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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삼세번 아닌가요

by 일용직 큐레이터

부산 이사 후 일당 잡부로 연명하고 있다.

매일 단기 알바를 검색하며

노가다, 공장, 물류센터를 전전한다.


한 곳에 정착해 오래 다니면 금전적으로 훨씬 낫다.

꾸준하게 급여를 받을 수 있고, 미래도 예측 가능하다.

그럼에도 난 일당 잡부로 살고 있다.


희망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큐레이터다.

박물관, 갤러리에서 10년 넘게 일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전시팀을 이끄는 책임자였다.


학위, 경력, 자격증을 갖추고 있다.

사업은 실패했지만 재취업은 성공하리라 믿었다.



우연히 프리랜서 채용 공고를 보았다.

국가 용역 사업을 따낸 업체인데

큐레이터와 협업하는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었다.


대표는 500만 원을 제시했다.

타 지역에 머물며 수장고를 정리하는 일이었다.

급여, 숙박비 포함 500만 원이면 할만했다.


아니, 지금 내게는 너무 큰돈이다.

단번에 한다고 했다.


이제부터 우리 직원이나 다름없으니 잘해보자 하신다.

바로 다음 주에 투입될 예정이니 준비하라 했다.

그 지역에 방도 알아봤다.


약간 밀렸으니 그다음 주부터 시작하죠.

프로젝트 시작이 딜레이 되고 있다.

그러려니 했다.

그럴 수 있다.


또 전화가 와 더 밀렸단다.

뭔가 이상했다.

용역 낙찰을 받았다면서도 계속 날짜를 미룬다.


계약은 하신 건가요?


아직 못했다며, 담당 공무원이 날짜를 계속 미룬다고 했다.

사기 치는 건 아니겠지만

뭔가 보험용으로 날 묵어두려는 느낌을 받았다.


일주일 안에 확정을 안 주시면 안 하겠다 했다.

다음 주 중으로 계약금을 입금할 테니 걱정 말란다.


결국 계약금은커녕 전화도 오지 않았다.



얼마 후 또 다른 공고가 올라왔다.

이번에 제시받은 금액은 350만 원이다.

기간은 반년.


드디어 노가다를 탈출하겠다 싶었다.

350만 원을 받으면 예전처럼 살 수 있다.


노가다판에서 구르며 그날만을 기다렸다.


100만 원, 150만 원, 100만 원 이렇게 나눠서 드릴게요.


뭐야?! 월급이 아니었어?!!!

대표는 한심하다는 듯 아니라 했다.

공고문에 적힌 건 월급이 아니라 용역비였다.


350만 원이라길래 당연히 월급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착수금 100만 원

중간보고 후 150만 원

마무리 후 100만 원을 받는 조건이었다.


공고문에는 이런 내용이 안 적혀 있었다.

물어보지 않은 내 잘못이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다른 채용 공고에 지원하지 않았다.

100만 원 받고 일은 시작했지만 여전히 노가다를 해야 했다.


프리랜서 공고가 또 올라왔다.

월급 300만 원.

기간은 1년이다.


분명 월급이라고 적혀있었다.

바로 응시하니 잘 접수되었다는 문자가 왔다.

합격만 하면 1년 동안 편히(?) 살 수 있다.


1월에 지원했는데

2월이 다되도록 연락이 없었다.


서류접수 했는데 불합격인 건가요?

내부사정으로 합격자 선발이 미뤄지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란다.


담당자에게 전화가 왔다.

사복입은 사진을 첨부하셨는데

이왕이면 정장 사진으로 바꾸는 걸 추천한다고 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한 후 바로 사진을 교체했다.


시간이 흘러 3월이 되고 4월이 돼도 연락이 없었다.

떨어진 거냐고 또 문자를 보냈다.

내부사정으로 지연되고 있다는 답장을 받았다.


더 열받는 건 1월부터 5월까지 계속 채용공고를 업데이트하고 있다.

채용하는 곳이 중소기업도 아니고 국내에서 아주 유명한 단체다.

처음부터 뽑을 생각이 없던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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