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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반장 따라다니던 날

by 일용직 큐레이터

노가다 둘째 날.

출근 계약서를 쓰고 아침 조회를 했다.

다 같이 체조를 한 후 관리자 훈화말씀을 듣는다.


아무 데서나 담배 피우지 마라.

소변은 지정된 장소에서 해라.

무단횡단 하지 마라.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 같은 말을 늘어놓는다.


자세히 보니 잡부들은 여러 팀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주 나오는 사람끼리 삼삼오오 모여있다.

관리자는 팀의 조장에게 업무를 부여하는데

매일 같은 일을 한다.


세대 청소, 쓰레기 줍기, 화장실 청소, 신호수 등

업무는 다양하다.

마음이 맞고 친한 사람끼리 팀을 이루는데

여기에 끼는 게 쉽지 않다.


난 아무것도 모르고 서 있었다.

다들 업무를 부여받아 출발하는데

나와 다른 한 명만 지목받지 못했다.


안경 쓴 젊은 관리자가 다가오더니 따라오랜다.

무슨 일을 하는지 어디로 가는지 설명도 안 한다.

낡은 포터를 타고 다닌다.


이거 차에 실으세요.


현장에 널브러진 쇠파이프를 모은다.

둘이 한 조가 되어 차에 싣는다.

젊은 관리자는 새끼 반장이라 불린다.


관리자의 손발 역할을 하는데

현장의 잡다한 일을 처리한다.

전화를 받으면 달려간다.


어제 세운 철조망이 흔들거려 바닥에 심을 박아야 한단다.


공구 다룰 줄 아세요?


못한다고 했다. 옆에 있던 분이 자신 있게 공구를 들더니 바닥에 심을 박는다.

심을 박고, 양쪽에 지지대를 세워 고정한다.

30분 일하고 30분 쉰다.


새끼 반장은 두 명인데 나보다 훨씬 어렸다.

나이 많은 인부들과 형동생 하는 거 보니 오래 일했나 보다.

나는 아무 말도 없이 시키는 일만 했다.


점심으로 한솥 도시락을 먹고 1시간을 잤다.

어찌나 깊이 잠들었는지 침까지 흘린다.

뭘 했다고 이리 피곤할까.


새끼 반장의 낡은 포터는 갖가지 공구들이 널브러져 있다.

캔 커피가 굴러 다니고 빵봉지도 흐트러져 있다.


스틱으로 된 포터를 후방 카메라도 없이 주차한다.

운전에 군더더기가 없다.

난 후방 카메라 없으면 주차도 못하는데...


같이 일하던 인부분이 힘드냐고 물어온다.

사실 이게 힘들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노가다 잡일이라는 게 이렇게 쉬운 줄 몰랐다.


나중에 들으니 잡부는 말 그대로 잡일만 한다.

잡부에게 양중, 도배, 타일 등을 시키면 안 된다.

기술이 있다 해도 잡부로 왔으면 잡일만 한다.


만약 다른 일을 시키면 공수를 더 주거나

일찍 퇴근하는 방향으로 조정한다.

멋모르고 양중(무거운 시멘트 등을 나르는 일)을 하고

잡부 일당을 받으면 손해다.



잡부들끼리 호칭은 반장님으로 통한다.

태어나 처음으로 반장님 소리를 들었다.

부반장은 해봤는데 반장은 처음이다.


존댓말을 쓰고 말도 험하게 하지 않는다.

X끼, X팔 등이 난무할 줄 알았는데 다들 매너가 있다.

예전에는 험악했다는데 많이 변했다 한다.


새끼 반장도


반장님, 이것 좀 옮겨 주세요.


라며 정중히 제안한다.

노가다에 대한 선입견이 점점 깨지고 있다.


다만 더럽고 위험하다.

먼지통 속에서 지게차, 포클레인 등 중장비를 피해 다녀야 한다.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안전모를 쓰지만 한번 맞으면 바로 저세상행이다.


새끼 반장이 부여한 업무는 시시각각 바뀐다.

관리자가 전화로 콜을 하면 새끼반장과 포터를 타고 가 해결한다.

일이 끝나면 담배 타임을 갖고 쉬며 전화를 기다린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할지,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그래서 시간이 더디 간다.

일 좀 시켜주지 가만히 대기만 시키니 지루하다.


앞으로 새끼반장 따라다니는 일은 기피해야겠다.

차라리 쓰레기 줍기가 낫다.


지원한 현장에 출역 확정되었어요.


내일도 출근이다.

내일은 줄을 잘서 좀 괜찮은 업무를 맡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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