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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화(大便化)

by 일용직 큐레이터

노가다는 아침조회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

이때 어느 팀에 들어가냐에 따라 일의 난이도가 달라진다.

조장과 팀원들의 신뢰를 받으면

내일도 모레도 같은 팀에서 일할 수 있다.


대부분 서로 안면이 있는 사람끼리 팀을 이룬다.

난 오늘도 혼자 서있었다.


반장님 이쪽으로 오세요


나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 조장이 내 팔을 붙잡았다.

못 이기는 척 무리에 합류했다.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고 묻지도 않았다.

노가다 할 때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2동 맞지? 출발해


관리자가 우리 팀을 가리키며 출동 지시를 내렸다.

다시 컨테이너 사무실로 돌아가 장비를 챙겼다.

빗자루, 삽, 마대.


막간을 이용해 담배 타임을 갖는다.

노가다 현장에서 비흡현자를 찾기 정말 어렵다.

50명 중 비흡연자는 5명이 될까 말까다.


오늘 주어진 업무는 세대청소다.

아파트의 각 호수를 청소 하는 일이다.



방 3개, 화장실 2개다.

2인 1조로, 3개의 조가 각 세대를 청소한다.

먼저 큰 쓰레기를 치운다.


자재, 박스, 비닐, 스티로폼 등을 마대에 담고

빗자루로 먼지쓰레기를 쓸어낸다.

각 방에 모여진 쓰레기를 마대에 담는다.


마지막으로 복도를 쓸면 끝이다.

먼지가 엄청나 방진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숨쉬기 어렵다.

각 층별로 모은 쓰레기는 지하 하역장에 옮긴다.


세세하게 서술해서 그렇지 실제 해보면 너무 간단한 일이다.

쓸고 담고 버리면 끝이다.


너무 쉽다.

사람들이 세대 청소팀으로 몰리는 이유가 있었다.

먼지 마시는 것 말고는 단점이 없어 보였다.


각 팀별로 1동, 2동, 3동 등 건물 하나씩 맡는다.

하루에 2~3개 층을 청소하는데 시간이 널널하다.

각 잡고 청소하면 한 개 층은 1시간이면 충분하다.


하루 3개 층은 3시간 컷이 가능하다.

나머지 시간은 그냥 쉰다.

작업이 없는 세대를 찾아 박스를 깔고 앉는다.


농담 따먹기를 하고 핸드폰을 본다.

시간이 정말 잘 간다.

첫날 했던 쓰레기 줍기보다 훨씬 낫다.

관리자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니 가뿐하게 쉴 수 있다.


내일도 저희 팀으로 오세요.


젊은 조장의 스카웃 제의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며칠을 세대청소팀에서 편하게 일했다.

하루는 새로운 반장 몇 분이 팀에 합류했다.

노가다를 오래 하신 분들은 보통 7일만 일하고 현장을 바꾼다.


8일 차가 되면 4대 보험을 떼는데 금액이 만만치 않다.

7일 차까지 12.4만 원을 받는다.

8일 차에 4대 보험을 떼고 3.9만 원을 받는다.

9일 차부터는 11.4만 원을 받는다.

한 달이 지나면 다시 리셋된다.


겨우 1만 원 차이로 보이지만

주 6일을 일한다고 가정하면 큰 금액이다.

그래서 1주일 단위로 사람들이 대이동 한다.


어디서 왔어요?
결혼은 했어요?
집 평수가 어떻게 돼요?


새로운 반장님은 내게 궁금한 게 참 많다.

너무 개인적인 질문이 많아 거부감이 들었지만

나이가 있으신 어른이라 이래저래 둘러댔다.



새로운 반장님과 조를 이루어 세대청소를 했다.

그러다 아주 요상한 놈과 마주했다.

바닥에 깔린 박스 위에 검은 물체가 올려있었다.


대변(大便)이었다.

누군가의 대변을 실제로 본 적이 있나?

아주 어렸을 때 본 것 같기도 하다.


살짝 역한 기운이 올라왔다.

같이 일하던 반장님은 별거 아니라는 듯 웃었다.


처음 봐요?


반장님 말로는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아주 흔하게 본단다.

정말 급해서 그런 사람도 있고, 일부러 그러는 이도 있단다.


반장님은 흙먼지를 그놈 위에 뿌렸다.

그리고 한 삽에 들어 올려 마대에 담았다.


너무 열받는 건 그다음 호수, 그다음 호수에도

대변이 있었다.

아주 악랄한 작업자가 일부러 싸질러 놓은 게 분명했다.


사무직으로만 10년 넘게 일했는데

지금은 누군가의 대변을 치우고 있다.

너무 서러웠다.



아이! X발,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예요?!


갑자기 욕설이 들렸다.

젊은 조장이 나와 함께 일하는 반장님을 노려보고 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새로운 반장님은 청소도 중 담배 한대 피우고 오겠다 했다.

10분 후 조장은 나를 찾아와 그 반장님 어디 갔냐 물었다.

담배 피우러 갔다 했다.


이게 다다.

왜 자신의 허락도 없이 쉬고 담배를 피우냐고 몰아세웠다.

다 같이 쉬고 조장의 타임 스케줄에 맞춰야 한다며 윽박질렀다.


뭐 별것도 아닌 것 같고 야단 떤다 싶었다.

급기야 관리자까지 소환됐다.


젊은 조장이라고 무시하지 말고 잘 따르세요.


일단락되었다.

서른을 갓 넘긴 조장이 오십을 바라보는 반장을 갈군다.

그것도 담배 한 대 피우고 왔다고.


조장 말을 따르는 게 맞으니

말없이 담배 피우러 간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그렇다고 욕설을 퍼부우며 관리자까지 소환할 일인가 싶었다.


아무래도 기강을 잡으려는 듯싶었다.

노가다가 참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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