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이사 후 친구들과 연락을 끊었다.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실패만 거듭한 게 부끄럽다.
사업한다고 큰소리 떵떵 쳤는데
이 모양 이 꼴로 살고 있다.
친구들의 메시지, 전화 모두 받지 않았다.
내 어려움을 어떻게든 도울 친구들이라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다.
그렇게 한 달, 두 달이 흐르고
절친의 결혼식이 다가왔다.
결혼식은 꼭 가야 한다.
내 결혼식 때 30만 원이나 축의금을 낸 친구다.
나도 30만 원을 해야 도리가 맞다.
지금 나에게 30만 원은 너무나 큰돈이다.
노가다를 꼬박 3일 해야 벌 수 있는 돈이다.
축의금을 줄일까 고민했다.
10만 원만 할까 망설였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가려면 왕복 교통비도 만만치 않다.
KTX를 타면 10만 원이 훌쩍 넘고
버스를 타도 마찬가지다.
28,600원짜리 무궁화호를 타기로 했다.
왕복 57,200원.
KTX의 반값이다.
대신 시간은 3배로 든다.
친구의 결혼식은 오후 4시다.
오전 9시경 무궁화호를 타
오후 3시가 넘어서야 서울역에 도착했다.
축의금은 30만 원을 내기로 했다.
평생 한 번 하는 결혼식인데
내 형편이 어렵다고 금액을 줄일 수 없었다.
30만 원이나 받아놓고
10만 원만 하는 친구가 될 수 없었다.
어떻게 어떻게 해서 겨우 30만 원을 맞췄다.
식장에 도착하니 선배, 지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왜 이렇게 얼굴이 상했냐며 걱정하는 선배
너무 까매졌다며 놀리는 친구
언제 부산으로 이사 갔냐며 놀라는 지인
모두 다 오랜만이다.
또 다른 절친은 결혼식 사회를 본다.
와이프와 아이까지 데려왔다.
절친 결혼식에 꼭 함께 가자던 와이프는 지금 러시아에 있다.
혼자 간다 하니 속상해 울먹인다.
남편 친구들에게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단다.
너무 미안하다.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되냐는 친구들
너무 바빠서 그랬다고 둘러댔다.
잘 살고 있으니 걱정 말라며 웃어댔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소주 한잔 하며 밥을 먹었다.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부산 이사 후 처음 밖으로 나왔다.
부산 이사 후 처음 친구들을 만났다.
이제 어머니를 만나러 간다.
급하게 밥을 먹고 식장을 나섰다.
좀 더 있다 가라는 친구의 만류도 뿌리쳤다.
5개월 만에 만나는 어머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가야 한다.
밤늦게 어머니댁에 도착했다.
조카들은 오래만에 삼촌이 온다고 오매불망 기다렸단다.
모든 게 다 잘되고 있으니 걱정 말라했다.
네 얼굴만 봐도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다는 어머니.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다음날 어머니와 감자탕 한 그릇 하며 회포를 풀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니 벌써 내려갈 시간이다.
밤늦게라도 도착해야 다음날 일 나갈 수 있다.
밥 한 끼 사드리려 했는데
굳이 어머니가 감자탕값을 내셨다.
커피 사드린다니까 1,500원짜리 아메리카노를 고르신다.
부산으로 내려가는 길
푹푹 한숨만 내쉬었다.
어쩌다 이리됐을까.
오랜만에 만난 가족, 친구들이 반가우면서도
마음 한편이 무거워도 너무 무겁다.
언제쯤 이 무거운 짐을 덜어낼 수 있을까?
바보 같은 나를 자책하며 부산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