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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밥 한 그릇

by 일용직 큐레이터

처음 뛰어든 노가다 현장.

며칠하고 그만둘 줄 알았는데 내리 몇주를 일했다.

그날 일한걸 저녁에 입금받으니

생활도 약간 나아졌다.


그동안 수입이 없어 먹는 걸 줄였는데

오랜만에 국밥 한 그릇 하기로 했다.


부산하면 돼지국밥

돼지국밥하면 부산이다.



부산 이사 후 외출을 거의 하지 않았다.

바다가 좋아 왔지만, 바다를 가본 건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국밥 한 그릇도 제대로 하기 힘들었기에

밖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노가다 후 이른 저녁,

집 근처 국밥집에 들렀다.


오랜만에 돼지국밥에 소주 한잔 걸쳤다.

인생이 참 쉽지 않다.


회사 다닐 때만 해도 매달 꾸준히 들어오는 급여 덕분에

먹고사는 걱정을 해본 적이 없었다.


겨우 300만 원이었지만

와이프와 둘이 먹고 살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부산 이사 후 몇 달간 수입이 거의 없다가

노가다를 하며 겨우 입에 풀칠하며 살고 있다.


인생이 정말 쓰다.

국밥 한 그릇 사 먹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소주가 달다.

오랜만에 마시는 소주가 이리 달 줄이야.


맛집도 아닌데 국밥이 꿀맛이다.

서럽다.

그냥 회사 다닐걸.


후회로 나날을 보낸다.

괜히 이사 와서 이 고생을 하다니.


국밥 한 그릇에 이렇게 행복해하다니.

내 인생이 왜 이렇게 됐을까...


친정 간 와이프의 생활비를 송금했다.

장인, 장모님께 부끄럽다.

이사 후 한국에 모시려고 했는데

이마저도 어려워졌다.


부산 풀코스를 대접해 드리고 싶었는데

못난 사위는 자리도 못 잡고 있다.


러시아에서 생활하는 와이프에게

적지 않은 돈을 매달 송금했다.

아무리 벌이가 적어도 금액을 줄이지 않았다.


몸이 아픈 와이프는 병원을 다닌다.

병원비, 생활비를 쓰기에 부족하지만

그래도 와이프는 잘 버텨주고 있다.


어린 나이에 시집와 원룸에서 시작한 결혼생활.

투룸으로 이사할 때 갑자기 커진 집에 기뻐하던 우리다.

아파트를 장만해 오손도손 살고 싶었지만

현실의 벽은 너무 높다.


겨우 국밥 한 그릇 하면서 오만가지 생각을 다한다.

앞으로 나아질 수 있을까?

사실 잘 모르겠다.


매일 노가다 일이 있는것만 해도 감지덕지다.

이 현장이 끝나면 어떻게 될까?

정규직으로 살던 40대 남자가

일당 잡부로 노가다, 알바를 뛰고 있다.


내 선택이니 누구를 원망할 수 도 없다.

내가 와이프를 고생시키고 있다 여기니

정말 한심하고 바보 같다.


마흔 넘으면 안정된 생활을 할 줄 알았는데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아버렸다.



국밥을 싹 비우고 가게를 나섰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았다.


이래서는 안 된다.

언제 끝날지 모를 노가다만 믿은 채

내일을 맡길 수 없다.


오랜만에 다시 알바 어플을 켰다.

스타벅스 물류센터, 하루 9.8만 원.

문자 지원 후 출근 확정을 받았다.


주말이라고 쉴 수 없다.

투잡을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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