다.


아... 또 이러시면 안 되죠~

새끼 반장이 관리자와 뭐라 뭐라 통화한다.

결론은 야리끼리다.

오늘도 집에 일찍 간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그것도 연속으로 조기퇴근이다.

어린 반장님과 신나게 타일을 날랐다.


너무 일찍 끝내면 다른 일 시킬까 봐 적당히

시간을 죽이며 일을 마쳤다.


그다음 날은 대학생 친구와 한 팀이 되었다.

관리자가 우리를 또 어디론가 끌고 간다.

한번 눈에 드니 나만 보이나 보다.


먼저 시멘트 잔부스러기를 치우는 일을 했다.

공구리 치고 남은 부스러기를 쓸고 담았다.

일을 끝내니 관리자가 따라오라 손짓한다.


우리를 이끈 곳에는 수백 개의 시멘트가 쌓여있었다.

한 파레트에 50개씩 5파레트, 총 250개다.

공구리 치는 분께 시멘트를 날라주란다.


이번엔 관리자에게 직접 말했다.

이러면 단가가 안 맞는다.

관리자가 알겠다며 2 공수를 쳐준단다.


하루 일하면 1 공수다. 즉 하루치 일당을 받는다.

2 공수는 하루 일하고 이틀 치 일당을 받는 걸 말한다.

눈치가 보이니 그냥은 안되고

다른 날 출근 도장만 찍고 아침에 집에 가란다.


알겠다며 철석같이 믿었다.

그리고 시멘트를 날랐다.

하루 일당이 12.4만 원이니, 이틀이면 24.8만 원이다.

이 정도면 시멘트 250포대 나를만하다.



그 말을 믿냐?

작업 반장님이 어이없다는 듯 우리를 쳐다봤다.

관리자는 그냥 아무 말이나 쉽게 한단다.

언제 부를 줄 알고 마냥 기다릴 거냐 신다.


그건 그렇다. 날짜를 특정하지 않았다.

작업 반장님이 관리자와 통화한다.


점심 먹고 집에 가

관리자와 합의를 본 모양이다.

오늘도 야리끼리다.

무려 세 번째, 그것도 3일 연속이다.


오전에 4파레트, 200포대를 죽어라 날랐다.

온몸에 시멘트 가루가 풀풀 날렸다.

한 파레트는 남겨두었다.


점심 식사 후 남은 50포대를 끝냈다.

오늘도 2시에 집에 간다.


무슨 일을 하던 집에 일찍 가는 게 최고다.

게다가 일당은 그대로 받는다.

운수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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