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다는 처음이다.
'가다'라는 어플로 여러 현장을 지원할 수 있는데
몇 달간 계속 탈락했다.
그러다 갑자기 합격 통보를 받았다.
팀장이란 분이 전화, 메시지로 안내해 주었다.
몇 시까지 어디로 와라.
6시 40분까지 도착해야 하기에
5시 30분 차를 몰고 나섰다.
30분 거리지만 첫날이라 일찍 가기로 했다.
주차장에는 수십대의 차량이 서있었다.
해도 뜨지 않은 새벽인데도 수백 명의 인부들이 몰려들었다.
아파트 단지를 짓는 현장이다.
안전모 컬러에 따라 잡부, 기술자 혹은 회사를 알 수 있다.
사실 노가다꾼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인생막장, 밑바닥까지 간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라 여겼다.
그 일을 내가 하러 왔다고 생각하니 서러웠다.
다들 입에 담배를 물고 침을 카악 뱉으며 출근한다.
큰 현장이라 모여든 잡부도 많았다.
잡부는 낮춰 부르는 말이라기보다 별 기술 없이 잡일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내가 그 잡부다.
잡부들의 연령대는 다양했다.
20대부터 70대까지 여러 연령층의 사람들이 모였다.
다들 친한지 서로 인사하고 잡담을 나눈다.
난 아는 사람도 없어 그냥 멀뚱히 서있었다.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는다.
오히려 편하다.
밑바닥 인생 사람들과 말을 섞고 싶지 않다.
당시에는 바보 같은 편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계약서를 쓰고, 첫날이라 안전교육을 받았다.
노가다는 7시에 시작해 4시 30분에 마친다.
안전 교육을 받느라 8시에 일을 시작했다.
첫 임무는 쓰레기 줍기다.
마대를 들고 현장을 누비며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다.
마대가 꽉 차면 커다란 항공마대에 넣는다.
항공마대가 꽉 차면 지게차가 끌고간다.
슬렁슬렁 걸어 다니며 쓰레기를 줍기만 하면 된다.
40분 일하고 20분 쉰다.
관리자에게만 걸리지 않으면 쉬는 시간은 자유다.
같이 일하는 조장님은 계속 쉬라고 권유한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일이 쉬웠다.
막 무거운 걸 나르고 위험한 철근을 절단하는 일을 상상했다.
쓰레기 줍는 건 애들도 할 수 있다.
이걸 하는데 하루 12.4만 원을 준다고?
11시 10분 집결지로 잡부들이 모여든다.
11시 20분부터 점심시간이다.
무려 12시 50분까지 1시간 30분을 쉰다.
점심은 미제공.
예전에는 점심은 필수제공이었는데 용역 회사가 단가를 낮추기 위해
안주는 추세라 한다.
편의점에서 김밥 한 줄 사 차에서 먹었다.
별로 한 것도 없으니 허기도 지지 않았다.
금방 한 줄 뚝딱하고 1시간을 내리 잤다.
13시부터 오후 일과가 시작된다.
역시나 쓰레기 줍기.
갑자기 관리자가 부른다.
철조망 세우는데 옆에서 잡고 있으란다.
10분 일하고 30분 대기한다.
공구를 놓고 왔다.
지게차가 와야 된다.
하며 하염없이 기다린다.
4시가 가까워지니 일을 마무리하기 시작한다.
4시 10분쯤 모여 인증 사진을 찍고 퇴근한다.
가다 어플에서 종료를 누르면 일과가 끝이다.
입금은 저녁 7시쯤 된다.
그날 일한걸 당일 받는다.
아주 좋은 시스템이다.
돌아가는 길 잡부들의 모습을 유심히 봤다.
다들 멀쩡한, 아니 나보다 나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고급 세단을 타고, 깨끗하고 멋진 옷으로 갈아입는다.
밑바닥 인생인 줄 알았는데
여기 그런 사람은 나밖에 없다.
다들 기술 하나씩은 있는 사람들인데
시간이 빌 때 잡부로 뛰는 전문가들이다.
12.4만 원에 만족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하루 20만 원, 30만 원도 번다고 한다.
내일도 출근하라는 카톡이 왔다.
몇 달을 신청해도 탈락만 했는데 이틀 연속 출근한다.
뭔가 이룬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마흔 먹고 노가다 인생이라니
그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니
나도 많이 변했다.